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고대역사학회(회장 정경희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교수)는 학회지 『동북아고대역사』 제2권을 최근 펴냈다.

동북아고대역사학회 학회장 정경희 교수는 “작년 3월, 동북아 상고·고대사의 문화적 실체인 선도문화를 본격적으로 알리고자 하는 취지하에 동북아고대역사학회가 발족하였다”며 “지난 2019년 2회의 학술대회와 학회지 『동북아고대역사』 창간호 발행에 이어 다시 제2권을 발행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동북아고대역사학회는 학회지 『동북아고대역사』 제2권을 최근 펴냈다. [사진=김경아 기자]
동북아고대역사학회는 학회지 『동북아고대역사』 제2권을 최근 펴냈다. [사진=김경아 기자]

 

이번에 발간한 『동북아고대역사』 제2권에는 △요동~요서 적석단총에 나타난 맥족(예맥족)의 이동 흐름(정경희)△요서와 요동지역 적석총문화의 상관성 검토(오대양)△한국 청동기시대 환상열석에 대한 소고(유태용)△민족종교의 항일운동-보천교의 ‘숨겨진 역사’(김철수)△태백산 일대의 ‘마고삼신계 제천단(당)’연구(박지영)△천부경의 삼재회통 공공원리연구(김용환) 6편의 논문을 게재했다.


정경희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요동~요서 적석단총에 나타난 맥족(예맥족)의 이동 흐름”이라는 논문에서 “배달국~고구려국시기 백두산 서편 천평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요동·한반도지역 선도제천시설은 대체로 ‘환호를 두른 구릉성 제천시설(3층원단·적석단·선돌·나무솟대·제천사·고인돌류)이었다. 청평지역의 적석단총제는 배달국 중기 요서사회로 전파, 대릉하 일대를 중심으로 화려하게 만기하였다”며 “요서지역의 적석단층제는 배달국 후기 일시 쇠퇴기를 지나 단군조선 전기가 되자 ‘환호·석성을 두른 구릉성 제천시설(적석단)’의 형태로 재차 극성하였으나 북방족의 영향력에 높아지는 변화속에서 약화 경향을 보였다”고 밝혔다.

정 교수는 “부여·고구려시기 맥족은 요서사회에 대한 주도권을 상실하고 요동 송화강 일대를 거쳐 맥족의 원향인 백두산 서편 천평지역으로 되돌아가게 되며 여기에서 재차 적석단총제를 꽃피우게 된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배달국~고구려시기 맥족은 ‘요서 진출·정착 및 요동 회귀’라는 순환적 이동 흐름, 곧 ‘백두산 서편 혼강·압록강 천평지역→ 대릉하 청구지역 →서랍목륜하지역 →송화강지역 →→ 백두산 서편 혼강·압록강 천평지역 → 일본 열도’의 이동 흐름을 보였고, ‘환호·석성을 두른 구릉성 제철시설(3층원단·적석단·선돌·나무솟대·제천사·고인돌류)’로 대변되는 선도제천문화를 남겼다.”며 “맥족의 선도제천문화는 동아시아사회는 물론 유라시아사회로 전파, 세계 상고문화의 발전을 견인하였다”고 강조했다.

김철수 중원대학교 교수는 “민족종교의 항일운동-보천교의 ‘숨겨진 역사”라는 논문에서 대일 항쟁기 당시 전개하였으나 알려지지 않고 숨겨졌던 보천교의 항일운동을 전체적으로 살펴보고, 더 나아가 월곡 차경석의 항일운동에 대한 생각과 당시 항일투쟁의 대명사격인 백야 김좌진과 관련된 항일운동을 정리하였다.

김 교수에 따르면 월곡 차경석의 교단형성은 일제 강점기의 시작과 함께 출발했다. 때문에 차경석의 보천교 교단은 내부적으로 일제강점으로 촉발된 민족문제도 좌시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보천교는 규모가 커질수록 일제 식민권력으로부터 끊임없는 탄압과 회유공작을 받고 있었고 당시 언론과 사회도 부정적인 태도를 위하고 있었다. 더욱이 1925년무렵부터는 사회적으로 반민족적 친일단체로 성토를 받았고 심지어 박멸대상이 되고 있었다.

