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 때 경복궁을 중건하며 조선 초 경복궁 근정전과 사정전에 사용한 청기와를 재현하려 수많은 노력을 했으나 실패했다. 제작기술이 끊겼기 때문이다. 사기그릇을 만드는 흙으로 조성하니 청기와 1장당 8냥으로, 당시 기와집 1칸 또는 초가집 2칸을 살 수 있고, 청기와 20장이면 소 1마리를 살 수 있을 정도였다.

조선의 법궁인 경복궁의 전경. [사진=서울시]
조선의 법궁인 경복궁의 전경. [사진=서울시]

서울역사편찬원은 고종 당시 경복궁 중건의 역사상을 담은 《경복궁 중건 천일의 기록》을 발간했다. 일본 와세다대학에 소장된 당시 공사일지 ‘경복궁영건일기’를 기반으로 했으며, 이강근 서울시립대 건축학과 교수를 비롯해 국내 건축, 역사, 미술사, 국문학 전문가 등 집필진들이 15개 주제로 발간했다.

경복궁의 건축적 특징, 첨단 기술과 공법 사용은 물론 원납전과 인력동원의 실상, 당시 부정행위들, 현장 노동자와 장인, 관리자들, 중건의 당위성과 공사 독력의 허실을 보여주는 노래 등 다양한 내용이 담겨 있다.

조영준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집필한 ‘국가의 막중한 공사를 방해한 부정행위들’에서는 공사현장 장인의 일탈과 자제 조달과정 문제, 각종 농간과 토색질을 비롯해 원납전, 당백전으로 인한 문제와 환표를 비롯한 금융 사기 사건들을 소개했다.

궁궐에 쓸 못을 몰래 빼돌리다 적발된 석수, 품삯만 받고 땡땡이 친 일꾼들, 겨울 부실공사로 붕괴된 신무문 일대 담장 문제, 일꾼들에게 밥을 파는 밥집 주인이 미리 밥값만 받고 가게를 철거해 도망간 경우도 담겨 있다.

경복궁 내 근정전 일대의 모습. [사진=서울시]
경복궁 내 근정전 일대의 모습. [사진=서울시]

또한, 서울시립대 김창수 국사학과 강사가 집필한 ‘경복궁 공사의 지연, 화마와 서양오랑캐의 습격’ 편에서는 병인양요가 경복궁 중건 공사에 미친 영향이 담겼다. 공사가 한창 인 1866년 8월~10월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를 침략해 조정에서는 공사 중단 의견이 팽배했으나 고종은 공사를 강행해 내부결속을 다지려 했다. 하지만 강화도에서 경강으로 올라오는 뱃길이 막혀 목재를 수원지역 포구에 정박시켜 10월에서야 운송할 수 있었다.

서울역사편찬원 이상배 원장은 “시민들이 경복궁 중건의 역사에 접근할 수 있는 좋은 안내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경복궁 중건 천일의 기록》은 서울시민청 지하 1층 ‘서울책방’에서 1만 원에 구매할 수 있고, 서울역사편찬원 누리집(history.seoul.go.kr)에서 전자책으로 열람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