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기록원은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당시 국군의 치열했던 전투상황을 엿볼 수 있는 기록물을 5년 6개월에 걸쳐 복원을 완료하고, 복원된 원본의 디지털이미지 원문을 국가기록원 누리집을 통해 처음으로 대국민 공개한다고 밝혔다.

국가기록원이 소장한 6.25전쟁 관련 기록물은 1950~1955년 국방부 육군본부가 생산한 기록물로서 총 1,826건(11,049매)이며, 이번에 복원된 기록물은 이중 1950~1952년 주요 전투의 작전명령서와 작전지도 등 401건(2,348매)이다.

국군 제6사단 작전명령 제31호. [사진=국가기록원]
국군 제6사단 작전명령 제31호. [사진=국가기록원]

국가기록원은 종이 복원 전문인력에 의해 약 5년 6개월에 걸쳐 훼손된 6.25 기록물을 한지를 이용한 결실부 보강처리, 테잎 및 오염물제거, 수작업으로 탈산처리하여 복원하였으며, 문서보관용 중성폴더와 지도 크기에 맞는 대형 중성 도면폴더를 직접 제작하여 안전하게 보존되도록 처리하였다.

복원 완료된 401건(2,348매) 기록물은 고해상도 디지털화를 수행하고 국가기록원 누리집(http:/www.archives.go.kr)에 공개되었다. 누리집의 팝업창을 통해 좀더 신속하고 편리하게 원문을 볼 수 있다.

복원된 6.25전쟁 주요 전투내용은 6.25전쟁 발발 직전 국군의 방어 계획에서부터 북한군의 남침 당일 전개된 ‘춘천전투’와 낙동강방어선을 저지하고 반격한 ‘다부동 전투’ 및 ‘장사상륙작전’, 그리고 ‘평양탈환작전’과 중공군 개입으로 인해 38도선을 철수하면서 치러진 ‘백마고지 전투’ 등이다.

국군제6사단 작전명령 제31호. [사진=국가기록원]
국군제6사단 작전명령 제31호. [사진=국가기록원]

 

국가기록원에서는 지난 2014년과 2016년 두 차례에 걸쳐, 복원대상 401건(2,348매)을 대상으로 당시 복원이 진행중인 기록물 일부를 공개한 바 있으나, 올해로 복원대상 전량이 완료되어, 복원된 이미지의 6.25 기록물 원문 전체를 볼 수 있는 온라인 서비스를 하는 것은 처음이다.

춘천전투

‘춘천전투(‘50.6.25~6.30)’는 기습공격을 감행해 온 북한군을 막아낸 전투로, 당시 수도권을 포위하려던 북한군의 작전계획에 커다란 차질을 빚어 국군이 한강방어선을 형성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하여 “춘천대첩”으로 명명될 만큼 6.25전쟁 초기 전투에서 매우 중요한 전투다.

‘국군 제6사단 작전명령 제31호’(‘50.6.25)는 ‘춘천전투’ 관련 작전명령서와 작전지도, 각종 일람표, 전쟁대비 방침 등을 담고 있다. 이중 ‘작전지구 주민철수 계획요도’는 춘천과 홍천에 각각 철수 주민집합소, 포로집합소, 낙오자수용소 등을 뜻하는 기호가 표시되어 있다. 이것으로 당시 춘천지역을 담당했던 제6사단이 전쟁 발발을 예상하고 철저하게 대비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육군본부 작전명령 제91호. [사진=국가기록원]
육군본부 작전명령 제91호. [사진=국가기록원]

 

‘사단작전 경과요도’는 6월 25일 개전 당일부터 춘천지역 전쟁이 소강상태였던 1952년 8월 7일까지의 아군과 접촉한 적군 대호, 전투상황별 전과통계, 피해통계 등 당시 전투 상황과 경과를 상세히 알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낙동강 방어선 및 다부동전투

북한군이 8월 15일 부산 점령을 목표로 7월말에 낙동강까지 내려오자, 국군은 낙동강 방어선을 형성하여 대구를 방어하고 이어 인천상륙작전으로 반격하여 6.25전쟁의 최대 위기를 극복하였다.

낙동강 방어선은 낙동강까지 내려오는 적을 저지하기 위한 최후의 방어선으로, 지형적방어가 유리한 낙동강을 따라 연결된 지역(마산-왜관-영덕) 240km에 형성하였다.

‘육군본부 작전명령 제91호(’50.7.31), 94호(’50.8.2), 119호(’50.8.11)’는 육군본부가 낙동강 연안에서의 방어에 관한 이동과 철수명령을 제 1·2군단과 제 1사단에게 하달한 작전명령서이다.

육군본부 작전명령 제94호. [사진=국가기록원]
육군본부 작전명령 제94호. [사진=국가기록원]

 

제12군단에게 적을 저지, 낙동강 인근으로 이동명령(제91호), 8월 3일까지 낙동강방어선으로 철수명령(제94호), 제1사단에게 8월 12~13일에 변경된 방어선 “Y(왜관 작오산(303고지)-수암산-유학산-군위-보현산)”로 이동명령(제11소) 등 구체적인 작전계획이 담겨있다.

