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 전라남도 담양 식영정을 찾았다. 많이 알려진 소쇄원 인근에 있는 정자로 환벽당, 송강정과 함께 정송강유적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식영정(전남 담양)을 오르는 돌계단. [사진=강나리 기자]
식영정(전남 담양)을 오르는 돌계단. [사진=강나리 기자]

식영정을 오르는 계단부터 남다르고 구비 돌아 계단을 오를 때마다 조금씩 조금씩 보이는 멋이 있다. 한옥과 절에서는 밖에서 안을 바라보는 것만이 아니라 안에서 밖을 내다봤을 때 비로소 왜 이런 곳에 이렇게 지었는지 알 수 있다고 들었다. 식영정에서 또다시 한옥의 진정한 멋은 유홍준 교수가 이야기한 ‘차경借景)’임을 실감했다.

구비를 돌아 계단을 하나씩 오를 때마다 조금씩 보이는 식영정. [사진=강나리 기자]
구비를 돌아 계단을 하나씩 오를 때마다 조금씩 보이는 식영정. [사진=강나리 기자]

정자가 높은 곳에 위치해 댓돌이 있는 마루에 앉아보니 키 큰 소나무가 있어도 시선을 가리지 않았다. 새들이 ‘소나무에서 식영정 지붕 위 하늘로 날아오르는 모습이 멋지구나’라고 여겼다. 더 멀리 보이는 것은 허허벌판이어서 그 정도가 이 식영정이 가진 매력의 전부인줄 알았다.

정면에서 본 식영정. [사진=강나리 기자]
정면에서 본 식영정. [사진=강나리 기자]

그러다 문득 정면이 아닌 옆을 보니 특이하게도 왼쪽을 벽처럼 막아 족자와 같은 세로로 긴 창을 내었다. 정자는 대부분 시원하게 뚫려있는데 이것은 무엇인가 궁금증이 일어 마루에 올라섰다.

그리고 창을 한 폭의 족자로 해서 펼쳐진 광경에 놀랐다. 광주호가 펼쳐졌다. 나무와 S자로 휘어진 물줄기, 그 끝에 넓은 호수가 한 눈에 들어왔다. 그야말로 ‘서프라이즈!’이다.

마루 위에 앉아 왼편을 벽처럼 막아 족자와 같은 세로 창을 내었다. [사진=강나리 기자]
마루 위에 앉아 왼편을 벽처럼 막아 족자와 같은 세로 창을 내었다. [사진=강나리 기자]

호수가 아름다운데 왜 일부러 벽으로 막아 족자 창으로 볼 수 있게 했을까?

그 순간 아름다움을 욕심껏 다 펼쳐내지 않는 마음, 깊은 사색의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펼쳐놓지 않고 창을 한 폭 산수화의 족자로 활용하면서도 그 족자 앞에서 물밀 듯 밀려오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게 한 묘수. 숨겨진 보물을 발견하는 기쁨. 자연이 이토록 감동적이라는 것을 발견하는 기쁨이다.

족자 창으로 내다보이는 광주호의 광경. [사진=강나리 기자]
족자 창으로 내다보이는 광주호의 광경. [사진=강나리 기자]

식영정을 왼편에 두고 둘러 오르니 송강 정철의 《성산별곡》 비가 있다. 한자를 주로 쓰던 사대부가 우리글 훈민정음을 섞어 표현한 가사의 맛이 남다르다. 다시 식영정 오른쪽을 둘러 내려오면서 보이는 광주호의 모습도 또 달라보인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각별한 뜻을 담았음을 알 수 있었다. 직접 보아야 알 수 있는 감동이 있다.

식영정 뒤편에 송강 정철의 가사 '성산별곡'의 일부를 기록한 시비가 있다. [사진=강나리 기자]
식영정 뒤편에 송강 정철의 가사 '성산별곡'의 일부를 기록한 시비가 있다. [사진=강나리 기자]
정철의 시비에서 내려오면서 본 식영정. [사진=강나리 기자]
정철의 시비에서 내려오면서 본 식영정. [사진=강나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