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 관련해 지난 7월 일본정부가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 등 부당한 조치가 진행되는 상황이다. 이에 교육부 산하 3개 역사연구기관 공동으로 학술 심포지엄을 개최해 한일 간 문제가 되는 식민지 피해 실태 연구 성과를 중심으로 한일 역사 갈등의 해결방안과 향후 과제를 논의했다.

동북아역사재단과 국사편찬위원회,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지난 4일 동북아역사재단 대회의실에서 ‘일제 식민지 피해 실태와 과제’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는 지난 8월 9일 11차 사회관계장관회의에서 논의된 ‘동북아 평화와 협력을 위한 역사교육 활성화’방안에 따른 학술적 대응이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일제 식민지 피해 실태와 과제' 심포지엄에서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일제 식민지 피해 실태와 과제' 심포지엄에서 "명확한 역사적 사실 인식을 바탕으로 한일 양국의 상호이해와 역사화해를 추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사진=동북아역사재단]

유은혜 부총리겸 교육부장관은 축사에서 “한일 갈등 해결을 위해 명확한 역사적 사실 인식을 바탕으로 한일 양국 간 상호이해와 역사화해를 추구해야 한다.”고 취지를 밝히고, “교육부는 한일갈등을 넘어 동북아 평화를 지향하는 역사교육과 학술연구 활동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중장기 정책을 구체화하고 지원하겠다.”고 했다.

심포지엄은 1부 개회식에 이어 2부에서 ‘강제동원 피해실태와 자료’를 주제로 ▲노영종 국가기록원 학예연구관의 ‘충남지역 강제동원 현황과 거부투쟁’ ▲박정애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의 ‘조선총독부 자료를 통해 보는 일본군‘위안부’문제’ 발표가 있었다.

노영종 학예연구관은 “일본 기업과 사업장에 동원된 조선인 현황을 보면 1939년부터 1945년 일본지역 93개 사업장에 동원된 충남지역 강제동원자만 9,823명이었으며, 1939년을 시작으로 1942년부터 크게 증가하여 1943년과 1944년 최고조”였다고 밝혔다. 노 연구관은 “조선인들이 순순히 응했던 것은 아니다. 개인적 탈출, 조직적 집단탈출을 비롯해 비밀결사를 조직해 징용 반대투쟁을 전개했고, 파업‧태업‧무력행사 등의 노동쟁의 방식으로 저항했다.”며 “일제의 조선인 강제동원은 식민정책의 연장선에서 수행된 반인륜적 인력 수탁정책이자 조선민족 말살정책으로 식민정책의 최종착지로서 의미를 담고 있다.”고 밝혔다.

박정애 연구위원은 “일본군‘위안부’관련 조선총독부자료는 동원이나 이송배경을 보여주는 것이 많다. 조선총독부 도항통계 자료들은 한국 국가기록원에 소장되어 있다.”며 “위안소에 이송되기까지 본적지 관할 경찰서에서 형식적으로 신분확인을 받고 경찰과 군의 엄격한 통제를 받았음을 입증한다. 공권력에 의한 조선인‘위안부’ 동원 관리, 통제를 성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밝혔다.

교육부 산하 역사연구기관인 동북아역사재단과 국사편찬위원회, 한국학중앙연구원은 4일 '일제 식민지 피해 실태와 과제'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해 한일 역사 갈등의 해결방안과 향후과제를 논의했다. [사진=동북아역사재단]
교육부 산하 역사연구기관인 동북아역사재단과 국사편찬위원회, 한국학중앙연구원은 4일 '일제 식민지 피해 실태와 과제'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해 한일 역사 갈등의 해결방안과 향후과제를 논의했다. [사진=동북아역사재단]

3부에서는 ‘강제동원 피해 배상’을 주제로 ▲남상구 동북아역사재단 한일역사문제연구소장의 ‘일본의 전후처리와 식민지배에 대한 역사인식’ ▲조시현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의 ‘국제인권법에 비추어본 대법원 강제동원 판결의 의미’ 발표가 있었다.

남상구 소장은 2015년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아 동아일보와 일본 아사히신문이 실시한 공동여론조사를 바탕으로 “역사문제에 대한 한일 간 인식차이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남 소장은 일본의 전후 배상과 관련한 미국의 입장 변화와 문제점을 지적했다. “미국은 일본 점령 초기 준엄한 대일배상정책을 취해 일본의 공업시설을 철거해 아시아 국가의 경제부흥에 사용할 것을 권고했으나, 냉전이 진행되고 미국의 안보정책에서 일본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짐에 따라 일본의 경제부흥을 우선시 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1차 대전 후 독일에 대한 배상정책과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며 “전쟁배상책임에 관한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는 일본에 의해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중국과 한국이 참석치 못했고, 동남아시아 각국은 미국의 냉전정책에 동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밝혔다.

조시현 연구위원은 2018년 10월 30일 대법원 판결에 관해 “피해보상이 요구된 이래 73년 만에 처음으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권리를 인정했다. 판결은 강제동원 문제를 한국의 민법을 근거로 불법행위책임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문제로 다루었다.”며 “대법원 판결이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라고 한 것은 국제법상 ‘인도에 반하는 범죄(crimes against humanity)’와 연관된다. 더 나아가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수행과 직결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조 연구위원은 “그동안 한국정부는 일본과 한국의 소송에 대해 ‘사인私人간의 재판’이라며 방관했다. 중국인 피해자에 대한 일본 판결에 강력하게 항의해 온 중국정부의 태도와 대비된다.”며 “2011년 헌법재판소 결정과 2012년 대법원 판결, 그리고 2018년 대법원 판결을 통해 확인된 국가의 외교적 보호권에 따라 정부는 피해자 국민들의 침해된 인권회복을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동북아역사재단과 국사편찬위원회, 독립기념관 등 역사 관련기관과 국가기록원은 국가기록원이 소장 중인 강제동원 기록을 활용해 일제의 강제동원 실상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연구를 추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