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나한테 정성을 드린다는 게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뇌교육명상을 하기 전에는 나를 찍은 사진이 없었어요. 나 자신이 보기 싫어 거울도 잘 안 봤죠. 명상 후에는 셀카봉을 사고 자주 찍게 되었죠. 일은 더 바빠졌지만 사는 게 즐겁기만 합니다.”

30년 가까이 질병과 통증을 안고 살아왔던 최흥석(62) 씨는 재작년 뇌교육명상을 시작한 이후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때를 살고 있다고 한다.

최흥석 씨는 뇌교육명상을 하면서 매일 자신에게 정성을 드린다는 것에 행복하다. [사진=김경아 기자]
최흥석 씨는 뇌교육명상을 하면서 어깨를 짓누르던 마음의 짐을 벗고 매일 자신에게 정성을 드린다는 것이 행복하다고 한다. [사진=김경아 기자]

“통증 때문에 예민하고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어 술을 먹었어요. 다음날 아침이면 더 힘들 곤 했죠. 하지만 명상을 하면서 마음에서 짐을 덜어내니 몸도 쉽게 회복됩니다. 이제는 새벽 5시면 일어나 절수련을 하고, 남들보다 1시간 일찍 나가 공장의 기계를 예열해 놓죠. 그래야 출근한 직원들이 덜 힘드니까요.”

최흥석 씨는 어린 시절부터 어깨에 무거운 책임을 얹고 살았다. “9살 무렵부터 지게를 지고 산에 올라 아직도 척추에는 약간 튀어나온 지게 흔적이 지금도 있어요.”

마을 전체가 10여 가구뿐인 무주 산골마을에서 그는 대가족 중 장손으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어릴 적 귀앓이를 하다가 청력을 잃으셨어요. 마음이 비단결 같아 남의 집 궂은일도 마다않고 돕고 제게도 다정한 분이었죠. 하지만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남들에게 무시당하고 사셨죠.”

가난한 농촌살림 때문에 배고픔을 겪으며, 학교는 뒷전이고 부모님 일을 도와야 했다. 중학교를 졸업했지만 배움이 짧았다. 손재주가 좋아 기술을 배워야겠다고 마음먹었으나 쉽지 않았다. 30살 무렵까지 선을 봐도 결혼하기 어려웠다. “키가 작고 나이도 많은데다 손등이 나무껍질이었죠. 누구도 선뜻 가난한 시골에서 살고 싶어 하지 않았어요. 이러다 ‘평생 혼자 살겠구나.’하는 두려움이 들더군요.”

도시로 나간 최흥석 씨는 지금의 아내를 만나 빈손으로 시작했다. 전선제작 회사에 들어가 7~8년 근무하는 동안, 아침 8시 30분 출근해서 다음날 저녁 6시에 퇴근하는 날이 한 달의 절반이었다. “직원들끼리 서로 ‘하숙생’이라고 불렀고, 스트레스를 술로 풀었죠.” 그는 위궤양 등 위장병을 달고 살았고, 의사는 십이지장을 잘라야 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자동차정비기술을 배워 30대 후반 정비소에서 일했지만 힘든 생활의 연속이었다. 당시 아버지가 소먹이를 끓이다 쓰러져 큰 화상을 입고 7~8개월 고생하다 돌아가신 것은 큰 충격이었다. 그 이후에는 아내가 큰 수술을 하고 나서 우울증세에 시달렸다. 그리고 그가 목 디스크 수술을 받았다. 의사는 1년간 일을 쉬어야 한다고 했지만 생계 때문에 2개월 만에 일을 다시 시작했다. “자동차 밑에 들어가 정비하다 쥐가 나서 손이 펴지지 않을 때는 남들 보지 못하게 풀고 나와야했죠.”

고향에서 억울한 일도 겪었다. 도시생활에서 실패한 동생이 고향으로 돌아와 꿩을 키우며 빚을 졌다. 가족과 친척들이 동생의 빚을 대신 갚아주라고 그에게 요청했으나 들어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마침 물려받았으나 등기되지 않은 땅의 상속분이 있었는데, 특별조치법이 발효되자 어머니와 작은 아버지, 동네 주민이 보증해 동생에게 모두 이전했다. 게다가 오해로 번져 고향에서 ‘빚지고 나간 놈’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또한 외가 쪽 친척의 보증을 섰다가 전세금조차 다 날릴 정도로 힘든 시기를 겪었다. 고향에서조차 오해를 받을 당시 그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한 달 넘게 대화를 못한 적도 있었다.

40대 중반 지금 다니는 회사로 옮긴 후 일을 꼼꼼하게 잘했지만 돈을 모으지 못했다. 목 디스크수술 이후 척추까지 문제가 생겨 매월 병원의 통증클리닉에서 목부터 발목까지 진통주사를 맞아야만했다. 의사도 그 몸으로 일하는 건 말도 안 된다고 할 정도였다.

건강도, 금전적인 문제도 힘겹기만 해 마음이 무너질 대로 무너진 그는 2017년 회사에 사표를 내겠다고 했다. “삶도 포기하려고도 했죠. 그런데 사장님께서 단월드에서 뇌교육명상을 하라고, 심성교육까지 보내주겠다고 극구 권유하더군요. 제가 자존심이 세서 부딪힘이 많았던 직원이었는데 말이죠.”

신장이 안 좋았던 사장은 뇌교육명상 후 몸이 좋아지자, 직원전체에 복지혜택으로 기회를 주고 있었다. 고통에 시달리는 그에게 손을 내밀어주었다.

