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특질로 한국인은 정(情)이 많은 것과 잘 잊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외국어로 번역될 수 없는 한국어 중에서 1위는 단연코 정(情)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인에게 정(情)은 인간미를 의미합니다. ‘정(情)’이라는 말속에는 ‘따뜻함, 마음 씀, 친근감’ 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정(情)에는 ‘고운 정’뿐만 아니라 ‘미운 정’도 있습니다. ‘미우나 고우나’ 남편이고, 아내고, 가족이고, 이웃입니다. 우리에게는 정은 미워도 고와도 같이 사는 정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미운 놈에게도 떡 하나를 더 준다’는 표현을 합니다.

이화영 교사(인천 계산공고)
이화영 교사(인천 계산공고)

 정(情)은 자신의 이익이 아닌 남을 우선한 감정입니다. 내 입장이 아니라 남의 입장을 고려해야 정은 생겨납니다. 정이 있다는 건 다른 사람의 일을 내 일처럼 느낀다는 겁니다.
 정을 앞세우는 우리 문화에서 부정적인 측면으로는 ‘우리가 남이가’ 하는 온정(溫情)주의 폐단이 있습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측면으로는 외환위기 때 금 모으기 운동, 태안 유조선 사고 때 자원봉사 활동, 이번 코로나 19 사태 때 시민들의 자발적인 방역활동 이런 것들은 긍정적인 측면으로 작용한 결과입니다.
 ‘정(情)’은 남을 나처럼 여기는 마음에서 나오기에 이 마음을 키우면 홍익이 됩니다. 왜 한국인은 ‘정(情)’이 많은가? 우리에게는 반만년 동안 이어온 홍익의 DNA가 있기 때문에 홍익정신의 축소된 모습이 ‘정(情)’으로 표현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인의 또 다른 특질로 잘 잊어버리는 것이 있습니다. 이러한 특질이 부정적인 측면으로 악용되어 정치인들이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해도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고 심지어 반민족적인 친일행위를 했던 사건마저도 쉽게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잘 잊어버리는 한국인의 특질이 단점이므로 고쳐야 한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왜 이렇게 잘 잊어버리는 습성을 갖게 되었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중국 《후한서(後漢書)》 동이전(東夷傳)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동이의 뜻을 “동방을 이(夷)라 하며 이(夷)는 근본(根本)이다. 어질고 착하며 만물을 낳게 하고 땅에 뿌리를 내리고 나온다는 말이다. 그러한 까닭에 타고난 바탕(天性)이 부드럽고 순리에 따라 살며 도(道)로 다스리기가 쉬우며 군자가 있어 죽지 않는 나라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기록으로 보아 우리 민족은 어진 품성(仁)을 가진 민족이었습니다. 어질 인(仁)의 갑골문자를 보면 위, 아래 ㅡ이 같은 길이로 되어있습니다. 그 의미는 나와 남을 같게 보라는 의미입니다. 즉 어질다는 것은 남을 나처럼 여기는 마음인 것입니다.
 남을 나처럼 여기기에 어진 사람은 용서를 잘 하고 용서를 잘하는 사람은 남의 잘못을 마음에 두지 않고 잘 잊어버립니다. 단군조선시대 약 2000년 동안을 홍익정신을 가지고 어진 품성으로 지내온 우리는 잘 잊어버리는 것이 습성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양심의 도리로 다스려지던 군자의 나라에서는 이 습성이 장점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양심의 도리가 약해지고 소시오패스들이 활개 치는 세상에서는 잘 잊어버리면 이점을 악용하니 고쳐야 될 나쁜 습성으로 여기게 된 것이 아닐까요?

 잘 잊는 마음이 어진 품성의 결과였다면 잘 잊는 마음을 고치려 하기보다는 양심의 도리로 다스려지는 세상을 만들려고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잘 잊는 마음, 이것은 우리가 고쳐야 할 마음이 아니라 이것을 통해 우리의 원래 품성인 어진 마음을 되찾아 가는 단서로 삼아야 하고 양심의 도리로 세상이 다스려지는 홍익인간 이화세계를 이루는 좋은 재료로 삼아야 합니다.