김 교수는 “이러한 이미지는 최근까지도 이어지면서 보천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보천교의 항일활동 규명을 어렵게 했다. 곧 드러나지 않고 철저히 ‘숨겨진 역사’일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3·1우동 이후가 되면 보천교의 확장된 양적·질적 역량을 바탕으로 보천교의 항일운동도 적극적으로 전개되었다.

김 교수는 “木 방주 김홍규의 10만원 은닉사건, 전국적인 태을교도 대검거사건, 상해국민대표회의에 보천교 대표 3인을 파견한 사건과 그 중 일부가 의열단에 입단해 활동 일, 보천교 경정진정원의 불온문서 사건, 그리고 정의부와 연결된 사건 등은 보천교의 대표적인 항일운동으로 꼽을 수 있다. 더욱이 만주지역 독립운동의 대명사격인 김좌진과도 항일활동에서 직·간접적인 교류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보천교의 민족운동은 일반사회에서 진행된 민족운동과 동일한 시선으로 평가받을 필요는 없다. 그보다 더 큰 그림을 그린 민족운동의 전개였던 것이다. 그러한 틀에서 일제강점기 보천교의 민족독립운동(군자금 지원 및 직접 투쟁)도 평가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박지영 강원국학원 교육국장은 “태백산 일대의 ‘마고삼신계 제천단(당)’연구”라는 논문에서 “

2000년대 이후 선도적 역사인식의 등장과 중국 동북 요서지역에서 발굴된 고고학의 발전으로 태백산에 대한 연구도 민속 · 무속적인 연구에서 선도적인 시각으로 연구가 가능하게 되었다. 특히 홍산문화 여신묘에서 발견된 여신상으로 선도제천의 신격문제가 연구되었고, 상고 이래로 선도제천의 신격은 여신, 즉 마고삼신이었음이 밝혀졌다”고 말했다.

박 국장은 “존재의 본질이자 우주의 근원적인 생명에너지인 ‘일기 · 삼기 마고삼신’은 밝문화로 대표되는 선도문화가 추구하는 '밝음'의 실체이므로, 생명에너지인 ‘일기 · 삼기, 밝음과 자신 안의 ’일기 · 삼기, 밝음‘이 하나되고자 하는 천인합일의 선도수행과정이 선도제천이다. 그러므로 한국선도제천의 신격은 언제나 마고삼신이었고, 한국선도제천의 시작인 배달국 백두산 신시의 전통을 이어받은 태백산 제천의 신격 또한 마고삼신이다.”고 말했다.

박 국장은 “태백산 제천의 유래와 제천의례절차를 통해서 태백산 제천의 신격이 마고삼신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 태백산 일대에 남아있는 수많은 마고삼신계 제천단(당)을 여신, 천신, 칠성 유형으로 나누어 조사한 후, 대표적인 사례들을 선정하여 자세히 살펴본 결과 태백산 마고제천과의 연계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박 국장은 “태백산 정상의 제천단을 천왕단, 천제단, 마고탑 등으로 불리는 것으로 보아 그 신격이 마고삼신과 천왕인 환웅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구단탑, 구령탑의 명칭으로 태백산 제천단이 예전에는 9단으로 쌓았으며 9수가 한국선도에서 말하는 삼원오행론을 진선형으로 표현한 것이며 밝음을 회복하고 돌아가야 할 존재의 본질인 일기·삼기이다”고 말했다.

박 국장은 “특히 제천 시 제단 안쪽에 북두칠성 깃발을 중간에, 해와 달 깃발을 좌우에 세우는데, 이것은 한국선도의 전형적인 북두-일월표상이다. 선도제천의 신격인 마고삼신이 시작되는 곳을 북두칠설 근방으로 인식하여 후에 북두칠성은 마고삼신과 같은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북두-일월 표상의 원형은 일기· 삼기-여울 표상으로, 제천의 신격이 ‘일기 · 삼기 마고삼신’임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므로 제천의 일월 표상을 제단 안에 세운다는 것은 태백산 제천이 선도제천이고 마고제천임을 나타내는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주장했다.

한편 동북아고대역사학회는 학회지에 게재할 논문을 7월10일까지 모집한다. 논문 투고와 관련하여 자세한 사항은 동북아고대역사학회 홈페이지 www.dongbuk-a.kr를 참조하면 된다.

전자우편 dongbuk-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