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6월 26일은 민족지도자 백범 김구 선생께서 흉탄에 서거한 날이다. 올해로 71주년을 맞았다. 미‧소 이념 갈등 속에서 한반도가 남북으로 갈리는 민족의 현실을 막아보려 끝까지 노력했던 김구 선생께서 돌아가신 1년 후 6.25 한국전쟁이 일어났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매년 6.25 한국전쟁이 큰 주목을 받는 가운데 조용히 지나가는 김구 선생의 서거일 6월 26일을 지나며 그의 꿈과 깊은 철학이 담긴 백범일지(白凡逸志)를 다시 꺼내 읽어보자.

그의 호 ‘백범’은 일지에서 스스로 밝혔듯 가장 낮은 계층인 백정의 백白과 평범한 사람, 범부를 뜻하는 범凡, 두 자로 이루어졌다. 일지는 매일 매일의 기록이 아니라 ‘알려지지 않은 기록’이란 뜻이다.

백범 김구 선생의 자서전 '백범일지' (사진='쉽게 읽는 백범일지' 표지 갈무리)
백범 김구 선생의 자서전 '백범일지' (사진='쉽게 읽는 백범일지' 표지 갈무리)

출간사에서 김구 선생이 밝혔듯 백범일지의 상권은 1929년 당시 열 살 내외였던 아들 인仁과 신信에게 남기기 위해 유서 대신 쓴 글이다. 하권 역시 중일전쟁으로 상해임시정부 기지를 잃고 나이 칠십을 바라보며 목숨을 던질 기회를 다시 기다리던 그가 미주와 하와이 한인 동포를 염두에 두고 경륜과 소감을 알리려는 유서였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광복 직후 첨예한 이념갈등을 지켜보며 “워싱턴도 모스크바도 우리의 서울은 될 수 없는 것이요 또 되어서도 안 되는 것이니, 그것을 주장하는 자가 있다면 그것은 일제시대 동경을 우리 서울로 하자는 자와 다름이 없을 것”이라고 일갈한 대목이다.

그는 “우리는 우리의 철학을 찾고, 세우고, 주장해야 한다. 이것을 깨닫는 날이 우리 동포가 진실로 독립정신을 가지는 날이요, 참으로 독립하는 날이다.”라고 했다.

백범 김구 선생께서는 광복 이후에 《백범일지》를 썼음에도 “칠십 평생 독립이 없는 백성으로 설움과 부끄러움과 애탐을 겪은 나에게, 세상에 가장 좋은 것이 완전하게 자주 독립한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보다 죽는 일”이라고 했다.

71년 전 그는 지금 이 시대 우리가 찾아야 할 가장 최우선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제시했다. 정신적 독립까지 완전히 이루어야 진정한 독립이다. 코로나19 상황을 지나며 세계인은 정신적 리더이자 평화의 리더국가로서 대한민국을 주목하고 있다. 우리의 철학을 세계인이 기다리는 상황이다.

지금 백범일지를 다시 읽고 특히, 백범일지의 말미 ‘나의 소원’을 한국인이라면, 한국의 리더라면 읽어야 하지 않을까.

세계적인 한류의 주역인 BTS(방탄소년단)의 리더 알엠(RM)은 2019년 한 시상식에서 “김구 선생이 말씀하신 ‘오직 갖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문화를 향유함으로써 사람이 사람다워진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했다. 이 또한 ‘나의 소원’에 나오는 말이다.

김구 선생께서 쓴 백범일지 중 ‘나의 소원’은 민족의 운명 앞에 비장한 마음으로 독립한 조국에 바치는 민족지도자의 간절함이다. 김구 선생이 자주 인용하던 사명대사의 글 “눈 오는 벌판을 걸을 때 어지럽게 걷지 말라. 오늘 걸어간 이 발자국들이 뒤따라오는 사람에게 이정표가 되리니“를 새기고 긴 문장 속 그의 깊고 큰 철학을 마주해보자.

백범 김구 ‘나의 소원’

민족국가

“네 소원이 무엇이냐?”하고 하나님이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 독립이오”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하면, 나는 또 “우리나라의 독립이오” 할 것이요,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하는 셋째 번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 높여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 독립이오” 대답할 것이다.

동포 여러분!

