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 개봉한 영화 ‘말모이’의 주인공 류정환(윤계상 분)의 실제모델인 한글학자 이극로 선생이 96년 전인 1923년 독일 훔볼트 대학에서 한국어강좌를 개설했다는 독일 정부의 공식 문서 등이 공개되었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은 지난 8일 독일 유학 중이던 이극로 선생이 유럽 최초로 프리드리히 빌헬름대학(현재 훔볼트대)에서 개설한 한국어강좌 관련 독일 당국 공문서와 이극로 선생 자필 서신 등을 수집, 제공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국가기록원이 2014년 독일 국립 프로이센문화유산기록보존소에서 수집한 기록물 6철 715매 중 11매가 이극로 선생관련 자료이다.

이중 공문서 5매는 훔볼트대 동양학부와 독일 문교부, 이극로 선생이 한국어 강좌 개설과 관련해 주고받은 내용이다. 1923년 8월 10일 훔볼트대 동양학부 발송 975호는 학장대리가 독일 문교부 장관에게 한국어강좌 개설허가를 요청한 내용이고, 8월 31일 문교부 발송 8593호에는 이를 허가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독일 문교부장관이 이극로 선생의 한국어 강좌 개설을 허락한 허가서. [사진=행정안전부]
독일 문교부장관이 이극로 선생의 한국어 강좌 개설을 허락한 허가서. [사진=행정안전부]

나머지 6매는 이극로 선생이 타자기로 작성한 문건 2매, 자필 편지 2매, 초안으로 추정되는 기타 2매 등이다. 이극로 선생은 1925년 1월 30일 동양학부 학장에게 보낸 서신에서 “한국어는 2천만 명이상이 사용하는 동아시아의 세 번째 문화어이다. 문자가 독특해 실용적인 측면 외에도 언어학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당시 극동아시아언어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졌으나, 독일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며 한국어강좌의 필요성을 논리정연하게 전개했다.

이극로 선생의 어문학적 업적을 연구한 경희대 차민기 박사는 “선생이 수학한 훔복트대가 언어학을 기반으로 설립한 대학이어서 언어를 민족구성의 중요요소로 여겼다.”며 “이런 학풍의 영향으로 언어에는 민족의식이 담겨 있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또한 한국어 강의 경험이 민족운동으로서 어문운동에 투신한 계기가 되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차민기 박사는 “선생은 학업을 마치고도 프랑스와 독일의 음성실험실에서 한국어 음성실험에 피실험자로 참여했고, 귀국 후 이를 토대로 한국어 음성학 이론의 기틀을 마련했다. 또한 해외유학과 그 이후 맺은 인맥을 중심으로 조선어학회 재정과 대외관계를 이끌었다.”며 “이극로 선생의 연구와 어문운동이 재평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7년 훔볼트대 기록을 발굴해 처음 국내에 알린 조준희 국학인물연구소장은 “독일에서의 한국어강좌 경험이 경제학 박사인 이극로 선생이 훗날 조선어학회 간사장을 맡아 ‘조선어 큰사전’ 편찬을 주도하고, 주시경과 함께 한글 사업을 환수한 어문운동가의 길을 걷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며 “지금까지 독일 학계에 알려진 1952년 한국어강좌 최초 개설을 29년 앞당긴 것으로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