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고대역사학회(회장 정경희)는 11월 23일(토) 국립중앙박물관 소강당에서 "홍산문화 적석총의 기원과 중국 '요하문명-장백산문화론' 극복"이라는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하였다. 동북아고대역사학회가 주최하고 (재)롯데장학재단, (사)국학원의 후원으로 열린 이번 학술대회에서 한국항공대 우실하 교수, 단국대 오대양 교수,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정경희 교수가 발표했다.

동북아고대역사학회는 11월 23일(토) 국립중앙박물관 소강당에서 ‘홍산문화 적석총의 기원과 중국 ‘요하문명-장백산문화론’ 극복‘이라는 주제로 제2회 학술대회를 개최하였다. [사진=동북아고대역사학회]
동북아고대역사학회는 11월 23일(토) 국립중앙박물관 소강당에서 ‘홍산문화 적석총의 기원과 중국 ‘요하문명-장백산문화론’ 극복‘이라는 주제로 제2회 학술대회를 개최하였다. [사진=동북아고대역사학회]

‘동북아시아 적석묘의 기원과 전파, 그리고 연결된 유물과의 연계성에 대하여’라는 주제로 발표한 우실하 한국항공대 교수는 “적석 무덤은 요서지역 기원전 6000년경 흥륭와문화에서 시작되어 홍산문화에서 꽃을 피운 후, 몽골과 유라시아 초원을 비롯한 세계 각처로 전파되어간 묘제로 한민족의 상고·고대사와 밀접히 연결되어있다”며 “아직은 가설이지만 적석묘·석인상· 편두 등은 서로 연결된 문화 산물로 지역과 시기에 따라 나타나는 요소가 다르나 모두 요하문명에서 기원한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좀 더 상세한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기원전 6000년 요서지역 흥륭와문화 적석묘가 발견된 백음장한 유적지. [사진=동북아고대역사학회]
기원전 6000년 요서지역 흥륭와문화 적석묘가 발견된 백음장한 유적지. [사진=동북아고대역사학회]

우 교수는 이어 “이어서 “중국학계에서는 중원문화와의 ‘유사함’에 주목하여 연구하고 황제족의 문명으로 끌고 가는데, 한국학계에서는 ‘유사함’이 아닌 ‘차이점’에만 집중, 결국 요하문명은 우리와 상관없는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양산해가고 있다”며 홍산문화 연구에 학계의 관심을 촉구하였다.

동북아고대역사학회가 23일 개최한 제2회 학술대회에서 우실하 한국항공대 교수가 ‘동북아시아 적석묘의 기원과 전파, 그리고 연결된 유물과의 연계성에 대하여’라는 주제로 발표를 했다. [사진=동북아고대역사학회]
동북아고대역사학회가 23일 개최한 제2회 학술대회에서 우실하 한국항공대 교수가 ‘동북아시아 적석묘의 기원과 전파, 그리고 연결된 유물과의 연계성에 대하여’라는 주제로 발표를 했다. [사진=동북아고대역사학회]

두 번째로 단국대 오대양 교수가 ‘대련지역 초기 적석총 유적의 현황과 특징’을 주제로 발표했다. 오 교수는 “최근 요동반도 남단의 대련지역에서 발견된 50여기의 적석총 유적이 요서지역 홍산문화의 것과 비슷하다는 점에서 그 연관성이 관심을 받고 있다”며 “먼저 양자의 동질성과 차이점에 고찰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 대련지역 초기 적석총 분포도. [자료= 단국대 오대양 교수 제공]
▲ 대련지역 초기 적석총 분포도. [자료= 단국대 오대양 교수 제공]

오 교수는 “홍산문화 후기 단계의 적석총 형태는 한결같이 계단식 다층 구조, 밑이 뚫린 원통형 도기가 둘러진 형태, 중심묘와 부속묘의 관계가 뚜렷한 점, 유물은 모두 옥기만 부장되는 점 등의 형태적 특징이 나타난다. 하지만 대련지역 초기 적석총은 대부분 다실묘가 복합된 구조로 모두 단층인 점, 중심묘와 부속묘의 차등 관계가 나타나지 않는 점, 부장품 역시 토기 위주인 가운데 석기와 옥기가 소량 발견되는 점 등 묘제의 조성 방법 및 출토 유물 방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이에 현재로서는 “양 지역 묘제간의 유사점 내지 교차점을 찾기가 힘들다”며 “이 부분은 앞으로 폭넓고 심층적인 연구가 필요하며, 많은 연구의 축적을 통해 현재 유사점 내지 교차점을 찾기 힘든 단계에서 새로운 가능성의 영역으로 다가서야 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동북아고대역사학회가 23일 개최한 제2회 학술대회에서 단국대 오대양 교수가 '대련지역 초기 적석총 유적의 현황과 특징’을 주제로 발표했다. [사진=동북아고대역사학회]
동북아고대역사학회가 23일 개최한 제2회 학술대회에서 단국대 오대양 교수가 '대련지역 초기 적석총 유적의 현황과 특징’을 주제로 발표했다. [사진=동북아고대역사학회]

