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병탄의 원흉 이토 사살한 안중근 의사 순국 110주년 추모식
한일병탄의 원흉 이토 사살한 안중근 의사 순국 110주년 추모식
  • 강나리 기자
  • heonjukk@naver.com
  • 승인 2020.03.27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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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남산과 전남 장흥 안 의사 사당서 추모식, 서울 효창공원 참배

일본 제국주의를 앞장서 이끌던 우리나라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만주 하얼빈 역에서 사살해 전 세계에 우리 민족의 독립의지를 널리 알린 안중근 의사 순국 110주년을 맞아 26일 추모식이 열렸다.

국가보훈처 박삼득 처장은 26일 9시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안중근 의사 묘소(가묘)에서 참배했다.

안중근 의사 순국 110주년을 맞아 박삼득 국가보훈처장은 26일 9시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내 안중근 의사 묘소(가묘)에 참배했다. [사진=국가보훈처]
안중근 의사 순국 110주년을 맞아 박삼득 국가보훈처장은 26일 9시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내 안중근 의사 묘소(가묘)에 참배했다. [사진=국가보훈처]

정부는 안중근 의사 유해발굴을 위해 중국정부에 협조 요청, 남북 공동 유해발굴을 위한 관계부처 협의, '안중근의사유해발굴추진단'과 공동으로 최근까지 전문가 자문과 현지 조사 등을 진행 중이다. 

안중근의사숭모회(회장 김황식)는 26일 오전 10시 서울 중구 남산에 위치한 안중근 의사 동상 앞에서 추모식을 열었다. 당초 순국 110주년을 맞아 정부대표, 국내외 기관장 등 300여 명을 초청해 안중근의사기념관 강당에서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이날 추모식은 코로나 19 확산 방지를 위해 유족과 숭모회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식사와 헌화로 간소하게 진행되었다.

안중근의사숭모회는 추모식 축소를 대신해 순국 110주기의 의미를 담은 동영상을 제작해 4월 초 누리집(www.patriot.or.kr)에 게시할 예정이다. 또한, 제작한 동영상은 국내 및 일본과 중국, 유럽 등에 배포해 안 의사의 숭고한 독립정신과 평화의 뜻을 널리 알릴 계획이다.

아울러 우리나라에서 안중근 의사를 모시는 사당이 있는 전남 장흥 해동사에서도 소규모로 추모식을 개최해 안 의사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의 편지 낭독, 김재중 신인의 추모시 낭독 등으로 진행했다.

안중근 의사 순국 110주년인 올해 여름 윤제균 감독 연출, 정성화 주연의 영화 '영웅'이 개봉될 예정이다. 영화 '영웅' 1차 포스터.
안중근 의사 순국 110주년인 올해 여름 윤제균 감독 연출, 정성화 주연의 영화 '영웅'이 개봉될 예정이다. 영화 '영웅' 1차 포스터.

한편, 안 의사 순국 110주년을 맞아 올해 여름에는 영화 ‘영웅’이 상영할 예정이다. 1천만 관객을 모은 영화 ‘해운대’와 ‘국제시장’의 윤제균 감독이 연출한 이번 영화에서 안 의사 역은 뮤지컬 ‘영웅’으로 널리 알려진 정성화 배우가 맡는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26일 안중근 의사의 업적을 한국어와 영어, 일본어, 중국어 4개의 언어로 다룬 영상들을 모아 유튜브에 채널(https://vo.la/lGLk)을 개설했다. 해당 채널에서는 서경덕 교수가 ‘세계 평화를 꿈꾼 영웅, 안중근’이란 제목으로 3년 전부터 배포한 영상을 볼 수 있다.

안중근 의사는 1879년 9월 2일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나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중국 상해로 건너가 국권회복의 길을 찾다 돌아와 삼흥학교, 돈의학교를 세워 인재를 양성했다. 그러나 고종황제 폐위, 군대 해산 등으로 나라가 식민지 상태에 이르자 다시 해외로 나가 의병을 일으켰고, 1908년 의군장이 되어 의병부대를 이끌고 함경북도로 진입, 경흥·회령 등지에서 대일 항쟁을 했다. 

그후 러시아령 블라디보스토크, 연추 등지를 오가며 동지들과 구국 방도를 모색하고 1909년 봄 김기룡, 조응순, 황병길 등 동지와 함께 손가락을 잘라 '단지동맹'을 결성하였다. 1909년 9월 러시아령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한일병탄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가 하얼빈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동지 우덕순 등과 거사계획을 세웠다. 거사 당일인 10월 26일 9시경 안 의사는 러시아 군인들의 경례를 받으며 들어오는 이토 히로부미에게 총 3발을 모두 명중시켰다. 러시아 헌병이 체포할 당시 하늘을 향해 '코리아 우라(대한 만세)'를 크게 세 번 외쳤다.

안 의사는 1909년 11월 여순에 있는 일본 감옥으로 이송되어 심문과 재판을 받는 가운데 일본의 부당한 침략 행위를 낱낱히 밝히며 시정을 요구하고, 조국 독립과 동양 평화의 정착을 주장했다. 또한 옥중에서도 '동양평화론'을 저술했으며, 그의 기개에 일본인들도 크게 감동하였다. 1910년 2월 14일 사형 선고를 받은 후 3월 26일 순국하였다.  

정부는 안 의사의 공적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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