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에 이어) 사려 깊고 씩씩하게만 보이는 오유진(18) 양에게 지난 시간, 상처가 하나 있었다. 사회에서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 그로인해 우울증과 불안장애, 공황장애를 겪었고 불면증과 식이장애에 시달렸다. 가까운 사람들조차 이해해주지 못했고, 상황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는 인간관계가 끊어지기도 했다. 그냥 학교를 다녔더라면 겪지 않을 일이었다거나 네가 스스로 찾아간 게 아니냐는 시선은 감당치 못할 상처에 깊은 흉터를 남겼다. 하지만 그 일은 학교를 다녔어도 겪을 수 있던 불행이었다.

벤자민인성영재학교 7기 대구학습관 학생들과 맨발 걷기를 한 오유진 양. [사진=본인 제공]
벤자민인성영재학교 7기 대구학습관 학생들과 맨발 걷기를 한 오유진 양. [사진=본인 제공]

벤자민학교에 입학해서 처음 한 집단상담에서 유진이가 성범죄에 관심이 많은 걸 알아차려 준 상담선생님은 성교육 멘토를 만날 수 있도록 도왔다.

“제 이야기를 알고도 저를 편견 없이 바라봐주는 어른이 있다는 사실이 정말 든든했어요. 일주일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만나 상담을 하면서 만날 때마다 마음이 조금씩 편안해졌어요. 멘토님과의 만남은 어쩌면 한번으로 끝났을 수 있는데 제가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했고 멘토님이 따뜻하게 대해주셨죠. 제 이야기를 해도 안전한 곳이 있다는 게 제게는 너무나 소중했어요. 아직 세 번밖에 뵙지 못했지만 짧은 동안 멘토님 덕분에 제가 많이 당당해진 걸 느껴요.”

대구학습관 이정혜 부장선생님은 “벤자민학교에서 멘토와의 연결은 핵심 프로그램 중 하나죠. 교수, 변호사, 기업가는 물론 모험가 멘토, 인성멘토 등 각계각층에서 멘토를 찾아 아이들과 연결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꺼이 참여해주는 분들이 많습니다.”라고 했다.

유진이는 벤자민학교에서 자신이 기획하는 첫 프로젝트로 두려움을 극복하고자 ‘성性 문화 연설대전’에 참가했다. 국회의원과 서울시의회, 한국YMCA 등이 주최하는 청소년 연설대전행사는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으로 전환되어 지난 2일 유진이는 5분 여의 영상을 제출했다. “성폭력과 성착취에 대해 분명한 목소리를 내고자 했어요. 가해자가 숨어야하는데 왜 피해자가 숨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요. 혐오 발언과 생명의 위협에 대해 제 경험을 이야기했어요.” 

유진 양은 자신만의 벤자민 프로젝트를 하면서 사건들을 점점 정리하고 객관화시켜나갈 수 있었다. “아직까지 터널을 완벽하게 빠져나왔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여전히 울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지만 저는 저를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살아줘서 고맙다고 하고 싶어요.”

(왼쪽) 오유진 양은 자신만의 벤자민프로젝트를 다양하게 진행 중이다. (오른쪽) 대구학습관 친구들과 함께 한 모습. [사진=본인 제공]
(왼쪽) 오유진 양은 자신만의 벤자민프로젝트를 다양하게 진행 중이다. (오른쪽) 대구학습관 친구들과 함께 한 모습. [사진=본인 제공]

오유진 양은 벤자민학교에 와서 평소 중요하다고 여겼던 ‘좋은 환경’과 ‘좋은 사람들’을 만난다고 했다. “중학교를 다닐 때는 좋은 정보가 있으면 일부는 공유하지만 다들 중요한 건 나만 가지려고 했거든요. 여기서는 무조건 공유해요. 최근 대구광역시에서 독도‧울릉도탐방단을 모집했는데 제가 먼저 알게 되어 공유했고, 여러 친구들과 함께 가게 되었죠.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어요. 벤자민학교의 분위기 속에서 제가 점점 변화해 나가는 걸 느껴요.”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벤자민학교 친구들과 직접 만나 프로젝트를 함께할 기회가 적었으나 5월 초 학교에서 주최하는 ‘사랑과 감사의 효孝 UCC 대회’ 준비를 같이 했다. 각자 부모님의 발을 씻겨드리거나 어깨 힐링을 해드리거나 주변에서 만나는 의료진, 경비원 아저씨 등 고마운 분들에게 고마움을 전한 사진과 영상을 모아 출품했다.

