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 최초로 축조된 후 한강 하류와 서해가 만나는 교통 요충지를 지키던 인천 계양산성이 오는 23일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예고 된다.

(위) 계양산성의 남쪽 조감뷰 (아래) 계양산성의 동쪽 조감뷰. [사진=문화재청]
(위) 계양산성의 남쪽 조감뷰 (아래) 계양산성의 동쪽 조감뷰. [사진=문화재청]

계양산성은 1,184m 정도의 둘레로 계양산에서 동쪽으로 뻗어내린 능선 중간부분을 중심으로 축조되었다. 사모(모자)모양의 봉우리에 자리해 성내가 사방으로 노출되는 독특한 구조이다. 내‧외부를 모두 돌로 쌓은 협축식 산성으로 당시 군사적 거점인 동시에 행정 중심지로 꾸준히 활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인정광역시 기념물 제10호인 계양산성은 한강유역의 교두보 성곽이다. 삼국의 치열한 영토전쟁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성곽으로 통일신라 때 주로 사용되었다. 또한 고려와 조선시대까지 사용되어 천년 넘는 세월에 걸친 성곽발달사를 알 수 있어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받았다.

계양산성에서 출토된 유물들. (시계방향으로) 금속류들, 대형토기, 소형토기, 북문지 문확쇠. [사진=문화재청]
계양산성에서 출토된 유물들. (시계방향으로) 금속류들, 대형토기, 소형토기, 북문지 문확쇠. [사진=문화재청]

그동안 10차례의 학술조사로 발굴된 유물은 시기별로 다양하다. 한성백제 시기 목간, 둥근바닥 항아리(원저단경호圓底短涇壺)를 비롯해 통일신라 시대 대표적 토기인 찍은무늬 토기(인화문印花紋)가 있다.

이외에도 화살촉과 자물쇠, 쇠솥, 대패의 덧널막이(동곶 童串), 덩이쇠(철정), 그리고 문확쇠門確金 등 금속유물들이 출토되었다. 문확쇠는 전통 건축장식 중 대문을 여닫을 때 쓰는 회전축 장치로 문짝을 다는 홈에 마모를 막기 위해 씌운 접시모양의 철물이다.

문화재청은 23일부터 30일간 의견을 수렴해 문화재위원회 심의 후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