나 김구의 소원은 이것 하나밖에 없다. 내 칠십 평생 이 소원을 위해 살아 왔고, 현재에도 이 소원 때문에 살고 있으며, 미래에도 이 소원을 달성하려고 사는 것이다. 칠십 평생 독립이 없는 백성으로 설움과 부끄러움과 애탐을 겪은 나에게, 세상에 가장 좋은 것이 완전하게 자주 독립한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보다 죽는 일이다. 나는 일찍이 우리 독립 정부의 문지기가 되기를 원했거니와, 그것은 우리나라가 독립국만 되면 나는 그 나라에 가장 미천한 자가 되어도 좋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독립한 제 나라의 빈천貧賤이 남의 밑에 사는 부귀富貴보다 기쁘고, 영광스럽고, 희망이 많기 때문이다.

옛날 일본에 갔던 신라의 충신 박제상이, “차라리 계림(신라)의 개와 돼지가 될지언정 왜왕의 신하로 부귀를 누리지 않겠다” 한 것이 그의 진정이었던 것을 나는 안다. 왜왕이 높은 벼슬과 많은 재물을 준다는 것도 물리치고 제상은 달게 죽임을 받았으니, 그것은 “차라리 내 나라의 귀신이 되리라”는 신조 때문이었다.

근래 동포 중에는 우리나라가 어느 이웃 나라의 연방에 편입하기를 소원하는 자가 있다 한다. 나는 그 말을 차마 믿으려 아니하거니와, 만일 진실로 그러한 자가 있다 하면 그는 제정신을 잃은 미친놈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나는 공자‧석가‧예수의 도를 배웠고 그들을 성인으로 숭배하지만, 그들이 합하여서 세운 천당‧극락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민족이 세운 나라가 아닐진대, 우리민족을 그 나라로 끌고 들어가지 아니할 것이다. 왜냐하면 피와 역사를 같이하는 민족이란 완연히 있는 것이어서, 내 몸이 남의 몸이 되지 못함과 같이 이 민족이 저 민족이 될 수 없는 것은, 마치 형제도 한 집에서 살기에 어려운 것과 같은 것이다. 둘 이상이 합하여서 하나가 되자면 하나는 높고 하나는 낮아서, 하나는 위에 있어서 명령하고 하나는 밑에 있어서 복종하는 것이 근본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일부 소위 좌익의 무리는 혈통의 조국을 부인하고 소위 사상의 조국을 운운하며, 혈족의 동포를 무시하고 소위 사상의 동무와 프롤레타리아트의 국제적 계급을 주장하여, 민족주의라면 마치 이미 진리권의 밖의 생각같이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심히 어리석은 생각이다. 철학도 변하고 정치‧경제의 학설도 일시적이지만, 민족의 혈통은 영구적이다. 일찍이 어느 민족 안에서나 종교로, 혹은 학설로, 혹은 경제적‧정치적 이해의 충돌로 두 파 세 파로 갈려서 피로써 싸운 일이 없는 민족이 없지만, 그것도 바람같이 지나가는 일시적인 것이요, 민족은 필경 바람 잔 뒤의 초목 모양으로 뿌리와 가지를 서로 걸고 한 수풀을 이루어 살고 있다. 오늘날 소위 좌우익이란 것도 결국 영원한 혈통의 바다에 일어나는 일시적인 풍파에 불과하나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이처럼 모든 사상도 가고 신앙도 변한다. 그러나 혈통적인 민족만은 영원히, 성쇠흥망의 공동 운명의 인연에 얽힌 한 몸으로 이 땅 위에 남는 것이다. 세계 인류가 네요 내요 없이 한 집이 되어 사는 것은 좋은 일이요, 인류의 최고요 최후인 희망이요 이상이다. 그러나 이것은 멀고 먼 장래에 바랄 것이요 현실의 일은 아니다. 사해동포의 크고 아름다운 목표를 향하여 인류가 향상하고 전진하는 노력을 하는 것은 좋은 일이요 마땅히 할 일이나, 이것도 현실을 떠나서는 안 되는 것이니, 현실의 진리는 민족마다 최선의 국가를 이루어 최선의 문화를 낳아 길러서 다른 민족과 서로 바꾸고 서로 돕는 일이다. 이것이 내가 믿고 있는 민주주의요, 이것이 인류의 현단계에서는 가장 확실한 진리다.

