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지개 소녀, 설렁거 2’

"오빠가 대 칸의 부대와 함께 호라즘으로 떠난 지 벌써 두 번의 겨울이 지나갔어요. 바람결에 바트남 오빠는 대 칸의 호위무사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얼마나 기쁜지요! 오빠! 올해로 내가 열여섯 살이 된 거 아시지요. 사람들은 나를 꽃처럼, 설렁거처럼 ‘헐룽’(예쁘다)하다고 해요. 어머니는 ‘사항잘라’(괜찮은 남자)를 골라 시집가라고 재촉하시고 어른들이 뻔질나게 게르를 드나들며 나를 살펴보고 가곤 해요. 그럴 때마다 나는 멀에 올라타고 모든 게 그리운 오빠네 게르로 달려가곤 해요. 그리고 하늘을 보며 두 손 모아 탱그리(Tengri, 하늘 신)에게 빌고 또 빌고 있어요.

바트남 오빠가 어서 건강하게 돌아오기를!
그의 각시가 되어 아기를 열 명만 낳기를!
양과 멀과 뎀에를 많이 기르고 같이 늙어 가기를!
오빠가 떠나기 전날 풀밭 위에서 내게 입 맞추며
속삭이던 말이 아직도 귓가에 맴돌고 있어요.

“텡겔 갖알 매트 하이르테.”
(tenger gazar met hairtai, 하늘만큼 땅만큼 너를 사랑해.)
바트남 오빠, 저도 오빠를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해요.“

한반도의 수많은 갑돌이도 갑순이에게 똑같은 고백을 한다. 나는 너를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한다고. 몽골족과 한민족은 우리를 낳고 지켜주시는 ‘하늘 아버지, 땅 어머니’(천부지모, 天父地母)를 영원한 존재로 믿고 의지해 왔다. 우리의 선조들은 그 창조의 근원을 하늘에 계신 하나(一)님이라고 하였으니 몽골과 중앙아시아의 말로는 '탱그리'(하늘님)이다. ‘탱그리’(Tengri, 하늘)로부터 씨앗을 받은 모든 육신은 '갖알'(gazar, 땅)이라는 생명 밭에서 태어난다. 그래서 모든 '훙'(Hun, 사람)과 동물, 식물은 ‘천부지모’의 태생으로 한 형제가 된다. 이처럼 천지인(天地人)이 하나인 사상은 몽골이나 우리 민족이나 다름이 없다.

부도지 책표지. [사진=장영주]
부도지 책표지. [사진=장영주]

 

밝은 터의 기록, “부도지(符都誌)”는 한민족 고유의 창세 신화로서 창조주의 자리에 인격체가 아닌 법칙과 기운으로서 ‘율려’(律呂)가 존재한다고 기록하였다. 마고가 율려의 법에 따라 삶의 터전으로서의 지구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부도지”에 실려 있어 바이블의 창세기와 비슷하지만 역사는 “부도지”가 훨씬 오래 되었다. 신라 충신 박제상이 지은 역사서인 “부도지”에는 모든 생명의 고향인 지구 어머니를 ‘마고 어머니’라고 부른다. ‘마고’(麻姑)라는 한자의 뜻은 ‘길쌈을 하는 노파’이지만 한자 이전의 순수한 우리말은 그 뜻이 더욱 깊고 오묘하다.

‘마’는 '맘마‘ ‘엄마’ ‘맏아들’ ‘맞소’ ‘마땅하다’ 와 같이 최초와 대 긍정의 의미가 있다. ‘고’는 사랑이라는 말이니 ‘마땅히 생명을 살리는 최초의 사랑’이라는 뜻이다. 모든 생명의 터전인 ‘사랑의 지구 어머니’에 걸맞는 태초로부터의 우리말이다. 마고 어머니의 본질은 ‘평화이고 사랑’이시니 그 마음을 회복하는 것이 곧 ‘홍익사상’이다. ‘홍익사상’은 지구상의 모든 고등종교와 학문과 이념의 근본이며 궁극의 도달점이다. 그 근본 마음을 회복하자는 약속이 “복본(復本)의 서약”이자 한민족의 사명이라는 가르침이 “부도지”의 요체이다.

“부도지”에 따르면 마고의 터전은 중앙아시아의 천산(天山)이고 사람은 천해(天海, 바이칼)에서 번성하니 몽골의 이 드넓은 초원이 우리에게 그 어찌 아니 익숙한가.

역사의 기운에 이끌려 왔는지 익숙한 모습의 한국 대학생 세 명을 만났다. 신입생들로 몽골 대륙을 한 달간 배낭여행을 하고 있단다. 떠도니 청춘이다. 아름답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