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에 사라진 대한제국 황궁 정문인 덕수궁 대한문의 월대月臺가 제모습을 되찾는다. 월대는 경복궁 광화문, 창덕궁 돈화문, 덕수궁 대한문 등 궁궐의 정문과 덕수궁 중화전, 경복궁 근정전 등 주요 정전에 설치되어 건물의 위엄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현재 덕수궁 대한문 전경. [사진=문화재청]
현재 덕수궁 대한문 전경. [사진=문화재청]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덕수궁관리소는 이달부터 덕수궁 월대를 복원 재현하는 설계에 착수해 7월까지 마치고 관련 전문가의 자문을 거쳐 내년까지 대한문 월대 재현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다만 대한문의 원 위치를 찾아 이전하는 것이 어렵고 인근 태평로와 시민 보행로 등 현실적 여건을 고려해 월대를 원래자리에 원형대로 복원하는 것은 어려운 상황이다. 대한문이 1970년 태평로 확장으로 인해 원래 위치에서 33m 가량 물러서 있다. 이에 원위치와 형태, 크기관련 철저한 원형 고증을 통해 현실적인 재현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덕수궁 대한문의 원래 이름은 ‘대안문大安門’이며 ‘황성신문’ ‘독립신문’의 기록에 의하면 1898년경부터 지은 것으로 보인다. 황성신문 1899년 2월 15일자에는 “대안문 현판 서사관을 의정부 참정 민병석으로 임명한다”고 되어있고, 독립신문 1899년 3월 3일자에는 “정동 대궐 새로 지은 정문에 대안문이라 쓴 현판을 제작일에 달았는데 또 그 문 앞 축대역사도 시작하였다더라”라는 기사가 실렸다.

(위) 덕수궁 대한문 월대(1902~1903년 경 촬영. (아래) 덕수궁 대한문 월대 사진 엽서 19010년대 추정. [사진=문화재청]
(위) 덕수궁 대한문 월대(1902~1903년 경 촬영. (아래) 덕수궁 대한문 월대 사진 엽서 19010년대 추정. [사진=문화재청]

또한, 1899년 공사가 시작되어 1900년 월대를 새로 고쳤다는 기록이 《각사등록》 등에 남아 1900년 전에 월대가 완성된 것으로 파악된다. 이후 1904년 덕수궁 대화재 때 대안문이 불타지 않았으나 보수하면서 1906년 ‘대한문大漢門’으로 고쳤다.

덕수궁 대한문의 월대는 일제강점기 당시 훼손 철거되어 현재는 월대 끝부분에 있던 석수石獸(돌로 새겨 만든 짐승형상)만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