 단군조선이 망하고 점차로 홍익정신이 쇠퇴면서 홍익의 큰마음은 ‘정(情)’으로 어진 품성은 잘 잊는 습성으로 왜곡되었습니다. 사람에게는 성(性)과 정(情)이 있습니다. 성(性)은 心(마음 심)이 의미부고 生(날 생)이 소리부로 사람의 본성을 말하는데,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갖는 선천적인(生) 마음(心), 변하지 않는 마음, 참나를 의미합니다.
 정(情)은 心(마음 심)이 의미부고 靑(푸를 청)이 소리부입니다. 청(靑)은 초목의 색깔로 초목이 점차 성장하면서 처음의 색깔이었던 연두색이나 옅은 초록색도 점차 짙은 초록색으로 변하고, 다시 노랑이나 빨강색으로 변해 결국에는 떨어집니다. 이것이 자연의 속성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청(靑)으로 구성된 정(情)은 후천적인 마음, 변하는 마음, 에고(생각, 감정, 오감)를 의미합니다.
 성(性)의 속성을 이야기할 때 사단(四端), 즉 인(仁)에서 우러나는 측은지심(惻隱之心: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애처롭게 여기는 마음), 의(義)에서 우러나는 수오지심(羞惡之心: 의롭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착하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 예(禮)에서 우러나는 사양지심(辭讓之心: 겸손하여 남에게 사양할 줄 아는 마음), 지(智)에서 우러나는 시비지심(是非之心: 옳고 그름을 판단할 줄 아는 마음)의 네 가지를 말하는데, 이는 참나에서 우러나오는 나오는 네 가지 마음씨를 말합니다. 참나에서 나오는 마음이 양심(良心)이므로 즉 양심은 인(仁)·의(義)·예(禮)·지(智) 네 가지 마음으로 나타나고 이것이 홍익의 마음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정(情)문화는 홍익의 문화로 잘 잊는 습성은 어진 품성으로 진화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 인류는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혼란스러운 상황으로 새로운 표준, 새로운 가치, 새로운 문화, 새로운 질서가 요구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K방역이 세계인들의 관심을 받게 된 것도 새로운 표준의 가능성이 제시되었기 때문입니다. K방역의 핵심에는 의료진들의 불굴의 희생정신, 남을 먼저 생각하는 국민의 마스크 착용이나 사회적 거리 두기, 또 힘들지만 철저하게 자가 격리를 준수하는 모습 등, 남을 나처럼 여기는 홍익의 마음, 성숙된 시민의식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남을 나처럼 여기는 홍익의 마음이 사람의 본성(本性)이고 양심입니다. 양심이 밝아진 정도를 영성지능이라고 합니다. 고대에 우리는 영성지능이 높아서 어질고 선하다는 평을 들었고 중국을 포함한 동방 문화의 표준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앞으로 우리가 홍익정신이 핵심가치로 자리 잡은 새로운 표준, 새로운 가치, 새로운 문화,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간다면 우리가 만드는 것들이 인류의 표준이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홍익의 DNA가 있고 높은 영성지능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꿰뚫어본 원불교를 창시한 소태산 박중빈 선생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나라가 장차 세계의 일등국이 될 것이다. 그 일등국이란 돈이나 힘으로 되는 그런 일등국이 아니다. 부자의 나라 미국이나 구라파 같은 그런 일등국도 아니요, 군사력이 강한 나라도 아니다. 내가 말하는 일등국이란 도덕으로 인류를 구원하는 나라이다. 앞으로는 도덕이 아니고는 인류를 구원할 수 없으며 그런 도덕국이라야 세계의 지도국이 되고 중심국이 될 것이다. 지금 이 나라는 점진적으로 어변성룡(魚變成龍)이 되어가고 있다” 
 싱가포르, 타이완, 홍콩과 더불어 우리는 아시아의 4마리 용으로 불렸듯 이미 물질적으로는 어변성룡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우리의 잠재된 영성을 깨우고 정신적인 어변성룡으로 거듭나서 세계의 정신 지도국이 되자는 K스피릿 지구시민운동이 일어날 때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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