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말 이승휴는 단군을 영군으로 인식”
“고려 말 이승휴는 단군을 영군으로 인식”
  • 정유철 기자
  • npns@naver.com
  • 승인 2020.03.23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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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국학연구원, “선도문화” 제28권 발간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국학연구원(원장 조남호)은 『선도문화(仙道文化)』 제28권을 최근 펴냈다.

『선도문화(仙道文化)』 제28권에는 특별논문으로 △이승휴의 학술사상과 원나라 중국 이해(이경룡)△고려 중, 후기 역사 서술문체의 다변화와 이승휴의 선택(심경호)△1930년대 대종교 계열 학자들의 이승휴와 제왕운기에 대한 연구(조남호)를 게재했다.

일반논문으로 △배달국 초 백두산 천평문화의 개시와 한민족(예맥족·새밝족·맥족)의 형성(정경희)△살풀이의 기원적 의미 재고- 화랑과 화랭이의 연관성을 중심으로(정혜원)△국권회복(1945년) 이후 ‘3.1혁명’에 대한 평가·인식 및 그 의미(신운용)△현대문명의 위기와 후천개별 사상의 포스트모던적 함의(김철수)△일본신도 신악가(新樂歌)의 신격(神格)연구-아지메(阿知女)를 중심으로(이강민)△고전(古典)에 담겨있는 꿈과 해몽에 대한 고찰(조규문)을 게재했다.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국학연구원은 『선도문화(仙道文化)』 제28권을 최근 펴냈다. [사진=김경아 기자]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국학연구원은 『선도문화(仙道文化)』 제28권을 최근 펴냈다. [사진=김경아 기자]

이경룡(하곡학연구원)씨는 ‘이승휴의 학술사상과 원나라 중국 이해’라는 논문에서 고려말기 문인 “이승휴(李承休, 1224~1300)의 『제왕운기』는 고려말기의 국내사정과 국제환경에 대응하기 위하여 편찬한 역사이다”며 “그는 중국의 왕조 변천을 먼저 서술한 뒤에 한국사를 고조선 단군부터 기술하여 한국 왕조사의 정통론을 세웠다. 또한 삼교합일 관점에서 단군을 종교적 영군이라고 인식하였다”고 말했다.

이경룡 씨는 “이승휴는 40대 이후부터 경세 관료가 되려고 역대왕조의 계승과 국가의 흥망성쇠를 연구하였다. 단군조선의 역사를 이해하고 『제왕운기』를 편찬하였다. 중요한 것은 인류세상을 경세하였다는 단군에 그치지 않고 우주의 창조주와 주재자로서 종교적 영군(靈君)이라고 승격시켰다. 영군은 경세뿐만 아니라 심신 수련의 최종 목표로서 종교적 주재자이다. 따라서 영군은 삼교합일의 종교적 정점이라고 볼 수 있다. 영군은 심신 수련에서 유가의 도심과 불교의 영명에 해당하기 때문의 한국 심학의 철학적 근원이 되었다”고 말했다.

이승휴 입장에서 보면 우주창조주로서 천지와 인간을 주재하는 영군은 성리학의 도심(道心)이나 불교의 영명처럼 영성(靈性)의 근원이다. 단군이 경세의 개국군주이며 동시에 영군은 유가의 도심 또는 불교의 영명처럼 천지와 사람들의 영혼 주재자이다. 따라서 영군의 종교적 의미는 한국 심학의 근원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는 것.

심경호 교수(고려대학교 한문학과)는 ‘고려 중, 후기 역사 서술문체의 다변화와 이승휴의 선택’이라는 논문에서 “이승휴(李承休, 1224~1300)의 『제왕운기(帝王韻紀)』는 몽고 침략과 친원 정권의 수립 이후 민족의 자주성과 주체성을 선양하려는 의도에서 제작된 영사시(詠史詩)로서 역사학과 국문학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시 속에 담긴 문학적 위기의식과 저항정신은 인연(一然)이 『삼국유사』를 저술하였던 동기와 같아서, 단군을 한국사체계 속에 편입시켰다는 점도 주목된다”고 말했다.

심 교수에 따르면 이승휴는 독자적인 역사관과 정통관, 문명의식을 지니고 『제왕운기』를 편찬했다. “이승휴는 시양식의 선별에 각별한 의식을 지니고, 『제왕운기』를 시의 형식으로 제시하면서, 오언시와 칠언시를 구별하고, 오언시로 맨 마지막의 「본조군왕세계연대(本朝君王世系年代」와를 작성했다. 이승휴는 『제왕운기』를 통해 ‘본조의 일’을 서술하고자 하여, 본조의 역사를 노래할 때 특별히 오언시를 사용했다”고 밝혔다.

‘1930년대 대종교 계열 학자들의 이승휴와 제왕운기에 대한 연구’라는 논문에서 조남호 교수(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국학과)는 “1930년대 이승휴의 『제왕운기』와 『동안거사집』에 대한 논의는 단군에 대한 잠시 꺼져가던 불을 다시 일으키는 역할을 하였다. 특히 『제왕운기』와 『동안거사집』의 발견과 발행은 촉매역할을 하였다.”며 “그 중에서도 황의돈과 나카무라 히데타카는 발견과 발행에 역할을 하였고, 최익학은 이승휴에 대한 심도깊은 연구를 하였고, 정인보와 안재홍은 자기만의 역사관을 가지고 이승휴를 논평하였다”고 밝혔다.

조 교수는 “정인보는 『제왕운기』에서 단군의 홍익인간을 말한 점에서 그것을 인정하였지만, 단군을 인간으로 보기 때문에 『제왕운기』에 대해서 비판적이었고, 안재홍은 언어적 관점으로 『제왕운기』를 긍정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모두 이승휴의 단군 기록이 조선에서도 정통사관이 되었음을 논증한 점에서 일치한다. 고려 말에 이어 일제 강점기가 단군연구의 부흥기가 되었음을 뜻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국학연구원은 한민족 고유의 천손문화인 홍익인간 정신의 맥을 찾고 선도문화 및 사상을 연구하여 현대의 정신문화로 계승 및 보급하고자 2003년 설립되었다. 국내외 연구기관 및 학제간의 교류를 추진하면서 정기적으로 학술대회를 개최하며, 매년 두 차례 학술지 『선도문화(仙道文化)』를 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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