해동성국(海東盛國)으로 불리며 동북아 최강국으로 성장했던 발해.  925년 거란에게 갑작스럽게 멸망한 뒤 그곳의 사람과 땅은 어떻게 되었을까?

한국학중앙연구원은 해동성국(海東盛國) 발해가 925년 거란에게 갑작스럽게 멸망한 뒤 그곳의 사람과 땅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조명한 《요‧금시대 발해인의 삶과 문화》(신국판, 18,000원)를 발간했다.

 

학계에서는 발해가 거란에 의해 멸망한 후 200년 이어진 복국(復國) 운동에 주목하여 연구 대상 시기를 확대했고, 더 나아가 발해 유민의 거취를 추적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학계의 관심은 거란에서 발해 문화를 계승해나간, ‘발해 이후 발해인’까지는 미치지 못했다. 사료가 부족하기도 하였지만, ‘고려를 침략한 북방 오랑캐’라고 인식함으로써 요와 금의 역사를 낯선 영역으로 배제하여 한국사와 구분 지었기 때문이다.

거란으로 넘어간 발해인은 발해시대를 만들어 온 기층민이었다. 이들은 여전히 발해의 옛 땅에서 발해의 생활 습속을 이어나갔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요‧금시대 발해인의 삶과 문화》는 발해와 요‧금을 시대적 연속선상에서 이해하기 위한 첫 시도이다. 발해 멸망 후 그 지역의 모습, 발해인의 생활 등이 요‧금 사회에서 어떤 양상으로 확인되는지를 문헌과 유물 유적을 토대로 살폈다.

먼저 《요사》 「지리지」를 근거로 발해 멸망 후 발해 지역이 어떻게 재편되었는가를 다룸으로써 요‧금 시대의 옛 발해 지역 지역의 현황을 밝혔다. 이를 위해 발해의 지방 운영과 요‧금대의 동경도 운영 과정을 상호 점검하면서 발해의 지방 체제가 어떻게 변용되었는가를 다루었다.

또한 북방 소수민족이 건립한 요‧금 정권의 민족 정책 속에서 발해인의 실태를 파악했다. 발해인은 요‧금사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중국 역사학자 진위푸[金毓黻]는 “발해가 멸망한 뒤에 그 유예들은 뛰어났기 때문에 저절로 구별되었고 다른 족속들과 더불어 서로 섞이지 않아 200년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았다.”라고 했다. 발해인은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은 채 선진 문명의 소지자로서 요‧금사에 많은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이 책은 요나라와 금나라에서 관직을 지낸 발해 후예들의 이름을 정리하여 제시함으로써 발해의 명맥이 이어졌음을 밝히고 있다. 이 외에도 발해의 구들(오늘날의 온돌)과 요‧금대의 구들 유적 간의 계승 발전 관계도 이와 같이 발해 문화의 영속이라는 관점에서 연구하였다.

저자 중 구난희 교수는 평화와 공존을 위한 역사 이해를 지향하며, 그동안 ‘고려를 침략한 북방 오랑캐’라는 우리 역사 인식에 가려져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발해 이후 발해인을 조명하는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민족주의 중심의 프레임에 가려 단절되었던 발해사와 이후의 역사 공간을 복원하고 새롭게 조명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구난희 교수는 서울대학교 역사교육과를 졸업하고, 한국교원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한국학대학원 인문학부 교수로 재직 중인 발해사 전문 학자이다. 논저로는 《발해와 일본의 교류》(2017), 《다시마와 발해‧일본의 교류》(2019)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