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정해져 있고 앞이 훤히 다 보이는 길을 걷는 게 인생이라면 저는 더 이상 노력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어요. 똑같은 교육을 모든 아이들에게 하는 것은 같은 크기의 옷과 신발을 입히고 신기는 일이 아닐까요?”

2017년 10월 중학교 2학년이던 오유진(18)은 자신이 공교육을 떠나야할 이유와 그동안 인터넷을 통해 대학진학 및 자퇴와 관련해 찾은 수많은 자료를 100장의 편지에 담았다. 중학교 자퇴라는 것에 부모님도 크게 놀랐고 힘들어하셨다. 대학진학 전 같은 고민을 했던 어머니가 먼저 이해를 해주셨고, 아버지도 100장의 편지 속에 담긴 유진이의 마음을 알아주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학교 밖을 택한 딸과 주변 지인의 자녀들을 바라보며 불편해하셨다.

자유학년제 벤자민인성영재학교 7기 대구학습관 오유진 학생과 반려견 둥이. [사진=본인 제공]
자유학년제 벤자민인성영재학교 7기 대구학습관 오유진 학생과 반려견 둥이. [사진=본인 제공]

지난 2년 6개월간 유진이는 중‧고교 검정고시를 통과했고 학교 밖 청소년을 위한 꿈드림과정을 운영하는 대구청소년창의센터에서 자신이 배우고 싶은 다양한 분야의 공부를 했다. 올해 초 우리나라의 첫 완전자유학년제 대안학교인 벤자민인성영재학교(이하 벤자민학교)에 입학한 유진이는 자신을 조건 없이 사랑하는 법을 배웠고, 친구들과 함께 더 넓은 세상에서 꿈을 펼칠 준비를 하고 있다.

올해 5월 반려견 둥이와의 여행을 담은 성장에세이 ‘안녕! 내 짝꿍’을 정식 출간한 작가이기도 하다. “그동안 엄청난 일이 있었고 정말 많이 성장했어요. 지난 2년 6개월간의 제 삶은 ‘기적’이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로요. 저는 제 선택을 믿었고 제 선택은 옳았어요.”

오유진 양은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종이를 자르고 풀을 붙여 책을 만들고 글을 쓰는 걸 좋아하던 아이였다. 유진 양이 ‘학교 밖’을 처음 생각한 것은 중학교 1학년 때 부터였다. 대구에서 학구열이 높고 사교육이 치열한 지역의 사립중학교에 진학한 후 매일 반복되는 일상과 숨 막히는 시험과 수행평가, 치열한 경쟁이 힘겨웠다.

“제가 바라는 건 단 하나 ‘행복’이었지만 학교는 제게 그런 기회를 주지 않았어요. 그러는 사이, 하고 싶은 것과 되고 싶은 것도 많았던 ‘오유진’이란 사람이 점점 사라져 갔죠. 저는 제 자신에게 화가 났고 구박했고 결국 지쳐버렸어요.”

2학기 때 맞은 자유학기제는 유진이에게 조금은 숨 쉴 구멍이 되었다. 책을 많이 읽고 생각을 많이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친구들은 ‘불필요한 기간’이라고 했다. 자기를 남들과 비교 평가할 기회가 없다고 불안해했고 그 기간 학원을 더 많이 다녔다.

그때부터 유진이는 일 년 반에 거쳐 차근차근 자퇴를 준비하고 신중하게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나 그 순간 ‘부모 속을 썩이는 나쁜 아이, 의지력이 부족하고 사회성이 없는 아이’가 되어버렸다.

오유진 양은 학교 밖 청소년을 위한 꿈드림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대구청소년창의센터에서 유튜브 동영상 편집, 사진, 바리스타 등 다양한 분야를 공부했다. [사진=본인 제공]
오유진 양은 학교 밖 청소년을 위한 꿈드림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대구청소년창의센터에서 유튜브 동영상 편집, 사진, 바리스타 등 다양한 분야를 공부했다. [사진=본인 제공]

“분명 학교 진로교육에서는 ‘세상에는 다양한 길이 있다. 자신만의 길을 가면 된다.’고 가르쳐주셨는데, 선생님들이 하나같이 ‘자퇴하면 인생 망한다.’, ‘네 선택은 도피일 뿐이다.’, ‘친구 사이에 문제가 있어서 그러는 거냐?’며 도무지 이해하려 하지 않으셨어요.”

