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서 첫 공원지도를 했던 은성혁 단장은 올해로 국학활동 16년째를 맞는다. 매번 10여 개의 약을 하루 세 번씩 3년간 먹었던 그는 아내의 추천으로 자연치유력에 좋다는 국학기공 수련을 했다. 1년 후 건강한 몸으로 회복되었으며 홍익철학이 좋았던 그는 눈이 무척 많이 왔던 날 소한 절기라 영하 15도를 오가는 데도 새벽에 거머리 산에 올랐다. 한 중학교 교사를 수련지도한 것을 시작으로 차츰 회원이 늘어 4월에는 60여 명이 되었다. 그는 당시 “첫해 스승의 날 회원들이 모아준 돈으로 양말을 사서 회원은 물론 산에 올라오는 주민에게도 나눠주었죠.”라고 추억했다.

오직 주민건강을 위해 무보수로 활동하던 중 남동구청 공보실에서 이를 알고 7곳의 수련장을 마련해주고 후원해주었다. 첫 번째 거머리산 수련장이 올해로 13년째를 맞는다. 그가 10년이 넘게 관리한 수련장만도 여러 곳이다. 그 비결은 끈기와 인내심이다. “달이 차면 기울 듯 주변에 유사한 운동이 인기를 끌면 회원이 급속하게 줄 때가 있죠. 그럴 때 강사는 기운을 잃고 포기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단 한 명의 회원을 두고도 꾸준히 변치 않고 계속하면 새로운 사람들이 꼭 찾아오고 어느새 수련장이 꽉 찹니다. 포기하지만 않으면 됩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회원들과 서로 마음을 나누고 친숙해져 경조사에 빠지지 않고 중매를 섰던 적도 있다. 국학기공대회나 국학행사가 있을 때마다 많은 회원과 함께 참여해 국학이 무엇인지 알렸다. 1997년 8월 17일 독립기념관에 전국에서 5만여 명이 모인 행사 때는 400명이 넘는 동호회원과 함께 참석했고 자녀는 진행요원으로 활동했다고 한다. “2002년 상암월드컵경기장에 10만여 명이 모인 지구인 축제 때도 회원들과 참가해 가슴이 벅찼습니다. 올해는 회원들과 한민족역사문화공원을 찾을 예정입니다.”

그는 현재 국학평화봉사단을 이끌고 있다. 인천에서는 처음으로 구월4동 사무소에서 무료급식을 시작했다. 매주 금요일 이곳을 찾는 독거노인들은 어디에서 먹는 것보다 정성스럽고 맛있다고 호응이 좋았다. 이로 인해 동사무소가 전국 주민자치센터 최우수상을 받았고 이제는 지역 부녀회 등에서도 참여해 주 3회씩 이루어지고 있다.

활동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 고비도 많다. 그런 가운데서도 지금까지 꾸준하게 활동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매일 빠짐없이 하는 수련에 있다. “옛 선조가 했던 것처럼 새벽 4시면 일어나 절 수련과 뇌파진동, 정충호흡 수련을 하죠. 절 수련 1천 배를 210일간 꾸준히 하기도 했고 500배를 7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했습니다. 물론 지금도 하는데 체력단련은 물론이고 근기가 생깁니다. 저 자신을 깊이 있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통해 마음이 다져진 것 같습니다.”라는 은성혁 단장에게서 강한 신념을 엿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