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안중근의사숭모회(이사장 김황식)는 지난 26일, 서울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안중근 의사 의거 110주년 기념식’을 개최했다. 이날 기념식에는 이병구 국가보훈처 차장을 비롯한 각계인사와 의사의 유족, 독립운동관련 단체장 및 회원과 시민 400여 명이 참석했다.

이번 기념식은 지난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가 중국 하얼빈에서 이토 히루보미를 저격해 우리 민족의 자주 독립의지를 만천하에 알린 의거 110주년을 맞이하여 거행되었다. 행사는 안중근 의사 약전봉독, 의거의 이유 낭독, 기념사, ‘안중근 안쏠로지’ 도서발간 봉정, ‘안중근체’ 공개, 안중근장학금 수여, 기념공연, 만세삼창 등으로 진행되었다.
 

(사)안중근의사숭모회가 지난 26일 개최한 ‘안중근 의사 의거 110주년 기념식’에서 역사어린이합창단이 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안중근의사숭모회]
(사)안중근의사숭모회가 지난 26일 개최한 ‘안중근 의사 의거 110주년 기념식’에서 역사어린이합창단이 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안중근의사숭모회]

안중근 의사는 황해도 신천 출생으로, 1905년 을사늑약 후 중국 상해로 건너가 국권 회복의 길을 강구하고, 사재를 털어 삼흥학교(三興學校)‧돈의학교(敦義學校)를 세워 인재 양성에 힘썼다. 그러나 광무황제의 폐위, 군대의 해산 등 나라가 식민지 상태에 이르자 다시 해외로 나가 이범윤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으며, 1908년에는 의군장이 되어 의병부대를 거느리고 함경북도로 진입하여 경흥ㆍ회령 등지에서 대일 항전을 전개하였다.

이후 다시 러시아령의 블라디보스토크와 연추 등지를 왕래하면서 동지들과 구국의 방도를 모색하였고, 1909년 봄에는 김기룡‧조응순‧황병길 등 동지들과 함께 손가락을 잘라 ‘단지동맹’을 결성하며 일사보국(一死報國)을 맹세하였다.

1909년 9월, 러시아령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일제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가 하얼빈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우덕순 등과 함께 거사 계획을 세웠다. 마침내 의거 당일인 10월 26일 9시경, 하얼빈역에서 러시아 군인들의 경례를 받으며 각국 영사들이 도열해 있는 곳으로 걸어가고 있던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총을 쏘아 3발을 모두 명중시켰다. 일본 헌병이 그를 체포하려고 하자, 하늘을 향해 “코레아 우라(대한 만세)”를 크게 세 번 외쳤다.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1월 러시아 헌병대에서 여순에 있는 일본 감옥으로 이송되어 심문과 재판을 받는 가운데에서도 일본의 부당한 침략 행위를 공박하며 시정을 요구하였고, 조국의 완전 독립과 동양 평화의 정착을 주장하였다. 1910년 2월 14일 사형을 선고받은 후, 3월 26일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의사의 공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