그러므로 우리 민족의 최고의 임무는, 첫째로 남의 절제(간섭)도 아니 받고 남에게 의지도 아니 하는, 완전한 자주 독립의 나라를 세우는 일이다. 이것 없이는 우리 민족의 생활을 보장할 수 없을뿐더러, 우리 민족의 정신력을 자유로 발휘하여 빛나는 문화를 세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완전한 자주 독립의 나라를 세운 뒤에는, 둘째로 이 지구상의 인류가 진정한 평화와 복락을 누릴 수 있는 사상을 낳아 그것을 먼저 우리나라에 실현하는 것이다. 나는 오늘날의 인류의 문화가 불완전함을 안다. 나라마다 안으로는 정치상‧ 경제상‧사회상으로 불평등‧불합리가 있고, 밖으로 국제적으로는 나라와 나라, 민족과 민족의 시기알력침략, 그리고 그 침략에 대한 보복으로 작고 큰 전쟁이 그칠 사이 없어서, 많은 생명과 재물을 희생하고도 좋은 일이 오는 것이 아니라 인심의 불안과 도덕의 타락은 갈수록 더하니, 이래 가지고는 전쟁이 그칠 날이 없어 인류는 마침내 멸망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인류 세계에는 새로운 생활 원리의 발견과 실천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민족이 담당할 천직天職이라 믿는다. 이러함으로 우리 민족의 독립이란 결코 삼천리 삼천만 우리만의 일이 아니라, 진실로 세계 전체의 운명에 관한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일하는 것이 곧 인류를 위하여 일하는 것이다.

만일 우리의 오늘날 형편이 초라한 것을 보고 스스로 비하하는 자굴지심自屈之心으로, 우리가 세우는 나라가 그처럼 위대한 일을 할 것을 의심한다면 그것은 스스로 모욕하는 일이다. 우리 민족의 지나간 역사가 빛나지 아니함이 아니나, 그것은 아직 서곡이었다. 우리가 주연배우로 세계 역사의 무대에 나서는 것은 오늘 이후다. 삼천만 우리 민족이 옛날 그리스 민족이나 로마 민족이 한 일을 못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내가 원하는 우리 민족의 사업은 결코 세계를 무력으로 정복하거나 경제적으로 지배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직 사랑의 문화, 평화의 문화로 우리 스스로 잘 살고, 인류 전체가 의좋게 즐겁게 살도록 하자는 것이다. 어느 민족도 일찍이 아무도 한 자가 없었으니 그것은 공상이라고 하지 말라. 일찍이 아무도 한 자가 없기 때문에 우리가 하자는 것이다. 이 큰 일을 하늘이 우리를 위하여 남겨 놓으신 것이라고 깨달을 때, 우리 민족은 비로소 제 길을 찾고 제 일을 알아본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의 청춘남녀가 모두 과거의 조그맣고 좁다란 생각을 버리고, 우리 민족의 큰 사명에 눈을 떠서, 기꺼이 제 마음을 닦고 제 힘을 기르기를 바란다. 젊은이들이 모두 이 정신을 가지고 이 방향으로 힘을 쓴다면 30년이 못 되어, 남들이 눈을 비비고 다시 쳐다볼 정도로 우리 민족은 대내적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확신하는 바이다. 

정치 이념

나의 정치 이념은 한마디로 자유이다. 우리가 세우는 나라는 자유의 나라라야 한다.

자유란 무엇인가? 각 개인이 제멋대로 사는 것을 자유라 한다면, 이것은 나라가 생기기 이전이나, 저 레닌의 말대로 나라가 소멸된 뒤에나 가능한 일이다. 국가 생활을 하는 인류에게 이러한 무조건의 자유는 없다. 국가란 일종의 규범의 속박이기 때문이다. 국가 생활을 하는 우리를 속박하는 것은 법이다. 개인의 생활이 국법에 속박되는 것은 자유 있는 나라나 자유 없는 나라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자유와 자유 아님이 갈리는 것은 개인의 자유를 속박하는 법이 어디서 오느냐 하는 데 달렸다. 자유 있는 나라의 법은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에서 나오고, 자유 없는 나라의 법은 국민 중의 일 개인 또는 일 계급에서 오는 것을 계급 독재라 하고 통칭 파쇼라고 한다.

나는 우리나라가 독재의 나라가 되기를 원치 아니한다. 독재의 나라에서는 정권에 참여하는 계급을 제외하고 다른 국민은 노예가 되고 마는 것이다. 독재 중에서 가장 무서운 독재는 어떤 주의, 즉 철학을 기초로 하는 계급 독재이다. 군주나 기타 개인 독재자의 독재는 그 개인만 제거되면 그만이지만, 다수의 개인으로 조직된 한 계급이 독재의 주체일 때 이것을 제거하기는 심히 어렵다. 이러한 독재는 그보다도 큰 조직의 힘이나 국제적 압력이 아니고는 깨뜨리기 어려운 것이다.

