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열  | 제주시인, 제주 사대부중 교사

“삼춘, 어디 감수과?(삼촌, 어디 가십니까?)” 이 말은 제주에서 흔히 듣는 말이다. 아직도 시골에서는 길을 가다가 동네 어른을 만나면 이렇게 인사한다. 이웃 어른은 다른 집 어른이 아니라 우리 집의 삼촌과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웃은 모두 삼촌, 사촌으로 친척인 셈이다. 제주에는 이런 ‘괜당’의 문화가 깊이 남아 있다. 괜당은 ‘친척’을 일컫는 제주도말로서 제주도 사람들끼리는 ‘친구’라는 단어만큼 친근감을 불러일으키는 말이다. 제주에서는 모두가 괜당이다. 이런 공동체 의식의 뿌리는 아직도 곳곳에 살아 있다.

기후와 지리적 환경, 역사의 많은 굴곡 속에서도 제주에는 천지인 삼원사상(三元思想)이 상생과 공존을 추구하는 평화 정신 속에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다. 삼성혈三姓穴을 비롯해 삼신할망, 삼다(돌, 바람, 여자가 많음)와 삼무정신(도둑, 거지, 대문이 없음), 정낭 문화 등이 대표적인 예라 하겠다.

삼다삼무(三多三無)의 정신적 바탕은 천지인(天地人) 정신이다. 즉, ‘바람, 돌, 여자’가 많다는 삼다(三多)는 ‘보이지 않는 세계 天, 보이는 세계 地, 그리고 사람 人’으로서 천지인 사상을 담은 것이다. 그리고 ‘도둑, 대문, 거지’가 없다는 삼무(三無) 정신과 정낭문화는 정직과 성실의 문화이며, 사회적 신뢰의 상징으로 법이 필요 없이 율려(律呂)가 통하는 이화세계(理化世界)를 의미한다. 

우리나라 고유 선도문화의 맥으로 이어져 온 삼다삼무의 홍익정신이 실천문화로 생활 속에 남아 있는 것이다. 더불어, 제주의 ‘정낭’문화는 평화의 상징이기도 하다. 정낭은 대문 대신 집의 입구에 돌기둥을 세우고 나무 막대기 세 개를 걸쳐 놓아 집에 사람이 있고 없음을 표시한 것으로 믿음의 약속이다. 

서로 믿고 ‘나’가 아니라 ‘우리’를 소중하게 여겼던 이런 제주의 공동체 정신은 우리가 세계에 널리 알려야 할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평화 철학이며 선도문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에서 공부해 이제는 사업가로 활동 중인 내 오랜 친구는 그곳 지인들과 사업차 해마다 제주를 찾는다. 일본으로 간 지 10년이 넘던 어느 해였다. “세계의 많은 곳을 다녀보았지만 제주만큼 아름다운 곳이 없다. 섬 안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이제 섬을 떠나 섬을 보니 더 잘 보이더라.”는 것이다. “자연의 아름다움만큼 서로 위하고 돕는 제주 사람들의 마음 또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늘 제주인임이 자랑스럽다. 복 받은 곳, 천혜의 땅 아름다운 이곳 제주는 이제 자연의 평화에서, 인간의 평화를 넘어 정신문화에서 평화를 보여줄 때이다. 그리고 제주의 평화 철학이 이제는 제주 안에 국한된 철학이 아니라 세계 속의 철학으로 거듭나야 한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그리고 ‘평화의 섬’을 알기 위해 찾아올 수많은 세계인에게 진정한 평화의 의미와 철학을 느끼고 알게 하여 그들의 가슴을 깨워야 한다.

제주의 천손들이 모여 한민족 제주평화공원 건립을 위한 힘을 모으고 있다. 제주도민들의 역량을 모두 합쳐 제주의 공동체 문화를 복원하고 재창조하여 세계인의 정신으로 확대시킬 것이다. 이는 곧 홍익인간 이화세계의 사상과 철학이 제주 상생의 문화로 평화의 꽃을 피울 수 있는 일이다.

지도를 거꾸로 펼쳐 놓고 보자! 
평화의 섬 제주는 세계로 향하는 구심점이며 출발점

우리나라 지도를 거꾸로 놓고 보자. 그래야 제주가 바로 보인다. 제주는 동북아의 중심이며 세계로 향하는 출발점이다. 이곳을 통해 한민족 고유의 선도문화를 세계적인 평화 철학으로 확대해야 한다.  이제 우리의 역량을 한 데 모을 때가 되었다. 흰 눈에 덮여 늑골을 드러낸 한라산이 더욱 가까이 다가온다. 

본성이 밝아질수록 순수하고 아름답다는 말을 저 산이 조용히 보여주고 있다. 오늘도 그 자리에 우뚝 서서 제주를 지키는 돌하르방의 모습이 한라산 자락과 함께 겹친다. 제주의 혼이 살아있음을 느낀다. 

“게난 삼춘 어디 감수과?”, “제주의 평화 정신 알리래 감수다!”( 이웃 삼촌님, 어디 가십니까?, 제주의 평화정신 알리러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