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수록 홍익의 향기가 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홍익의 향기가 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 정유철 기자
  • npns@naver.com
  • 승인 2020.08.13 08: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터뷰] 국학강사로 제2의 인생을 사는 윤애숙 씨
윤애숙 씨는 브레인명상을 하며 접한 국학강의를 듣고 가슴이 뛰었다. 그는 이제 국학을 알리는 국학강사가 되었다. [사진=김경아 기자]
윤애숙 씨는 브레인명상을 하며 접한 국학강의를 듣고 가슴이 뛰었다. 그는 이제 국학을 알리는 국학강사가 되었다. [사진=김경아 기자]

윤애숙(63) 씨는 앞으로 자신이 할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환갑을 넘겨서 뭔가 하기에는 이미 나이가 많다고 여겼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내가 할 일이 많다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리고 용기를 내기 시작했다.

2019년 3월에 단월드 산본센터에서 브레인명상을 시작한 후로 그는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8월 6일 단월드 산본센터에서 윤애숙 씨는 환한 얼굴로 기자를 맞이했다. 그가 브레인명상을 시작한 것은 다이어트를 하고 싶어서였다.

“우연히 산본센터 원장님을 만나 브레인명상을 체험하고 회원등록을 했어요. 다이어트를 하려고 했고, 또 몸이 안 좋았어요. 브레인명상을 해보니 몸이 가볍고 상쾌해져 계속 하게 됐어요.”

브레인명상을 한 윤애숙 씨는 심성교육을 받고 파워브레인메소드(PBM) 교육을 받으면서 조금씩 마음속에 뭔가 꿈틀거리는 것은 느꼈다.

“나이가 많아 내 미래에는 할 일이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내 마음 속에는 이제 변하고 싶다는 느낌이 커지기 시작했어요. 딸이 얼굴이 밝아졌다고 할 만큼 건강도 좋아졌고요.”

그동안 살아오면서 그는 자신에게 집중해본 적이 거의 없었다. 서울에서 2남 6녀 중 여섯째로 태어난 윤애숙 씨. 어려서부터 형제간 간에 중간 역할을 잘했고, 친구 관계에서도 중간 역할을 잘 해 친구들에게 늘 필요한 사람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서울에서 공무원으로 일한 그는 결혼 후 아이 둘을 키우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었다. 아이들이 크면서 꽃꽂이를 배워 사범이 되어 취미교실 등에서 꽃꽂이를 지도했다.

윤애숙 씨가 브레인명상으로 지감수련을 하고 있다. 그는 매일 브레인명상을 하여 자세가 바르게 되고 건강해졌다. [사진=김경아 기자]
윤애숙 씨가 브레인명상으로 지감수련을 하고 있다. 그는 매일 브레인명상을 하여 자세가 바르게 되고 건강해졌다. [사진=김경아 기자]

아이들이 크자 그는 교육을 위해 언니가 있는 미국으로 갔다. 남편은 국내에 남아 ‘기러기 아빠’가 되었다. 미국에서 아이들은 공부를 열심히 하여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 유학을 한 보람이 있었다. 그렇게 아이들과 함께 10년 넘게 생활하고 윤애숙 씨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의 나이 50세였다. 기러기 가족으로 지내는 사이 멀어진 남편은 귀국한 아내 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귀국 후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

“뭔가 채워야 할 것을 찾아 다녔어요. 도자기도 해 봤어요. 그런데 만족하지 못했어요.”

윤애숙 씨는 파워브레인메소드 교육을 통해 명상을 하면서 자신을 바라볼 수 있었다.

“어릴 때 나를 바라보니 억울한 게 많았어요. 집이 넉넉하지 못 했어요. 결혼하여 남편에게 무시당해 자신감과 용기가 없었어요.”

당당하게 공무원으로 근무한 그였고, 직장을 그만두어 경력이 단절되도록 육아에 전념했지만, 남편은 그를 무시했다. “네가 뭘 할 줄 알아!” 남편은 그를 향해 이렇게 소리쳤다.

그런데 그런 부정적인 생각을 지우고 나니 자신에게도 자신감과 용기가 없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자신감과 용기를 갖고 브레인명상전문가과정인 마스터힐러교육을 신청했다. 브레인명상을 매일 하니 자세가 바르게 되고 건강해졌다.

“나를 자각하고 깨어있게 함으로써, 생각 속에 빠졌을 때 생각을 바라볼 수 있고 나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하나씩 알게 됨으로써, 문제 속에 빠지지 않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게 되었어요.”

그는 브레인명상을 통해 자신을 믿고, 사랑하고, 용기있는 사람으로의 삶을 살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된 것을 큰 보람으로 느낀다. 윤애숙 씨는 그리고 할 일을 찾기 시작했다. 국학강사, 국학기공강사들이 그에게 함께하자고 했다.

“나이가 많은 내가 할 일이 있겠느냐고 물었더니, 아, 할 일이 많다고 해요. 국학강사도 젊은 사람들이 하는 줄 알았는데,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어요. 자신감이 더 생겼어요. 제가 다른 사람 앞에서 말을 잘하는 편이 아니었어요. 나서기를 주저했는데, 이제 나서서 지도하고 있어요.”

그렇게 그는 강사교육을 받고 국학기공강사 자격을 취득했다. 곧바로 복지관에서 지도하는 선배 강사를 돕는 보조강사로 활동했다. 지금은 코로나19로 쉬고 있지만, 이 상황이 진정되면 그도 강사 활동을 할 계획이다.

그는 지난해 경기국학원의 국학강사 과정을 들었다. 국학 강의를 듣고, 우리의 역사와 고유문화를 공부하면서 윤애숙 씨는 가슴이 뛰었다. 우리 역사 공부를 제대로 하고 보니, 우리 역사가 자랑스러웠고 잘못 알고 있는 것을 바로잡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선배 강사들과 매주 한 번씩 만나 우리 역사와 문화를 공부한다.

윤애숙 씨는 요즘 한 달에 한 번 산본역사로 코로나19 방역 봉사활동을 한다. 홍익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사진=김경아 기자]
윤애숙 씨는 요즘 한 달에 한 번 산본역사로 코로나19 방역 봉사활동을 한다. 홍익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사진=김경아 기자]

윤애숙 씨는 “브레인명상을 하여 나이 60 넘어 가슴 뛰는 일을 찾았어요. 앞으로 제가 할 일은 국학강사의 역할을 다해 우리의 국학을 널리 알리는 데 최선을 다 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학원을 하는 조카, 화가인 딸은 그가 강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주기로 했다.

올해는 지구시민운동에도 동참하여 윤애숙 씨는 요즘 한 달에 한 번 산본역 방역 봉사활동도 함께한다. 홍익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5
0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