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소녀, 설렁거3

바트남 오빠가 대 칸과 함께 호라즘의 전쟁터로 떠난 후, 겨울이 네 번 지나갔다.
나는 열여덟 살이 되었고 말만한 처녀가 된지 이미 오래이다.
어머니는 내가 왜 자꾸 남자를 피하는지 모르겠다며 조금만 지나면 시집도 못 갈 것이라고 한숨을 쉬신다. 어른들은 말 못할 병이라도 있는 게 아니냐고 혀를 찬다.

오늘도 오빠의 게르로 달렸다. 멀리 지평선에 점 하나가 나타났다.
비틀거리는 멀의 모습인데 어딘가 익숙하다. 혹시?
급히 달려간다. 맞다!

갈기는 흐트러지고 바짝 마른 몰골이지만 바트남 오빠가 그토록 사랑하던 멀인 ‘바람’이다. ‘바람’도 나를 알아보았는지 투레 소리를 내며 앞발굽으로 땅을 굵어 댄다. 주인도 없이 혼자 어딘지 모를 곳으로부터 집으로 찾아 온 것이 분명하다.
얼른 낡은 안장 밑으로 손을 넣어 보았다. 내가 엄마 몰래 넣어준 ‘보르츠’ 주머니가 나온다. 그 속에서 말라버린 하얀 꽃잎들이 쏟아져 나온다.

‘차간 올 체체그’ 꽃들이다.
오빠는 평소에도 눈을 헤치고 나온 차간 올 체체그 꽃을 꺾어
“무지개에 꼭 어울리는 꽃”이라면서 내 머리에 꽃아 주곤 하였다.

멀고 먼 어느 나라, 높은 설산을 지나다가 문득 나, 설렁거를 생각하며
모아 둔 것이 분명하다.

수없는 시간이 가슴속으로 무너져 내린다.
눈물이 흰 꽃 위로 쏟아진다.

(몽골인은 연인에게 ‘차간 올 체체그’(에델바이스)꽃을 선물한다. ‘우리 사랑 티 없이 맑게 영원하자.’는 약속이다.)

사랑, 수채. 장영주 작.
사랑, 수채. 장영주 작.

“부도지”는 현 인류의 조상으로 최초의 인간인 남자인 ‘나반(那般)’과 여자인 ‘아만(阿曼)’이 만나 탄생되었다고 적었다. 천해(天海) 바이칼 호에서 서로 떨어져 살다가 꿈에 천신의 가르침을 받고 바이칼 호를 건너 ‘아이시타’에서 만나 결혼했다고 하였다(人類之祖 曰 那般 初與 阿曼 相遇之處 曰 阿耳斯陀).

‘나반’은 ‘나바이’로 다시 ‘아바이’가 되고 ‘아버지’가 된다. ‘아만’은 ‘아마이’에서 ‘어마이’로 ‘어머니’가 된다. 인류의 지식이 문자로 기록되기 전, 우리의 역사가 본능적으로 몸에 기록된 말로 증명하니 한민족의 역사가 곧 인류의 역사인 셈이다.

“부도지”의 마고성 이야기에는 ‘허달성’과 ‘실달성’이 나오는데 이는 물질이 있기 전의 기(氣) 에너지의 세계와 현실화된 물질로서의 지구를 말한다. 마찬가지로 남녀의 사랑도 보이는 육체로부터 시작하여 느껴지는 사랑의 에너지로 끝없이 확산, 수렴되면서 이어져 간다.

남녀의 육체적인 사랑은 오직 정해진 상대만이 가능하지만 민족과 나라에 대한 사랑은 가슴깊이 더욱 넓어진다. 나아가 모든 인간과 생명을 사랑하는 ‘홍익인간’(弘益人間)으로 진화하여야 한다. 홍익인간들이 함께 이루어가는 세계는 국경, 종교, 이념을 초월하여 진리가 완전하게 실현된 지구촌으로 곧 ‘이화세계’(理化世界)이다.

몽골의 넓은 땅, 언제, 어디서나 바람이 되어, 내 온 세포를 흔들어 깨우는 ‘혼의 소리’를 결코 잊을 수 없다. 이제는 지구 전체를 보아야 한다. 천손족인 한민족과 땅의 민족인 몽골족이 조화를 이루어 새로운 진화를 이룬 ‘이바요의 꿈’이 지구인의 꿈으로 승화되기를 꿈꾼다.

“홍익인간 이화세계!” (弘益人間 理化世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