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고대역사학회, 학회지 ‘동북아고대역사’ 창간호 발간
동북아고대역사학회, 학회지 ‘동북아고대역사’ 창간호 발간
  • 정유철 기자
  • npns@naver.com
  • 승인 2019.10.16 11: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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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 시기 제의에 대한 문제’ 등 논문 5편 게재

지난 3월에 발족한 동북아고대역사학회(회장 정경희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교수)가 최근 학회지 ‘동북아고대역사’ 창간호를 발간했다.

동북아 상고·고대사의 문화적 실체인 선도문화를 본격 알리고자 하는 취지로 발족한 동북아고대역사학회는 지난 6월 제1회 창립 학술대회를 개최한 데 이어 이번에 학회지 ‘동북아고대역사’ 창간호를 냈다.

이 창간호에 동북아고대역사학회는 회장인 정경희 교수의 “홍산문화기 우하량 3층-원·방-환호‘형 적석 단총제의 등장 배경과 백두산 서편 맥족의 요서 진출”이라는 논문을 비롯하여 “한국선도의 ‘복본’ 사상과 ‘스승’전통”(조미옥) “고조선 시기 제의에 대한 문제”(하문식), “한·중 마고 전승 비교 연구”(석상순) “광복 이후 초·중학교 국사교과서의 ‘단군조선사’ 분야 개정 방향 연구”(장지화) 논문을 게재했다.

지난 3월에 발족한 동북아고대역사학회(회장 정경희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교수)가 최근 학회지 ‘동북아고대역사’ 창간호를 발간했다.[사진=김경아 기자]
지난 3월에 발족한 동북아고대역사학회(회장 정경희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교수)가 최근 학회지 ‘동북아고대역사’ 창간호를 발간했다.[사진=김경아 기자]

 

정경희 교수는 “홍산문화기 우하량 ‘3층-원·방-환호’형 적석 단총제의 등장 배경과 백두산 서편 맥족의 요서 진출” 논문에서 “요서지역 흥륭와문화기 서랍목륜화 일대에서 시작된 적석묘 제도는 긴 잠복기를 지나 홍산문화 중기 무렵 대릉하 일대를 중심으로 다시 부활하게 된다. 홍산문화기 대릉하 일대의 대표 적석 단총인 우하량 유적은 3층위를 이루고 있어 홍산문화기 적석 단총제의 성립 및 변천 과정을 명확하게 보여준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발전단계를 보며 3기 상층적석총 단계(홍산문화 후기, 기원전 3500년~기원전 3000년)가 되자 급작스레 적석총의 규모가 커지고 외형이 완전히 새로운 ‘3층-원·방-환호’형 방식이 등장하였다.”며 “기원전 4000년~기원전 3500경 요동 백두산 서편의 고제단군은 구릉성 입지, 3층 원단, 환호를 특징으로 하는 ‘환호를 두른 구릉성 제철시설(3층원단류)’로서 기원전 3500~기원전 3000년 요서 우하량 상층적석총 단계 ‘3층-원·방-환호’형 방식의 원류이다”고 밝혔다.

정 교수는 “이즈음 백두산 서편(배달국 천평지역)에서 전형적인 선도사상에 입각한 새로운 형태의 적석 단총제가 생겨나 수백년의 시차를 두고 요서 우하량지역(배달국 청구지역)으로 전파된 것이다”고 말했다.

또한 정 교수는 “상층적석총 단계에서는 ‘석권’ 위로 ‘3층-원·방-환호’형가 덧씌워진 방식도 나타났는데 ‘석권’방식이 흥륭와문화기 이래 요서지역의 전통적인 구식, ‘3층-원·방-환호’형 방식이 요동 백두산지역에서 새롭게 생겨난 신식이므로, 양자의 결합은 요서지역 구래의 선도제천문화와 요동지역의 새로운 선도제천문화의 결합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 교수는 “그 정치·사회로 본 의미는 요서 토착세력과 요동 백두산 맥족간의 종족 결합, 또는 요동 백두산 맥족으로 지배세력 교체이다”고 의미를 밝혔다.

동북아고대역사학회 학회지  ‘동북아고대역사’ 창간호. [사진=김경아 기자]
동북아고대역사학회 학회지 ‘동북아고대역사’ 창간호. [사진=김경아 기자]

 

장지화 박사는 “광복 이후 초·중학교 국사교과서의 ‘단군조선사’ 분야 개정 방향 연구” 논문에서 “광복 이후 민족주의 사학자들의 한국사 복원 노력으로 초·중학교 교과서에 단군조선 건국이 사실로 기술되었으나 국정교과서 체제로 전환되는 3차 교육과정에서 신화로 기술되었다가 이후에는 건국이야기로 기술되었다”며 “단군조선 이후 계승국가에 대해서는 초등학교 국사교과서의 경우 모든 교과서에 나타났으나 6차 교육과정 국사교과서에서부터 빠지게 되었다. 반면 중학교 국사교과서의 경우는 비교적 자세하고 지도로도 표시되어 있다. 초·중학교 국사교과서 모두 단군조선과의 계승관계가 명백하게 서술되어 있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한국전쟁과 남북분단으로 올바른 한국사 정립을 위한 민족주의 사학자들의 노력이 좌초하고, 식민사학자들이 강단사학의 주류로 자리잡게 되면서 새롭게 시작되었던 올바른 한국사 정릭을 위한 움직임이 다시 후퇴하기 시작하였다고 장 박사는 분석했다.

장 박사는 “최근의 연구 성과에 기반하여 한국사의 첫머리, 단군조선사 이전에 배달국사를 첨입해 넣을 것을 제언하였다”며 “한국사의 첫머리가 바로 세워져야 단군조선사의 문제도 비로소 명확하게 풀려갈 수 있다. 곧 단군조선의 건국시기와 건국과정, 단군조선의 한반도와 요동·요서를 아우르는 강역 문제, 위만조선과 한사군이 단군조선의 국경 부근에 있었던 문제, 단군조선사의 내용적 실체인 선도문화의 문제, 단군조선을 계승한 부여 이하 열국들의 문제가 자연스럽고 명쾌하게 서술될 수 있다”고 밝혔다.

장 박사는 “배달국→단군조선→부여→열국시대로 이어는 한국사 계통성 정립을 통해 배달국 이래 면면히 이어져온 한국 고유문화의 실체인 선도문화가 역사의 첫머리에 자리잡게 될 때 비로소 한국적 정체성이 바로서게 될 것이다”고 마무리했다.

동북아고대역사학회는 학회지 창간을 계기로 한국 상고·고대의 고유한 사상·문화의 원형성을 밝히고, 이를 바탕으로 중국 동북공정의 허구성을 논증하고, 나아가 세계속에 한국사와 한국 문화의 정체성을 널리 알리는 데 더욱 힘쓰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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