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신라고분에서 43년 만에 금동 신발 출토
경주 신라고분에서 43년 만에 금동 신발 출토
  • 강나리 기자
  • heonjukk@naver.com
  • 승인 2020.05.28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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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띠 장식용 은판, 금동 말안장 등 각종 말갖춤 장식 함께 나와

경주 대릉원 일원(사적 제512호) 내 위치했으나, 민가조성 등으로 훼손되었던 고분에서 금동 신발이 나왔다. 1977년 경주 인왕동 고분군 조사이후 43년 만의 일이다.

문화재청(청장 정재숙)과 경주시는 ‘경주 황남동 120호분’ 조사과정에서 금동 신발과 허리띠 장식용 은판, 금동 말안장 등 각종 말갖춤 장식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고 밝혔다. 지난 27일 오전 11시 발굴현장 언론공개를 하고 오후 2시 일반인 현장 공개를 했다.

(위) 경주 황남동 120-2호분에서 발굴된 금동 신발. (아래) 경주 황남동 120호분 일대. [사진=문화재청]
(위) 경주 황남동 120-2호분에서 발굴된 금동 신발. (아래) 경주 황남동 120호분 일대. [사진=문화재청]

황남동 120호분은 일제강점기에 번호가 부여되고도 민가 조성 등으로 훼손되어 고분의 존재자체가 확인할 수 없었다. 문화재청과 경주시가 2018년 5월부터 120호 고분 존재 유무와 범위를 확인하기 위해 발굴했으며, 2019년 조사과정에서 120호분 북쪽에 120-1호분, 남쪽에서 120-2호분이 추가 확인되었다.

120호분은 봉분은 양호하게 남아 있었으며, 화강암이 풍화하여 생긴 모래인 마사토를 사용해 북서-남동 26.1m, 북동-남서 23.6m규모로 축조되어 있었다. 특히 경주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묘) 가운데 마사토 봉분은 최초로 확인되었다.

이번에 유물이 발굴된 120-1호분과 120-2호분은 120호분 일부를 파내고 후대에 조성된 무덤이다. 120-1호분에서는 쇠솥과 유리구슬, 토기류가 출토되었고, 120-2호분 매장주체부에서 금동신발 등 주요 유물들이 발굴되었다. 대체로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전반 사이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역대 발굴된 신라 고분의 금동신발 유물. (시계방향으로) 금관총 금동신발, 금관총 식리, 식리총 식리, 황남대총 남분 출토 금동신발. [사진=문화재청]
역대 발굴된 신라 고분의 금동신발 유물. (시계방향으로) 금관총 금동신발, 금관총 식리, 식리총 식리, 황남대총 남분 출토 금동신발. [사진=문화재청]

5월 15일 120-2호분 피장자 발치에서 발굴된 금동 신발 한쌍은 표면에 'T'자 모양의 무늬가 뚫려 있고 둥근 모양의 금동 달개(瓔珞, 영락)가 달려있다. 경주 황남대총 남분 출토 금동신발이 이와 비슷한 형태이다. 지금까지 신라무덤 속 신발은 실생활용이 아니라 죽은 이의 장사를 지내는 의례를 위해 제작한 것으로 확인된다.

이외에도 피장자 다리부분에서 허리띠 장식에 사용된 은판이 나오고, 머리 부분에서는 신발에 달린 것처럼 여러 점의 금동 달개가 겉으로 드러나 있었다. 향후 발굴조사 및 연구시 머리에 쓰는 관冠이나 관 꾸미개일 가능성을 염두하고 진행할 계획이다.

경주 황남동 120-2호분에서 출토된 금동 말안장(위)과 말갖춤 장식 일괄. [사진=문화재청]
경주 황남동 120-2호분에서 출토된 금동 말안장(위)과 말갖춤 장식 일괄. [사진=문화재청]

부장칸에는 금동 말안장과 금동 말띠꾸미개를 비롯해 각종 말갖춤 장식과 청동다리미, 쇠솥, 다양한 토기류가 출토되었다.

발굴조사단은 120-1,2호분 조사를 마친 후 아직 내부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120호분의 매장주체부도 본격 발굴할 예정이다. 조사단은 120호분이 120-1, 2호분에 비해 규모가 훨씬 커 위계가 더 높은 유물이 출토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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