6.25전쟁에서 가장 치열했던 전투로 꼽히는 ‘다부동전투’(‘50.8.3~9.22)는 낙동강 방어전선 중 최대 격전지인 대구로 향하는 길목(칠곡군 가산면 일대)에서 국군 1사단이 적 3개 사단에 대응하여 벌인 전투로 대구 방어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전투이다.

‘육군본부 작전명령 제138호(’ 50.8.17) 및 139호(’ 50.8.18), 1사단 15연대 작전명령 제23호(’ 50.8.12)‘에는 친필로 작성된 작전명령서와 작전지도가 포함되어 있고 지형이 생략된 채 간략히 그려져 있어 당시 전시 상황이 매우 긴박했음을 알 수 있다.

육군본부 작전명령 제 138호. [사진=국가기록원]
육군본부 작전명령 제 138호. [사진=국가기록원]

 

이 기록물에는 제1사단의 주저항선 확보 및 북방공격 명령(제138호), 적의 남하(군위-다부동-칠곡)기도 정황, 적의 사기 저하 및 10연대의 1사단 배속·동석(東石, 다부동 남쪽 9km 위치의 동명초등학교 소재지로 1사단 사령부 설치 장소)

장사상륙작전

‘장사상륙작전(’50.9.14)’은 인천상륙작전(‘50.9.15)을 위한 후방 교란 작전으로 포항 북부 장사리에 주로 학도병으로 구성된 부대를 투입한 전투로 알려져 있다.

육군본부 작전명령 제139호. [사진=국가기록원]
육군본부 작전명령 제139호. [사진=국가기록원]

 

‘육군본부 작전명령 제174호(‘50.9.10)’는 6.25 전쟁 당시 희생된 학도병을 언급한 유일한 공식문서이다. 이 기록물의 내용 중 “육본 직할 유격대장은 예하 제1대대를 상륙 감행시켜 동대산(東大山/포항북부 소재)을 거점으로 적의 보급로를 차단, 제1군단의 작전을 유리케 하라”는 명령서가 포함되어 있는데 여기서의 ‘유격부대’가 어린 학도병으로 구성된 부대를 의미한다.

평양탈환작전

‘평양탈환작전(‘50.10.15~20)’은 서부전선으로 진격한 제1사단과 미 제1기병사단이 중부전선으로 진출한 국군 제7사단과 함께 평양을 포위 공격하여 평양을 탈환한 공격작전이었다.

육군본부 작전명령 제218호-평양탈환. [사진=국가기록원]
육군본부 작전명령 제218호-평양탈환. [사진=국가기록원]

‘육군본부 작전명령 제218호(‘50.10.17)’는 당시 이승만대통령의 평양점령 지시를 국군 제2군단에 하달한 작전명명이다. 이 기록물에는 가능한 최단 시간 내 군단의 전 병력을 동원하여 서쪽으로 공격을 계속 실시할 것과 미 제1군단과 협력하여 평양의 동쪽 및 동북쪽으로부터 즉시 평양을 공격할 것, 북진을 계속하기 위한 차기작전을 준비하라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백마고지 전투

‘백마고지전투(‘52.10.6~15)’는 철원 북방의 백마고지를 확보하고 있던 국군이 중공군의 공격을 받아 10여 일간 12차례의 쟁탈전을 반복하여 고지방어에 성공한 전투이다. 백마고지 전투는 혈전을 거듭한 끝에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고, 그 결과 우리 국군은 철의 삼각지대(강원도 평강군·철원군·김화군) 일각인 철원지역을 계속 장악할 수 있게 되었다.

백마고지는 강원도 철원 고암산과 효성산이 교차해 남동쪽으로 흐르는 능선의 끝자락에 위치한 해발 395m의 돌출된 야산으로 철원-평강-김화로 이어지는 전략적 요충으로 많은 통로와 병력의 이합집산이 용이한 공간을 제공하는 중요지형이다.

국군 제9사단 작전명령 제85호-백마고지 전투. [사진=국가기록원]
국군 제9사단 작전명령 제85호-백마고지 전투. [사진=국가기록원]

 

‘국군 제9사단 작전명령 제85호’(1952.10.4)는 ‘백마고지전투’의 작전지도와 명령서이다. 이 기록물에는 수일 이내의 적의 공격을 예상하여 방어책을 긴급히 보강하고 역습명령이 하달되면 즉각 공격할 수 있는 대세를 갖추고 기동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양영조 군사편찬연구소 전쟁사연구부장은 “국가기록원이 이번에 복원한 기록물들은 6.25 전쟁 기간 중 국군이 생산한 자료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희소성이 매우 높은 문서이며, 당시의 전투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한국 전쟁사 연구의 핵심 자료다.”라고 말했다.

이소연 국가기록원 원장은 “이 기록물들을 통해 6·25 전쟁에서 목숨을 걸고 치열하게 전투를 치른 선열들의 희생정신을 기리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앞으로 국가기록원은 우리 후손에게 6·25 전쟁 기록물을 안전하게 보존·전승할 수 있도록 노력을 다하겠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