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세기 유럽을 휩쓴 흑사병으로 많은 사람이 병에 걸리고 죽음에 이르자 사람들은 교회로 가서 기도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유럽 전역을 휩쓴 이 병으로 인해 당시 유럽 인구의 약 3분의 1이 사망했습니다. 기도가 흑사병을 물리칠 수 없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게 됨에 따라 신권은 하락하게 되었습니다.

이화영 교사(인천계산공고)
이화영 교사(인천계산공고)

흑사병에 성직자들이 속수무책으로 쓰러지는 것을 본 중세인은 더는 신앙에 의존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삶을 지켜줄 의술과 과학, 이성에 매달리기 시작하여 인문주의가 발전했습니다. 이로써 르네상스의 토양이 형성되어 신본주의에서 인본주의로의 문명사적 전환이 이루어지는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인구의 급격한 감소로 농촌이 황폐해졌고, 세금을 거두지 못한 영주도 덩달아 타격을 입었습니다. 그러자 영주들은 수입을 보존하기 위해 살아남은 이들에게 세금을 어마어마하게 부과했고, 결국 농민반란이 일어나서 중세 봉건 제도를 유지하던 농노제도가 허물어졌습니다.

그에 따라 농민과 자유민이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들면서 상인과 수공업자가 늘어나 도시 귀족 계급이 새롭게 형성되었습니다. 영주의 세력이 약화되는 반면 왕권은 강화되어 유럽에 왕정 시대를 여는 발판이 놓였습니다.

또한 인구감소는 농노를 고용하는 임금 상승으로 이어져 농노의 지위가 향상되었고, 농노의 수입이 늘어나자 물품 구매와 같은 소비가 촉진되어 자본주의가 태동하게 됩니다. 그리고 임금 상승은 제조비용 감소를 위한 대체재를 찾는 원동력으로 작용하여 노동력을 대체할 기계가 등장하여 1차 산업혁명이 촉발됩니다. 이처럼 중세의 흑사병은 문명과 산업 전반에 큰 변화를 가져와서 오늘날의 인본주의, 자본주의, 물질문명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흑사병이 중세 유럽문명의 전환점이 된 것처럼 현재 코로나19도 새로운 문명으로의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므로 ‘포스트 코로나(post corona)’, ‘뉴 노멀'(시대변화에 따라 새롭게 부상하는 표준) 이런 말들이 유행합니다. 코로나 이후에 인류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인본주의는 생태중심주의로, 자본주의는 홍익자본주의로, 물질문명은 정신문명으로 변화해야 인류에게 미래가 있습니다.

인본주의는 ‘인간중심주의’로 이는 인간이 아닌 존재에 대한 고려와 배려가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인본주의의 폐해로 자연파괴, 기후변화가 발생했고 이번 코로나19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생태중심주의는 인간만이 아니라 동물과 식물 그리고 좀 더 멀리 생명이 아닌 것들 다시 말해 지구 전체를 우리가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본주의는 두 발 자전거 타기와 같아서 계속 페달을 밟아 주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시스템입니다. 자전거 폐달을 계속 밟듯이 자본주의도 성장을 계속해야 유지가 되는 시스템입니다. 달리다 서면 넘어지는 자전거처럼, 자본주의도 달리다 멈추는 순간 넘어집니다. 그러니 계속 달려야 하는 것입니다. 자본주의는 성장이 멈추면 경제공황이 발생하여 붕괴가 일어납니다. 1929년 세계 대공황도 공급과잉으로 수요가 못 따라가고 성장이 멈추자 일어났습니다. 이때 경제학자 케인즈가 ‘소비가 미덕’이라며 수요 증가를 유발하는 정책으로 국가재정을 풀고, 금리를 인하해서 부채를 발생시키고 광고를 통한 소비 욕구를 증가시키는 정책을 펴서 위기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욕망을 부추겨서 계속 소비를 일으켜야 유지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무한히 생산하는 ‘과잉생산 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생산은 자연의 변형 또는 파괴로부터 나옵니다. 결국 자본주의는 구조적으로 무한히 자연을 파괴하는 체제인 것입니다. 자본주의는 인간과 사물의 관계를 전도하여 인간을 소외하고, 불평등과 실업을 낳아 사회를 붕괴시키며, 무한생산과 무한경쟁으로 자연을 파괴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는 소비를 위축하고 성장을 멈추게 하여 이 같은 사태가 지속되면 결국 자본주의 시스템의 붕괴 위기를 초래합니다. 앞으로 코로나19와 같은 사태가 일회성이 아니라 상시로 발생할 가능성이 높기에 이제는 자본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모델이 요구됩니다.

인간과 사물,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화해하고 공존하는 근본적으로 새로운 사회모델을 홍익자본주의라고 부르겠습니다. 홍익자본주의란 자본이 자기 이익만을 챙기기 위한 자본이 아니라 자기의 이익과 더불어 다른 사람들과 자연 모두를 이롭게 하는 자본이어야 합니다.

물질문명은 형이하학(形而下學)에 바탕을 두었고 정신문명은 형이상학(形而上學)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형이하학(形而下學)은 형체가 있는 물질적인 것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으로 과학 같은 학문이 이에 해당하고 형이상학(形而上學)은,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형체의 이상에 있는 정신적인 것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고 철학이 이에 해당합니다. 과학의 발달로 물질문명은 4차 산업혁명으로 인공지능시대로 접어든 지금, 물질문명 보다 정신문명이 우위에 서지 못하면 인간은 물질의 노예, 인공지능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물질을 지배하는 정신이 필요합니다. 물질은 변하는 세계에 있습니다. 철학은 변하지 않는 본질을 밝히는 학문입니다. 인간의 변하지 않는 본성이 밝아지는 것, 영성이 밝아지는 것, 양심이 밝아지는 것, 이런 것들이 정신문명입니다. 양심이 밝은 사람이 홍익인간이고 양심이 밝은 사회가 이화세계입니다. 우리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 이화세계는 정신문명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홍익정신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 정신문명을 이끌어가는 정신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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