우리 나라의 양반 정치도 일종의 계급 독재로 수백 년 계속하였다.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도길의 나치스 독재는 누구나 다 아는 일이다. 모든 계급 독재 중에도 가장 무서운 것은 철학을 기초로 한 계급 독재다. 수백 년 동안 조선에서 행하여 온 계급 독재는 유교, 그 중에도 주자학파의 철학을 기초로 한 것이어서, 정치뿐만 아니라 사상, 학문, 사회생활, 가정생활, 개인 생활까지 규정하는 독재였다. 이 독재정치 밑에서 우리민족의 참다운 문화는 소멸되고 원기는 마멸된 것이다. 주자학 이외의 학문은 발달하지 못하였으니 그 영향이 예술‧경제‧산업에까지 미치었다.

우리나라가 망하고 국민의 힘民力이 쇠잔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이 실로 여기 있었다. 국민의 머릿 속에 아무리 좋은 사상과 경륜이 생기더라도 그가 집권계급의 사람이 아니거나, 집권세력이더라도 사문난적斯文亂賊이라는 이단의 범주에 들어가면 세상에 발표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싹이 트려다가 눌려 죽은 새 사상, 싹도 트지 못하고 밟혀 버린 경륜이 얼마나 많았을까. 언론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만 진보가 있는 것이다.

시방 공산당이 주장하는 소련식 민주주의란 것은 이러한 독재정치 중에도 가장 철저한 것이어서, 독재정치의 모든 특징을 극단으로 발휘하고 있다. 그것은 헤겔의 변증법, 포이에르바하의 유물론 이 두 가지에, 아담 스미드의 노동가치론을 가미한 마르크스의 학설을 최후의 것으로 믿어, 공산당과 소련의 법률과 군대와 경찰의 힘을 한데 모아서, 마르크스의 학설에 일점일획一点一劃이라도 반대는 고사하고 비판하는 것도 엄금하여, 위반하는 자를 죽음의 숙청으로써 대하니, 이는 옛날 조선의 사문난적에 대한 것 이상이다.

만일 이러한 정치가 세계에 퍼진다면 전 인류의 사상은 마르크스주의 하나로 통일될 법도 하거니와, 설사 그렇게 통일이 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불행히 잘못된 이론일진대, 그런 큰 인류의 불행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마르크스 학설의 기초인 헤겔의 변증법 이론이 이미 여러 학자의 비판으로 전면적 진리가 아닌 것이 알려지지 아니하였는가. 자연계의 변천도 변증법에 의하지 아니함은 뉴튼‧아이슈타인 등 과학자들의 학설을 보아 분명하다.

그러므로 어느 한 학설을 표준으로 하여서 국민의 사상을 속박하는 것은 어느 한 종교로 정하여서 국민의 신앙을 강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옳지 아니한 일이다. 산에 한 가지 나무만 나지 아니하고, 들에 한 가지 꽃만 피지 아니한다. 여러 가지 나무가 어울려 위대한 삼림의 아름다움을 이루고, 백 가지 꽃이 섞여 피어서 봄의 풍성한 경치를 이루는 것이다. 우리가 세우는 나라에는 유교도 성하고, 불교도, 예수교도 자유로 발달하고, 또 철학을 보더라도 인류의 위대한 사상이 다 들어와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 해야 할 것이다. 이래야만 비로소 자유의 나라라 할 것이요, 이러한 자유의 나라에서만 인류의 가장 크고 가장 높은 문화가 발생할 것이다.

나는 노자의 무위無爲 사상을 그대로 믿는 자는 아니지만, 정치에 너무 인공을 가하는 것을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대개 사람이란 전지전능할 수 없고 학설이란 완전무결할 수 없는 것이므로, 한 사람의 생각, 한 학설의 원리로 국민을 통제하는 것은 일시적으로는 빠른 진보를 보이는 것 같지만, 끝내 병통이 생겨 그야말로 변증법적인 폭력의 혁명을 부르게 되는 것이다. 모든 생물에는 다 환경에 순응하여 자신을 보존하는 본능이 있으므로 가장 좋은 길은 가만히 두는 것이다. 작은 꾀로 자주 건드리면 이익보다도 해가 많다. 개인생활이 너무 잘게 간섭하는 것은 결코 좋은 정치가 아니다. 국민은 군대의 병정도 아니요, 감옥의 죄수도 아니다. 한 사람 또 몇 사람의 호령으로 끌고 가는 것이 극히 부자연하고 또 위태한 일이라는 것ㅎ은, 파시스트 이탈리아와 나치스 독일이 불행하게도 가장 잘 증명하고 있지 아니한가.