그리고 지난 6월 4일 처음으로 전국 17개 학습관 친구들과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워크숍이 열렸다. 매월 개최되어야 할 워크숍이었지만 온라인으로만 진행되다 함께 모일 수 있었다. 생활방역으로 거리두기를 했지만 함께 공감하고 어울릴 수 있는 게 즐거웠다.

유진이는 “국학기공이 너무나 재미있었어요. 처음에는 무예라서 멋지다고만 여겼는데 자신에게 집중하며 단련하는 느낌이 남달랐어요. 게다가 음악과 분위기 때문인지 나라사랑하는 마음이 올라오더라고요. 교장선생님께서 하신 보스(B.O,S. Brain Operating System 뇌활용) 명상도 인상 깊었어요.”라고 말했다. 그날 워크숍 마지막에 효UCC대회 시상식이 열려 대구학습관 학생들도 수상했다.

벤자민인성영재학교 올해 첫 오프라인 워크숍에서 '사랑과 감사의 효 UCC대회'에 출품한 대구학습관 학생들이 수상하는 모습. [사진=벤자민인성영재학교]
벤자민인성영재학교 올해 첫 오프라인 워크숍에서 '사랑과 감사의 효 UCC대회'에 출품한 대구학습관 학생들이 수상하는 모습. [사진=벤자민인성영재학교]

유진이는 자신을 다양한 방면에서 변화시킨 벤자민학교의 경험으로 ‘일지’쓰기를 꼽았다. “가장 좋은 건 기록을 하는 습관이 생긴 거예요. 평소 글쓰기를 좋아하지만 제 하루하루를 기록하진 않았거든요. 일지를 매일 적고 블로그 활동도 하다 보니 제 일상을 기록하게 되고 작은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며 그 가치를 찾아내려고 노력하는 습관도 생겼어요. 아마 평생 기록하는 삶을 살지 않을까 해요.”

그 습관과 되찾은 당당함 덕분에 18살 유진이는 자신의 첫 에세이를 출간하게 되었다. 지난해 말부터 다니는 출판사 사장님께 개인소장용 책을 내고 싶다고 말씀드렸고, 유진이가 글을 열심히 쓰는 모습을 본 사장님은 정식 출간을 제의했다. 사장님은 편집과정 등에서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안녕, 내 짝꿍’이란 책은 유진이에게 ‘성장에세이’라고 한다. 책에는 지난해 고통의 터널을 지날 때 찍은 사진들이 담겼다. 그때 집이란 공간조차 답답했던 유진이가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건 자신이 책임질 반려견 ‘둥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제 우주는 보호받지 못했지만 둥이의 우주만큼은 지켜주고 싶었어요. 둥이와 있으면 환하게 웃는 제 얼굴을 보면서 희망을 찾았어요.” 유진이는 둥이와의 가깝고 먼 여행들을 사진으로 남겼던 것이다.

오유진 양은 지난 5월 자신의 성장에세이 '안녕, 내 짝꿍'을 출간했다. [사진=본인 제공]
오유진 양은 지난 5월 자신의 성장에세이 '안녕, 내 짝꿍'을 출간했다. [사진=본인 제공]

오유진 학생은 벤자민학교의 독특한 커리큘럼으로 ‘뇌교육’을 이야기했다. “사실 제게 아직 뇌교육이라는 말이 어렵게 느껴져요. 하지만 벤자민학교에 와서 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고 있는 건 확실해요. 그러다 보니 예전에는 제 감정을 표현하는 일도 굉장히 힘들고 어색했는데 요즘에는 표현하는 능력도 굉장히 성숙해진 것 같아요.”라고 했다.

유진이는 대구학습관 친구들과 독도울릉도 탐방뿐 아니라 6월 시민공익활동지원센터에서 주최하는 ‘씨앗’공모 프로젝트에 참가하고자 한다. “프로젝트를 통해 성폭력 피해자를 돕는 인권활동을 하고 가능하면 직접 지원하는 일을 해보고 싶어요.”

유진이가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은 무엇일까? “저는 성폭력 생존자들과 연대하고 그들을 돕겠다는 꿈이 있어요. 그리고 ‘모든 아이들의 우주를 품을 수 있는 배움터’를 설립하고 싶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폭력과 혐오를 없애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유진 양에게 또래 청소년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요청했다.

“공감이 될지 모르겠지만 모든 청소년이 진정으로 행복한 순간을 느껴보면 좋겠어요. 저는 새로운 분야에서 제가 생각지도 못한 지점을 알게 되면서 사고의 틀이 깨지는 순간 너무나 행복하고 짜릿해요.

자퇴를 할까? 대안학교를 갈까? 망설이는 친구가 있다면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어요. ‘어떠한 상황에서도 네가 네 삶을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네 선택을 믿어도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