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가치로도 대신할 수 없는 독자적인 존재, 나와 우리를 있게 한 정신적 체계인 국학은 국시(國是)이자 정신적 사회간접자본이다.

“한국은 왜 국학을 개인이 연구하는가?”라고 진지하게 묻는 일본 객원연구원과 천안 국학원에 다녀온 일이 있었다. 일본은 이미 300여 년 전에 국학이 성립됐고 중국은 1990년대부터 중국문명을 세계화 하려는 노력으로 중국국학을 정착시키고 있다. 반면, 우리 국학은 긴 세월동안 외래학(外來學)에 억눌려 정체성을 잃고도 그 잃은 줄마저 모른다.

오늘날 전 세계가 겪는 경제위기와 동북아의 갈등을 진정시킬 정신문명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시점에서 세계문화는 동북아로 집중되고 있다. 세계의 물동량 조사에서 확인되듯 21세기는 동아시아시대인 것이다. 동아시아의 중심, 동북아 3국의 갈등은 여전하고 그 속에서 생존하려면 우리는 반드시 한반도를 둘러싼 문제를 해결하고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

국학운동의 세계화란, 우리의 국학을 인류공존의 가치운동으로 확산·승화시켜 전 세계의 다양한 활동 가치와 공유할 수 있는 보편적 가치운동이다. 국학의 세계화 도전에는 반드시 극복해야 할 장애와 조건이 만만치 않다.

우리 삶과 불가분의 당위성을 가진 우리 국학가치의 속성과 실체의 논리가 설명되어져야 한다. 또한 그 논리에 따른 국학운동이 민족과 국경 종교 이념을 넘어서서, 열린 세상을 지향하는 보편성과 창조성이 함께하는 진보적인 활동이어야 하며 일관된 지속성도 전제되어야 한다.

올바른 활동은 도덕적일 때 살아있다. 국학운동은 사회악에 과감하게 도전하고, 주인의식으로 사회지도층의 도덕적 불감증을 일깨워야 한다. 치우치지 않는 뚜렷한 목적과 체계 있고 일관된 운동이라야 공감대가 형성된다. 우리 국학운동의 궁극적인 목표는 홍익인간이다.

국학운동의 적극적인 세계화를 위해서는 ‘홍익인간’ 정신이 보편적 가치가 보장되도록 체계적인 논리가 세워져야 한다. 우리 역사에서도 배제된 홍익정신, 국학논리를 하루빨리 체계화하여 어떠한 원심운동으로서도 무너지지 않을 구심점을 삼는 일은 우리 민족문화의 흥망이 걸린 일이요, 국가의 장래를 결정하는 아주 중요한 일이다.

우리 조상은 최초로 제천(祭天: 하늘에 제사를 지냄)을 행했다. 제천문화는 사람이 어떻게 도덕적으로 살아야 하는가를 제시한 문화다. 천부경 삼일신고처럼 인류 보편적이고 위대한 사상이 어디 있는가. 그 문화는 고구려의 ‘다물’정신(하늘의 은혜로 세워진 땅의 회복), 선도, 선랑, 신라의 세속오계, 화랑의 삼미행(三美行), 백제의 무사도, 고려의 팔관회, 조선의 선비정신 속에서도 찾을 수 있다.

다문화주의를 위해 없어져야 할 단군이라니… 우리는 스스로를 너무 모른다

오늘의 현실을 보아도 우리만큼 세계의 모든 종교와 문화를 다 받아들이는 나라도 없다. 그만큼 우리에게는 그 누구와도 잘 아우르는 ‘홍익인간’ 정신이 내재되어 있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 가는 미래지향적인 창조성, 거리낌 없이 열린 자신감은 문화의 용광로라 할 만큼 모든 문화를 수용한다. 최치원은 이를 ‘접화군생(接化群生)’이라고 표현했다.

그럼에도 ‘다문화주의를 위해서는 없어져야 할 단군’이라는 기사가 유력일간지에 실렸다. 단군이 타문화를 배척하라고 했는가? 오히려 ‘나’를 중심으로 ‘너’를 지향하는 ‘우리’의 홍익정신으로 하나 되는 이화세계를 말씀하셨다. 이렇게 우리는 스스로를 너무 모른다.

동북아를 묶을 수 있는 문화소(文化素)를 발견하고 그 논리체계와 더불어 활동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우리로선 참으로 다행한 문화소가 있다. 중국 동북지역에서 발굴되는 홍산문화 유적을 비롯해 용산문화, 조보구문화, 앙소문화 등 중화문명으로 알았던 동북 3성 지역의 고대 제반문화가 모두 황하문명과는 다른, 동이 문화란 점이다. 중국이 동북공정에 심혈을 기울인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우리에겐 중국 황하문화를 뛰어넘을 수 있고 일본의 신도문화를 넘는 문화소가 있고 지금이 절호의 기회다.

*삼미행(三美行)-삼국유사에 나오는 말로 가난하면서도 비굴하지 않고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겸손하고 부자이면서도 검소한 세 가지 행위로 삼덕(三德)이라고도 일컫는다. 세속오계와 함께 신라의 화랑정신 으로 평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