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를 국내에서 연극으로 제작하여 처음 무대에 올린다.

서울문화재단(대표이사 김종휘) 남산예술센터는 올해의 마지막 시즌 프로그램으로 ‘공연창작집단 뛰다’와 공동 제작한 ‘휴먼 푸가’(원작 한강, 연출 배요섭)를 오는 11월 6일(수)부터 17일(일)까지 선보인다. 이탈리아 말라파르테 문학상을 받은 한강의 여섯 번째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창비, 2014)가 원작이며, 국내 무대화는 이번이 처음이다.

남산예술센터 공동제작 공모를 통해 선정된 ‘휴먼 푸가’는 연극과 문학의 만남이다. 원작 『소년이 온다』는 1980년 5월, 계엄군에 맞서 싸운 이들과 남겨진 이들의 고통을 그린다. 하나의 사건이 낳은 고통이 여러 사람의 삶을 통해 변주되고 반복되는 소설의 구조는, 독립된 멜로디들이 반복되고 교차되고 증폭되는 푸가(fuga)의 형식과도 맞닿아 있다.

소설을 연극으로 만들기까지 오랜 고민을 한 연출가 배요섭은 “이미 소설로 충분한 작품을 연극으로 올리는 것은 사회 고통을 기억하고, 각인하는 방식을 고민하는 과정”이라고 밝혔다.

연출가 배요섭은 2001년 ‘공연창작집단 뛰다’ 창단 이래 오브제와 배우의 몸을 관통하는 본질에 관해 질문하고 답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해오고 있다. 강원도 화천으로 이주한 후 즉흥과 통합 방식의 창작을 고수하면서 사회현실을 반영하는 예술로서, 또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불가해한 현상의 반향으로서 예술이 지닌 가능성을 탐구하면서 연극과 미술의 경계 위를 줄타기한다. 퍼포머의 행위로부터 시작된 물질적인 글쓰기와 그것에서 파생된 꼴라쥬를 공연의 재료로 사용한다.

배요섭 연출의 연극 ‘휴먼 푸가’는 국가가 휘두른 폭력에 죽은 자와 살아남은 자의 증언을 단순히 재현하지 않는다. 배우들은 연기하지 않고, 춤추지 않고, 노래하지 않는다. 보편적인 연극이 가진 서사의 맥락은 끊어지고, 관객은 인물의 기억과 증언을 단편적으로 따라간다. 슬픔, 분노, 연민의 감정을 말로 뱉지 않고, 고통의 본질에 다가가 인간의 참혹함에서 존엄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를 시도한다.

‘고통에 대한 명상’, ‘바후차라마타’, ‘이 슬픈 시대의 무게’ 등 공연창작집단 뛰다가 오랫동안 작업해온 고통의 사유와 방법론이 ‘휴먼 푸가’에 집약되어 있다. ‘휴먼 푸가’에서는 무대 위의 배우가 가장 중요하다. 배우는 신체의 움직임과 오브제를 변주하고 교차하고 증폭하여 감각의 확장을 꾀한다. 참여 배우 공병준, 김도완, 김재훈, 박선희, 배소현, 양종욱, 최수진, 황혜란과 제작진은 지난 1월 작가 한강과 만나고, 역사 속에서 반복되는 폭력의 모습을 제대로 마주보기 위해 몇 차례 광주를 방문해 자료를 조사했다. 이는 배우 각자의 움직임과 오브제를 발견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이야기하는 방식을 찾는 과정이었다.

한편, 소설 『소년이 온다』는 지난 6월 <The Boy is Coming>라는 제목으로 폴란드 스타리 국립극장(National Stary Theatre)에서 공연된 바 있다. 유럽에서 현지 연극인이 처음으로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공연을 무대에 올린 것이다. 한국과 폴란드는 제노사이드(Genocide, 집단학살)를 경험한 역사가 공통으로 있다.

남산예술센터는 내년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이해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정신과 가치를 확산하고 공유하도록 양국에서 제작한 공연을 교류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11월 9일(토) 공연 후에는 폴란드 ‘The Boy is Coming’ 연출가 마르친 비에슈호프스키와 ‘휴먼 푸가’ 연출가 배요섭이 함께 작품에 관해 이야기하는 ‘관객과의 대화’를 마련했다. 당일 공연을 관람한 관객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휴먼 푸가’는 남산예술센터 누리집(www.nsac.or.kr)에서 예매 가능하다. 전석 3만원, 직장인 2만4천원, 소설 『소년이 온다』 소지자 2만 4천원, 청소년・대학생 1만 8천원, 장애인・국가유공자・65세 이상 1만5천원. (예매와 문의 전화 02-758-2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