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한강에 서식하는 바이러스에서 항생제를 무력화하는 내성 유전자를 처음으로 발견했다.

한국연구재단은 조장천·문기라 박사(인하대), 이상희 교수(명지대), 차창준 교수(중앙대) 공동연구팀이 세균을 숙주로 기생하는 ‘박테리오파지(파지)’ 바이러스에서 항생제를 무력화하는 새로운 항생제 내성 유전자를 찾아냈다고 6월 9일 발표했다.

박테리오파지(파지)는 세균을 감염하는 바이러스로, 지구상에 가장 많은 수로 존재하는 생물학적 실체이다. 특히 강, 바다와 같은 물환경에 존재하는 바이러스의 90% 이상은 파지이다. 파지는 세균에 감염하여 숙주 세균의 유전자를 우연히 습득한 후 다른 세균에게 전달한다.

연구팀은 한강의 6개 지점에서 각 10리터의 표층수를 채취하여 세균을 제거한 후 바이러스만 농축하였다. 핵산 추출을 통해 130만개의 염기서열 조각을 얻었고 이 가운데 25개의 항생제 내성 유전자를 찾아냈다.

신규 항생제 내성 유전자를 가진 한강 바이러스 유전체 탐색 모식도. 한강의 6개 지점에서 물 10리터를 채수하여 바이러스를 농축하고 DNA를 추출하였다.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법을 사용하여 바이러스 메타유전체(바이롬)를 해독하고 약 3천만개의 DNA 조각을 확보한 다음, 최종 130만개의 바이러스 유전체 조각을 얻었다. 이 중 베타락탐 고리를 끊는 베타락탐 분해효소 유전자로 1차 판정된 유전자를 대장균에서 발현시켜 항생제 내성 활성을 확인한바, 페니실린, 세팔로스포린, 카바페넴 등과 같은 베타락탐 계열의 항생제에 내성을 보였다. 계통분석 결과 새로운 유전자임이 입증되어 한강바이롬 베타락탐 분해효소를 뜻하는 HRV로 명명하였다.  [ 그림=인하대학교 생명과학과 조장천 교수 제공]
신규 항생제 내성 유전자를 가진 한강 바이러스 유전체 탐색 모식도. 한강의 6개 지점에서 물 10리터를 채수하여 바이러스를 농축하고 DNA를 추출하였다.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법을 사용하여 바이러스 메타유전체(바이롬)를 해독하고 약 3천만개의 DNA 조각을 확보한 다음, 최종 130만개의 바이러스 유전체 조각을 얻었다. 이 중 베타락탐 고리를 끊는 베타락탐 분해효소 유전자로 1차 판정된 유전자를 대장균에서 발현시켜 항생제 내성 활성을 확인한바, 페니실린, 세팔로스포린, 카바페넴 등과 같은 베타락탐 계열의 항생제에 내성을 보였다. 계통분석 결과 새로운 유전자임이 입증되어 한강바이롬 베타락탐 분해효소를 뜻하는 HRV로 명명하였다. [ 그림=인하대학교 생명과학과 조장천 교수 제공]

 베타락탐 분해 핵심서열을 지닌 4개의 파지 유래 유전자가 실제 유효한 분해효소를 만드는지 알아보기 위해 대장균에서 해당 유전자를 발현하였다.

그 결과 해당 대장균은 여러 베타락탐계 항생제에 내성을 보여 파지에 존재하는 광범위 베타락탐 분해효소임을 확인하였다.

페니실린, 세팔로스포린 등 널리 쓰이는 베타락탐계 항생제에 살아남는 세균은 항생제 내성유전자의 하나인 베타락탐 분해효소 유전자가 있어 항생제의 베타락탐 고리를 분해, 항생제를 무력화한다.

세균은 접합 또는 파지의 감염과 같은 수평이동을 통해 다른 세균으로부터 항생제 내성 유전자를 얻는 것으로 알려졌다. 환경에 존재하는 일부 바이러스에서 이러한 항생제 내성 유전자가 보고된 적은 있지만 실제 베타락탐 분해활성을 가진 기능성 유전자는 아니었다.

연구팀은 파지를 분리, 배양하기 어려워 환경 내에 있는 파지의 유전자를 직접 분석할 수 있는 바이러스 메타유전체(바이롬, Virome) 분석방법을 사용하였다. 바이러스 유전체의 서열을 대용량으로 확보하고 항생제 내성 유전자의 활성 확인을 통해 환경 바이러스 중에서는 최초로 활성이 있는 항생제 내성 유전자를 발견한 것이다.

연구팀은 한강에 존재하는 파지에서 항생제 내성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를 동정(화학적 분석과 측정 따위로 해당 물질이 다른 물질과 동일한지 여부를 확인하거나 또는 그 물질의 소속과 명칭을 정함), ‘한강 바이롬 베타락탐 분해효소(HRV)’로 명명했다.

이 유전자는 기존 슈퍼박테리아에서 발견되는 베타락탐 분해효소 유전자와 분해활성을 나타내는 핵심서열은 동일하지만 나머지 부분의 연관관계가 매우 낮은 새로운 분해효소여서 한강바이러스효소를 뜻하는 새로운 이름을 붙였다.

이번 연구 결과 환경에 존재하지만 배양되지 않은 바이러스에서 항생제 내성 유전자가 발견되어 그 기능이 입증된 것은 처음이며, 특히 물환경의 바이러스에서도 기능성 광범위 항생제 내성 유전자가 존재하는 것이 실험적으로 입증되었다. 이번 연구를 통해 원 헬스 기반의 항생제 내성 유전자 모니터링을 위하여 병원성 세균뿐만 아니라 이들에 감염하는 바이러스에 대한 모니터링도 필요하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향후 이 항생제 내성 유전자가 실제 병원성 세균에 전달될 수 있는지 숙주세균에 대한 추가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연구팀은 파지 유래 항생제 내성 유전자가 존재하고 전파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항생제 내성 유전자 이동을 추적하기 위해 파지 유전체를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조장천 교수는 “이번 연구를 통해 파지의 유전체 내에 신규 항생제 내성 유전자가 존재하며 이들이 발현하면 광범위 항생제에 내성을 보인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따라서 항생제 내성 유전자의 이동경로 모니터링을 위하여 세균 유전체뿐만 아니라 파지 유전체도 모니터링 대상으로 선정하여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라며 “아울러 폐수처리 공정에서 바이러스 유래 항생제 내성 유전자의 처리에 대한 기술적, 정책적 대안도 모색해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추진하는 선도연구센터지원사업과 환경부 환경과학기술개발 사업의 지원을 받아 진행했다. 논문은 지난 6월 1일 국제학술지 ‘마이크로바이옴’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