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말 고종의 자주의지가 담긴 국새 ‘대군주보’와 효종의 업적을 기린 ‘효종어보’가 고국으로 돌아왔다.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은 지난 12월 재미교포 이대수(84세) 씨의 기증으로 국새 ‘대군주보’와 ‘효종어보’가 최근 국내에 인도되었다고 밝혔다. 귀환한 대군주보와 효종어보는 오는 2월 20일부터 3월 8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 2층 ‘조선의 국왕’실에서 특별공개 된다.

1882년 고종의 명에 의해 제작된 국새 '대군주인'. [사진=문화재청]
1882년 고종의 명에 의해 제작된 국새 '대군주인'. [사진=문화재청]

‘대군주보’는 은색 거북이 모양의 손잡이와 도장의 몸체인 인판印版으로 된 높이 7.9cm, 길이 12.7cm 크기의 국새이다. 1882년 제작 후 1897년까지 외국과의 통상조약 업무를 담당하는 전권대신 임명문서와 1894년 갑오개혁 후 국왕명의로 반포되는 법률과 칙령, 조칙을 비롯해 관료 임명문서에 사용되었다.

조선은 이전까지 명과 청에서 받은 ‘조선국왕지인’이라 새겨진 국새를 받아 사용했으나, 고종의 명으로 대조선국의 ‘대군주(국왕)’라는 의미를 담아 대군주보를 만들었다. 이는 《고종실록》과 《승정원일기》, 《일성록》 등에 기록되어 있다.

전문가들은 고종이 미국과의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당시 주변 정세 변화에 맞춰 중국 중심의 사대적 외교관계를 청산하고 독립된 주권국가로의 전환을 선언한 것으로 해석했다.

1740년 영조 16년 효종에게 존호를 올리며 제작한 '효종어보]. [사진=문화재청]
1740년 영조 16년 효종에게 존호를 올리며 제작한 '효종어보]. [사진=문화재청]

이번에 귀환한 ‘효종어보’는 금색 거북이 모양의 손잡이와 인판으로 된 높이 8.4cm, 길이 12.6cm이며, 영조16년(1740년)에 효종에게 ‘명의정덕明義正德’이라는 존호를 올리며 제작되었다. 효종 승하 직후인 1659년에 시호를 올릴 때, 1740년 영조16년과 1900년 광무4년에 존호를 올리며 제작한 3개의 효종어보가 있다.

기증자 이대수 씨는 1960년 미국 유학 후 미국에 거주하며 한국문화재에 대한 관심으로 경매 등을 통해 매입하던 중 1990년대에 두 유물을 매입했다. 최근 국새와 어보가 대한민국 정부의 소중한 재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기증을 결심했다. 과정에서 미주현대불교 발행인 김형근 씨와 한국국외문화재연구원(경북 구미) 전 사무처장 신영근 씨가 문화재청과의 사이에서 기증 방법, 형식, 시기 등에 관한 조력자 역할을 했다.

대한제국기를 포함 조선시대 제작된 국새와 어보는 총 412점으로, 대한민국 정부의 재산으로 소지가 불법인 유물이다. 환수된 2점을 제외하고도 73점이 아직 행방불명이며, 유네스코 회원국과 인터폴, 미국국통안보수사국 등에 유물목록이 공유되어 있다.

그동안 국새, 어보의 환수는 주로 압수 또는 수사 등 강제적인 방식이었으나, 이번 환수는 소유자의 결심과 제3자의 도움으로 이루어 낸 ‘우호적 환수’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