교육과 실제가 다르다는 모순에 유진이는 그나마 학교에 대한 정이 떨어졌다고 한다. 초반기 막상 자퇴를 하고난 후 어떤 것부터 도전해야할지 막막했다. “자퇴상담을 할 때 선생님께 학교 밖 청소년을 위한 지원이나 제도가 있는지 계속 질문했는데 없다고 하셨거든요. 그런데 열심히 찾아보니 2015년부터 ‘꿈드림’이라는 지원제도가 있었어요.”

대구청소년창의센터에서 유진이는 유튜브 편집, 영화만들기, 사진, 바리스타, 베이킹 등 다양한 분야를 배울 수 있었다. 그때 직접 쓴 동화를 영상으로 만들었을 때, 선생님이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대안교육 잡지 ‘민들레’에 글을 게재해보라고 권유했다. “한 번의 기회였지만 공식적으로 제 글이 어딘가에 게재된다는 건 엄청난 자극이 되었고 자존감이 올라가는 계기였어요. 너무나 고마웠어요.”

유진이는 학교 밖 청소년들의 이야기로 노래와 뮤직비디오를 만들어 공익재단에서 하는 공모사업에도 참여했고, ‘모두모두 대화’라는 정책 콘테스트에도 참가했다. 인권활동도 했고, 창의센터에서 활동한 아이들의 수기를 모은 ‘어디로든 무엇이든’에 기고해 국제도서전이 열린 서울 코엑스(COEX)에서 강연을 하기도 했다.

오유진 양은 창의센터에서 활동한 아이들의 수기집 '어디로든 무엇이든'에 기고하여 서울 코엑스(COEX) 국제도서전에서 강연을 했다. [사진=본인 제공]
오유진 양은 창의센터에서 활동한 아이들의 수기집 '어디로든 무엇이든'에 기고하여 서울 코엑스(COEX) 국제도서전에서 강연을 했다. [사진=본인 제공]

그러다 지난해 여름, 센터를 통해 필리핀 청소년 해외봉사를 갔다. 그때 함께 간 친구들 중 벤자민학교 친구를 만났다. “적극적으로 춤을 추고 현지 아이들에게 가르쳐주었고 태권도시범도 보였는데 당당하고 티 하나 없이 맑은 아이라고 느꼈어요.”

오유진 양은 지난해 청소년 인권에 관해 더욱 공부하고 활동하고 싶었다.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하던 차에 벤자민학교 입학상담을 받게 되었어요. 제게는 ‘모든 청소년의 우주를 품을 수 있는 배움터 설립’이라는 꿈이 있었어요. 이와 관련된 것을 어떻게 배울 수 있을까 생각했을 때, 마침 해외봉사를 함께 갔던 친구가 떠올랐어요. 대안교육에 몸담은 어른들을 만나고 싶었죠.

그동안 창의센터에서 많은 걸 배웠는데 이제 제가 속할 공동체가 필요했고 폭넓게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 열망도 있었거든요. 벤자민학교에서의 1년이 훗날 제 꿈을 이룰 좋은 밑거름이자 자본이 될 것이라 확신했죠.”

벤자민인성영재학교 7기 대구학습관 친구들과 함께 맨발 걷기를 한 모습. [사진=본인 제공]
벤자민인성영재학교 7기 대구학습관 친구들과 함께 맨발 걷기를 한 모습. [사진=본인 제공]

지난 3월 벤자민학교 7기로 입학해 17개 지역 중 대구학습관에서 활동했다. 유진이는 “변화하고 싶은 제 모습 중 하나가 저를 사랑하고 당당해지는 것이었어요. 요즘 상담선생님과 멘토님의 도움을 받아 조금씩 조금씩 저를 보살피는 연습을 하고 있어요.”라고 이야기했다.

벤자민학교 대구학습관에서는 매년 4월 청소년 상담가를 초청해 ‘집단상담’을 했다. 대구학습관 이정혜 부장선생님은 “아이들이 학교 밖을 선택하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그런데도 학교 밖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또 선택한 이후에도 아이들이 주위의 편견으로 인해 상처받는 일이 많아요.”라며 “벤자민학교의 핵심 커리큘럼인 뇌교육 과정을 통해 자기 바라보기를 하고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찾는 과정에서 도움이 되어 집단상담을 하기 시작했죠. 초기에 아이들의 멘토가 되어주던 상담가 선생님을 매년 초청하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2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