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리전투를 대승으로 이끌고 광복 후 초대 국무총리를 지낸 이범석 장군을 기리는 추모제가 열린다.

국가보훈처(처장 박삼득)는 11일 오전 10시 국립서울현충원 이범석 장군 묘전에서 ‘철기 이범석 장군 제48주기 추모제’를 개최한다. (사)철기이범석장군기념사업회(회장 박남수) 주관으로 열리는 이날 추모식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외부인사 초청없이 유족과 기념사업회 임직원 20여 명이 간소하게 진행할 예정이다.

이날 개식선언은 홍우진 기념사업회 이사가 하며, 박남수 기념사업회 회장의 추도식사에 이어 헌화와 분향, 추모묵념 순으로 진행된다.

한국광복군 창설 기념사진. 이범석 장군은 한국광복군 창설에 참여해 참모장으로 임명되었다. [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광복군 창설 기념사진. 이범석 장군은 한국광복군 창설에 참여해 참모장으로 임명되었다. [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철기 이범석 장군(1900~1972)은 1900년 10월 서울 용동에서 출생하여, 1915년 중국으로 망명해 민족지도자 신규식 선생의 주선으로 운남강무당에 입학해 기병과를 수석 졸업했다.

3.1운동 소식이 전해지자 독립운동에 뛰어들기 위해 장교직을 사직하고 신흥무관학교 고등군사반 교관으로 취임해 독립군 장교 양성에 주력했다. 1920년 4월 왕청현에 있는 북로군정서로 가 사관연성소를 창설해 600여 명의 독립군 장교를 교육해 전투 역량 강화에 기여했다. 이것이 독립운동사 중 가장 찬란한 전과를 올린 청산리 대첩의 기반이 되었다.

1920년 10월 21일 보병 1개 대대를 인솔해 청산리 백운평에서 일본 토벌군 주력부대를 강타해 수천 명의 사상자를 내개 함으로써 대승을 거두고 이후, 북로군정서군을 지휘해 일본군과 10여 차례 격전을 치러 승리를 거두었다.

1940년 9월 17일 한국광복군 창설에 참여해 참모장으로 임명되었고, 광복군 총사령부 핵심부대인 제2지대장으로서 미국 전략정보국((OSS)과 합작해 국내 진공작전 수행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국내 진격 전 광복을 맞이하고 1946년 6월 3일 500여 명의 광복군 동지들과 함께 인천항을 통해 조국에 돌아왔다.

1946년 조선민족청년단을 결성, 민족국가 건설에 힘쓰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초대 국무총리 겸 국방부 장관으로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고 국군 창설과 육성에 힘썼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63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수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