그는 단월드 서대전센터를 찾았고 열심히 뇌교육명상 수련을 했다. “첫날 단전치기를 하는데 배에 멍이 들었고, 가슴은 누를 수도 없이 아팠죠. 제 몸이 얼마나 막혀있는지 그때 알았습니다. 센터 뇌교육지도자들이 제게 관심을 갖고 건강법을 지도해주며 정성스럽게 돌봐주더군요. 그동안 누구에게서 받아보지 못한 사랑을 듬뿍 받았죠.”

최흥석 씨는 오후에 직원들이 피곤할 때 뇌교육명상 체조와 호흡을 지도한다. [사진=본인 제공]
최흥석 씨는 직장에서 오후에 직원들이 피곤할 때 뇌교육명상 체조와 호흡을 지도한다. [사진=본인 제공]

심성교육에서 그는 자신에게 온통 집중해서 자신과 대화를 했다. 그 과정에서 치열하게 살아남으려 남을 배려하지 못하고, 누구에게 밟히지 않으려 기 싸움을 하는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다. 아버지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도 풀 수 있었다. 그리고 문득 자신이 아픈 이유를 찾았다. “어디에도 풀 수 없는 분노를 제 몸에 차곡차곡 쌓고 살아왔다는 걸 알겠더군요. 최고로 미워한 사람이 누구인지 떠올려보니, 어머니였습니다.”

그가 어린 시절 엄마의 품이 그리워 안겼을 때 밀어내던 기억이 생생했다. “사실 어머니를 사랑했는데 한 번도 사랑받지 못한 설움이 컸죠. 제게는 책임만 강조하고 수술로 아플 때조차 찾아오지 않는 어머니를 미워했어요. 어머니가 들어간 노래도 부르지 않고 애써 외면하고 살았죠. 그렇게 살아온 제 마음을 알아차리고 용서하고 나니 짐을 벗은 듯 후련하더군요.”

최흥석 씨는 심성교육을 마치고 난생 처음 꽃다발을 사들고 어머니를 찾아갔다. 어머니를 꼭 안아드리자, 놀란 어머니가 조금 물러섰다. “저도 아이들을 잘 안아보지 못했죠, 아이들이 포옹을 하면 주춤거리며 물러섰던 제 모습을 어머니에게서 보았습니다.”

그날 밤 어머니와 마주앉아 깊은 대화를 했다. “어머니가 첫 아이를 낳고 안아 주려하면 어른들이 ‘네 자식이 예쁘다고 물고 빨면 밥이 나오겠냐? 쌀이 나오겠냐? 일을 해라.’라고 해서 마음 놓고 안아주지 못했더군요.” 그는 어머니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고, 여동생들이 큰 오빠와 어머니의 화해를 가장 반겼다.

그는 아내에게도 꽃다발을 안겼다. 처음에 어색해하던 아내도 좋아했다. “회사에서 가족까지 심성교육에 보내주는 혜택이 있어 아내에게도 좋은 기회를 주려고 합니다.”

최흥석 씨는 뇌교육명상 교육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두 달 만에 체중도 6kg 감소하고 점차 통증클리닉을 가지 않아도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해졌다. 심성교육에 이어 PBM교육을 갔을 때는 뇌교육 5단계를 깊이 체험하면서 늘 상사와 부딪히고, 자존심에 목숨을 거는 이유도 찾았다.

“7~8세 때 논에 물을 대고 오는 문제 때문에 어른들에게 크게 상처를 받고 자존심이 상했던 기억이 나더군요. 늘 장손이라 책임감은 느끼지만, 아프고 힘든 생활 속에서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없었던 것에 대한 속상함도 있고요. 제 마음 한편에는 저도 ‘아버지처럼 궂은 일만 하다 가는 사람이겠다.’라는 마음 때문에 삶에 대한 어떤 기대도 하지 않고, 포기하며 살았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최흥석 씨는 뇌교육명상 전문과정을 거치며 시야도 넓어지고 판단력도 빨라졌다.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면을 먼저 찾게 되었다고 한다. “걱정보다는 잘 될 거라는 믿음이 생겼죠. 내가 믿는 대로 현실이 이루어지는 것도 체험했습니다. 오늘도 차가 밀려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그렇다고 그 화를 제 몸에 저장하지는 않습니다.”

최흥석 씨는 산골에 가서 허리가 굽은 어르신들이 허리를 펴고 살게 해드리고 싶은 꿈을 꾸고 있다. [사진=김경아 기자]
최흥석 씨는 산골에 가서 허리가 굽은 어르신들이 허리를 펴고 살게 해드리고 싶은 꿈을 꾸고 있다. [사진=김경아 기자]

직장에서는 직원들이 힘들어 할 때면 힐링포인트를 찾아 자극하는 자가힐링 건강법인 BHP명상을 해주고 알려준다. 또한 그가 제안해서 오후에 직원들이 피곤하고 졸릴 때면 호흡과 함께 뇌교육명상 체조를 잠깐씩 지도한다. 올해 그는 15년 간 근무한 회사에서 관리직으로 승진했다.

요즘 그는 고향에도 종종 내려가 텃밭 채소를 가꾸며 돌본다. “더 이상 괴로운 책임이 아니게 되었죠. 채소가 무럭무럭 크는 모습을 보면서 힐링을 합니다.”

최흥석 씨는 얼마 후 센터 회원들과 함께 고향 마을 분들에게 BHP명상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갈 예정이다. 그는 “현재 국제뇌교육지도자 과정을 밟고 있고, 뇌교육 지도자로 활동하려고 합니다. 힘든 사람들을 지도하고 저처럼 기회를 주고 싶어서요. 아내와 함께 의논했는데, 산골에 가서 허리가 굽은 어르신들이 허리를 펴고 살게 해주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라며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