세 번째로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정경희 교수가 “홍산문화기 우하량 ‘3층-원방-환호’형 적석 단총제의 등장 배경과 백두산 서편 맥족의 요서 진출”을 주제로 발표했다.

동북아고대역사학회가 23일 개최한 제2회 학술대회에서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정경희 교수가 “홍산문화기 우하량 ‘3층-원방-환호’형 적석 단총제의 등장 배경과 백두산 서편 맥족의 요서 진출”을 주제로 발표했다. [사진=동북아고대역사학회]
동북아고대역사학회가 23일 개최한 제2회 학술대회에서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정경희 교수가 “홍산문화기 우하량 ‘3층-원방-환호’형 적석 단총제의 등장 배경과 백두산 서편 맥족의 요서 진출”을 주제로 발표했다. [사진=동북아고대역사학회]

 

정 교수는 “홍산문화의 대표 적석총인 우하량 적석총은 3층위를 보여 시기별 변화과정을 연구하기에 안성맞춤이다. 특히 3기(기원전 3500년~기원전 3000년)가 되자 예전 2기에 없던 3층 계단식, 원형·방형, 환호시설이 새롭게 등장하였다. 특히 ‘전방후원’ 형태의 3층 계단식 제단 겸 무덤이 등장하는데 그 원류는 기원전 4000년~기원전 3500년경 요동 백두산 서편이며 이러한 형태가 수백 년의 시차를 두고 요서 우하량 지역으로 전파·만개된 것이다”고 하였다. 더하여 유적의 시기 및 형태 비교를 통해 맥족의 요서 진출 문제 및 진출 경로까지 새롭게 해석하였다.

기원전 4000년~기원전 3500년 백두산 서편 통화지역 만발발자 고제단(전방후원형 3층 계단식 적석 무덤 겸 제단)(좌).  기원전 3500년~기원전 3000년 홍산문화 우하량 2지점 하층적석총 조기의 고제단(전방후원형 3층 계단식 적석 무덤 겸 제단).[사진=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정경희 교수 제공]
기원전 4000년~기원전 3500년 백두산 서편 통화지역 만발발자 고제단(전방후원형 3층 계단식 적석 무덤 겸 제단)(좌). 기원전 3500년~기원전 3000년 홍산문화 우하량 2지점 하층적석총 조기의 고제단(전방후원형 3층 계단식 적석 무덤 겸 제단).[사진=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정경희 교수 제공]

정 교수는 “백두산 맥족이 요서 우하량 지역으로 전파시킨 신식 ‘3층-원·방-환호’ 방식은 요서지역 오랜 전통 무덤 방식인 돌담 무덤을 덮어씌우고 있었다. 이는 요서 토착세력과 백두산 맥족의 융화적 방식의 종족 결합, 더 나아가 맥족의 요서지역 토착화 면모를 보여준다”고 해석했다. 또한 적석 제단·무덤 뿐 아니라 한·중 문헌기록을 통해서도 백두산 맥족의 제천문화가 요서·한반도 일대로 퍼져나갔음을 논증하였다.

적석단총과 문헌을 통해 본 백두산 서편 맥족의 요서진출 경로. [자료=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정경희 교수 제공]
적석단총과 문헌을 통해 본 백두산 서편 맥족의 요서진출 경로. [자료=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정경희 교수 제공]

정 교수의 발표는 홍산문화의 상징인 3층 제단, 또 일본의 전방후원형 무덤의 원류가 백두산 서편지역이고 그 문화 주체가 한민족(맥족)이라고 주장한 점에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였을 뿐 아니라 중국의 동북공정, 나아가 일본 식민사관까지 뒤집는 한국 측의 대안 논의로서 시사적 의미가 있다는 평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