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왕릉은 선화공주와 관련된 설화를 깃들어 있는 익산 소왕릉 발굴현장에서 그와 관련된 자료를 찾지 못했다. 그러나 봉토나 석실의 규모와 품격은 왕릉급임을 확인했고 글자가 없는 묘표석 2개가 발견됐다.

익산 소왕릉의 석실 내부 북-남. [사진=문화재청]
익산 소왕릉의 석실 내부 북-남. [사진=문화재청]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의 허가를 받아 익산시(시장 정헌율)와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소장 최완규)가 시행한 익산 쌍릉(사적 제87호) 중 소왕릉에서 묘표석이 확인됐다.

전북 익산시 석왕동 6-11번지 일원  익산 쌍릉(사적 제87호)은 백제 시대 무덤으로, 대왕릉과 소왕릉이 180m가량 서로 떨어져 있다.

  익산 쌍릉은 문헌 기록에 의하면 백제 무왕과 그의 왕비 능으로 알려져 왔고, 고려 시대에 이미 도굴된 기록도 남아 있다. 이들 두 고분은 1917년 일본인 야쓰이 세이이쓰(谷井濟一)가 발굴한 바 있으나, 정확한 정보를 남기지 않아 2017년 8월부터 고분의 구조나 성격을 밝히기 위한 학술조사를 진행해왔다. 

  소왕릉 발굴조사는 2019년 4월 고유제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봉분과 묘도의 축조과정과 양상을 파악하였으며, 대일항쟁기 당시 발굴 흔적과 그 이전 도굴 흔적을 그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묘도 내 묘표석(석주형) [사진=문화재청]
묘도 내 묘표석(석주형) [사진=문화재청]

  이번 발굴조사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국내 최초로 왕릉급 고분에서 두 종류의 묘표석 발견이다. 석비(石碑)형으로 된 것과 석주(石柱)형으로 된 것이 나왔는데, 석비형 묘표석은 일반 비석과 유사한 형태로 석실 입구에서 약 1미터 떨어진 지점에 약간 비스듬하게 세워진 채로 확인되었다. 크기는 길이 125㎝, 너비 77㎝, 두께 13㎝이며, 석실을 향한 전면에는 매우 정교하게 가공되었고, 그 뒷면은 약간 볼록한 형태다.

  석주형 묘표석은 대일항쟁기에 훼손된 봉토 내에서 뉘어진 상태로 발견되어 원래 위치인지는 불분명하다. 길이 110㎝, 너비 56㎝의 기둥모양으로 상부는 둥글게 가공하였고, 몸체는 둥근 사각형 형태다. 이들 두 묘표석은 문자가 새겨지지 않은(무자비, 無字碑) 형태로 발견되었다. 이 석주형 묘표석과 비슷한 예는 중국 만주 집안(集安) 지역의 태왕릉 부근에 있는 고구려 봉토석실분인 우산하(禹山下) 1080호의 봉토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이번에 묘표석이 나온 소왕릉의 봉분은 지름 12m, 높이 2.7m 정도로, 암갈색 점질토와 적갈색 사질점토를 번갈아 쌓아올린 판축기법이 사용되었는데 이는 대왕릉 판축기법과도 유사하다. 석실은 백제 사비시대의 전형적인 단면 육각형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이다. 석실의 규모(길이 340㎝, 폭 128㎝, 높이 176㎝)는 대왕릉의 석실 규모(길이 400㎝, 폭 175㎝, 높이 225㎝)에 비해 작은 편이지만 측벽 2매, 바닥석 3매, 개석(덮개돌) 2매, 후벽 1매, 고임석 1매의 구조 짜임새는 동일하며, 석재 가공 역시 치밀한 편이다.

묘도내 묘표석(석비형). [사진=문화재청]
묘도내 묘표석(석비형). [사진=문화재청]

 

고분의 입구에서 시신을 안치한 방까지 이르는 연도는 길이가 짧은 편으로, 연도 폐쇄석과 현문(현실 문) 폐쇄석이 두 겹으로 구성되어 대왕릉과 같은 양상이다. 소왕릉 석실의 바닥에는 관대(길이 242㎝, 폭 62㎝, 높이 18㎝)가 놓여있었다.

  묘도는 석실 입구에서 남쪽으로 길게 뻗어 있으며, 규모는 최대 너비 6m, 최대 깊이 3m, 현재까지 확인된 길이는 10m 가량이다. 일정한 성토(盛土, 성질이 다른 흙을 서로 번갈아 가면서 쌓아올리는 기술)를 통해 묘도부를 조성한 후 되파기한 걸로 판단된다. 폐쇄부는 점질토와 사질점토를 번갈아 쌓았다. 묘도부 10m 지점 끝단에서는 다듬은 석재를 이용해 반원형상의 석재를 놓아 묘역의 범위를 표시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석실 천장의 북동쪽 고임석(천장부를 받치는 석재) 부분에는 대일항쟁기 이전에 만들어진 길이 68㎝, 높이 45㎝ 정도의 도굴 구덩이가 확인되었다.

 소왕릉은 선화공주와 관련된 설화를 간직하고 있는 고분으로 많은 관심의 대상이 되어 왔지만, 이번 발굴에서는 이와 관련된 적극적인 자료는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봉토나 석실의 규모와 품격에 있어서 왕릉급 임을 확인했다.

 이번에 발견된 묘표석은 각각 석실 입구와 봉토 중에 위치하고 문자가 없는 점에서 무덤을 수호하는 진묘(鎭墓)와 관련된 시설물로 추정할 수 있으며, 백제 왕실의 장묘제 연구에 새로운 계기가 마련된 것으로 평가된다.

  문화재청은 앞으로도 익산시와 함께 쌍릉을 비롯한 익산지역 핵심유적을 조사하여, 백제 왕도의 실체를 복원할 수 있는 학술자료를 확보하고, 나아가 백제왕도 핵심유적의 보존관리 수준을 높이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