미국은 이러한 독재국에 비교하여 통일이 안 되는 것 같고 일의 진행이 느린 듯하여도, 그 결과로 보건대 가장 큰 힘을 발하고 있으니, 이것은 그 나라의 민주주의 정치우 효과이다. 무슨 일을 의논할 때 처음에는 백성들이 저마다 제 의견을 발표하여 소란하고 통일되지 않는 것 같지만, 갑론을박甲論乙駁으로 서로 토론하는 동안 의견이 차차 정리되어 마침내 두어 큰 진영으로 포섭되었다가, 다시 다수결의 방법으로 한 결론에 도달하여, 국회의 결의가 되고 원수元帥의 결재를 얻어 법률이 이루어지면, 국민의 의사가 결정되어 요지부동하게 되는 것이다.

이 모양으로 민주주의란 국민의 의사를 알아보는 절차 또는 방식이요, 그 내용은 아니다. 즉 언론의 자유, 투표의 자유, 다수결에 복종, 이 세 가지가 곧 민주주의이다. 국론, 즉 국민의 의사는 그때그때 국민의 언론전言論戰으로 결정되는 것이어서, 어느 개인이나 당파의 특정한 철학적 이론에 좌우되지 않는 것이 미국식 민주주의의 특색이다. 다시 말하면 언론, 투표, 다수결 복종이라는 절차만 밟으면 어떠한 철학에 기초한 법률도 정책도 만들 수 있으니, 이것을 제한하는 것은 오직 그 헌법의 조문뿐이다. 그런데 헌법도 결코 독재국의 그것과 같이 신성불가침의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절차로 개정할 수 있는 것이니, 이러므로 민주, 즉 백성이 나라의 주권자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나라에서 국론을 움직이려면 어떤 개인이나 당파를 움직여서 되지 아니하고, 그 나라 국민의 의견을 움직여야 된다.

백성들의 작은 의견은 이해관계로 결정되거니와, 큰 의견은 그 국민성과 신앙 및 철학으로 결정된다. 여기서 문화와 교육의 중요성이 생긴다. 국민성을 보존하는 것이나 수정하고 향ㅅ항하는 것이 문화와 교육의 힘이요, 산업의 방향도 문화와 교육으로 결정됨이 큰 까닭이다. 교육이란 결코 생활의 기술을 가르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교육의 기초가 되는 것은 우주와 인생과 정치에 대한 철학이다. 어떠한 철학의 기초 위에, 어떠한 생활의 기초를 가르치는 것이 곧 국민교육이다. 그러므로 좋은 민주주의의 정치는 좋은 교육에서 시작될 것이다. 건전한 철학의 기초 위에 서지 아니한 지식과 기술의 교육은 그 개인과 그를 포함한 국가에 해가 된다. 인류 전체를 보아도 그러하다.

이상에 말한 것으로 내 정치 이념을 대강 짐작할 것이다. 나는 어떠한 의미로든지 독재정치를 배격한다. 나는 우리 동포를 향하여서 부르짖는다. 결코 독재정치가 아니 되도록 조심하라고, 동포 각 개인이 충분한 언론 자유를 누려서 국민 전체의 의견대로 정치하는 나라를 건설하자고, 일부 당파나 한 계급의 철학으로 다른 다수를 강제함이 없고, 또 현재 우리들의 이론으로 우리 자손의 사상과 신앙의 자유를 속박함이 없는 나라, 천지와 같이 넓고 자유로운 나라, 그러면서도 사랑의 덕과 법의 질서가 우주 자연의 법칙과 같이 준수되는 우리나라를 건설하자고.

그렇다고 내가 미국의 민주주의 제도를 그대로 받아들이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소련의 독재적인 민주주의에 대하여 미국의 언론자유적인 민주주의를 비교하여서 그 가치를 판단하였을 뿐이다. 둘 중에서 하나를 택한다면 사상과 언론의 자유를 기초로 한 것을 취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나는 미국의 민주주의 정치 제도가 반드시 최후적인 완성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인생의 어느 부분이나 마찬가지로 정치 형태도 무한한 창조적 진화가 있을 것이다. 더구나 우리나라와 같이 반만년 이래 여러 가지 국가 형태를 경험한 나라에는 결점도 많으려니와, 교묘하게 발달된 정치제도도 없지 아니할 것이다. 가까이 조선시대만 보더라도 홍문관, 사간원, 사헌부 같은 것은 국민 중에 현인賢人의 의사를 국정에 반영하는 멋있는 제도요, 과거제도와 암행어사 같은 것도 연구할 만한 제도다. 역대의 정치제도를 상고하면 반드시 쓸 만한 것도 많으리라 밑는다. 이렇게 남의 나라의 좋은 것을 취하고 내 나라의 좋은 것을 골라서, 우리나라에 독특한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세계 문명에 이바지하는 일이다. (2편 백범 김구의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에서 계속)

참고: ‘쉽게 읽는 백범일지’ (김구 지음/도진순 엮어 옮김, 돌베게, 200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