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는 초기에 거란과 여진을 물리치고 국가의 기틀을 다지는 동시에 송과 활발히 교류했다. 중기에는 송이 요와 금에 의해 강남으로 밀려나면서 이들과도 복잡한 관계를 유지했다. 북방에서 몽골이 등장한 후에도 남송과 몽골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해야 했고, 원과의 오랜 항쟁 끝에 원나라의 부마국이 된 후에는 외교 수완이 큰 역할을 했다. 말기에는 원의 쇠퇴와 명의 등장, 왜구의 잦은 약탈이라는 혼란 속에서 어느 때보다 외교 역량이 중요했다.

이러한 다양한 외교관계 속에서 표전과 서신 등의 문서가 만들어졌고, 사신들은 중국을 오가면서 그 심회를 읊은 시도 남겼다.

'고려시대 외교문서와 사행시문' 표지. [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고려시대 외교문서와 사행시문' 표지. [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한국학중앙연구원(원장 안병욱, 이하 한중연)은 고려의 외교문서와 사행시 등을 연구한 『고려시대 외교문서와 사행시문』(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간)을 발간하였다.

이 책은 김건곤 한국학중앙연구원 부원장을 포함한 6인의 연구자들이 참여한 연구 성과로서, 이재현이 이역만리 티베트로 귀양간 충선왕의 석방을 요청한 문서, 조선보다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진 외국 유학, 중국에서 시행된 과거에 응시하여 국가의 위상을 높이려는 고려인들의 노력, 원명 교체기 강대국 사이에서 국가 보존을 위한 치밀한 노력 등과 관련하여 다양한 연구 성과들을 담고 있다.

먼저 1부에서는 고려시대 외교문서의 내용과 현황, 문학 특성을 고찰했다. 표전을 저작한 문장가, 특히 박인량(朴寅亮), 김부식(金富軾), 이규보(李奎報), 이제현(李齊賢), 이곡(李穀), 이색(李穡), 이숭인(李崇仁) 등의 문학적 성취를 확인하고 드러내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고려가 약소국의 상황에서도 외교문서를 통해 중국을 설득하고 감동하게 해 현안을 해결하였던 만큼, 표전을 담당했던 문인들의 문학 재능뿐만 아니라 외교 수완도 함께 확인할 수 있다.

2부에서는 고려시대에 쓰인 사행시문 전체를 시기별, 작가별로 고찰하였다. 특히 고려시대의 사행시문은 송, 금, 원, 일본 등을 오가며 지은 다양한 시문이 전한다는 점에서 사행의 노정과 작가의 흥취, 이국의 풍속 등을 다채롭게 살필 수 있다.

2부에는 ‘시문으로 나라를 빛내다(以文華國)’는 제목으로 ▲고려 전기 대중국 사행시의 양상(어강석 충북대 교수) ▲이승휴 『빈왕록』의 특징과 문학적 형상화(박용만 한국학중앙연구원 수석연구원) ▲이제현의 사행시 연구(김건곤 한국학 중앙연구원 부원장) ▲정몽주의 사행시 연구(김덕수 한국학중앙연구원 책임연구원)를 실었다.

안병욱 한중연 원장은 “기존의 중요 사건 중심의 외교 연구를 외교 문서와 시문이라는 구체적 분야로 연구 영역을 확장한 데 그 의의가 있다”고 출간의 의미를 부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