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의 울음

다음날도 달리고 또 달린 끝에 ‘바양작’에 도착한다. 바양작(Bayan Zag)은 ‘바양(많다)+작(나무)’의 합성어로 ‘나무가 많은 지역’이라는 뜻이다. 중력을 벗어나려는 몸부림처럼 낮은 키에 비틀린 모습이 그 자체가 공룡 같은 ‘삭사울’ 관목이 가득하다. 삭사울은 화력이 좋아 사막에서는 아주 유용한 땔감이다. 혹시 그 옛날 초식 공룡의 먹이가 아니었을까?

바양작은 ‘불타는 절벽’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1920년 공룡 화석을 찾아 나선 미국의 동물학자 ‘로이 앤드루스’가 한 말이다. 바양작은 몽골 최초로 공룡 알이 발견된 장소이고 공룡의 뼈와 알의 화석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발굴된 곳이다.

1990년, 미국의 소설가 크라이튼의 베스트셀러를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쥬라기 공원’(Jurassic Park)의 토대가 된 발굴지이다. 새로운 문화는 일단의 고독한 사람들의 상상력으로 촉발되어 발로 뛰는 탐험가들에 의하여 과학이 되고, 예술이 되고, 경제가 되어, 신기술로 보편화되어 현실이 된다. 역사적, 과학적 사실은 인간과 공룡은 결코 한 공간에 있을 수 없었지만 인간의 상상력은 그걸 가능하게 만들었다. 인간 두뇌의 무한한 가능성이고 창조성이다.

공룡 화석. 바양작은 몽골 최초로 공룡 알이 발견된 장소이고 공룡의 뼈와 알의 화석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발굴된 곳이다. [사진=장영주]
공룡 화석. 바양작은 몽골 최초로 공룡 알이 발견된 장소이고 공룡의 뼈와 알의 화석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발굴된 곳이다. [사진=장영주]

이곳은 입장료가 있는데 바타 아우는 개성대로 뒷길로 잠입하여 무료 관람을 하였다. 절벽 아래쪽에 굳어 있는 붉은 흙들의 기묘한 형상의 언덕과 계곡들이 끝 간대 없이 펼쳐져 있다. 폭우로 물결치며 거세게 떠내려가던 토사가 순간적으로 건조되어 겹겹이 쌓인 시간의 강물 같다. 허공 가득한 정적이 에워싸고 있어 마치 미국 애리조나 주 세도나의 붉은 인디언 계곡과도 같다. 내 발 아래로 아득한 선사시대의 지구의 주인이었던 공룡들의 화석이 도대체 얼마나 묻혀 있을까? 우리 인간의 진화와 운명은 어떻게 될까? 놀라움과 경탄의 마음으로 절로 이곳저곳을 거닐다가 타임머신을 타고 신비로운 선사시대의 원시화가가 되어 한 낮의 뜨거운 태양과 순결한 바람결속에서 스케치를 한다. ‘ㄱ’님이 짠했는지 위로한다.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데, 이 더위에 고생 하시오.”

바타가 지나가는 말로 이곳의 게르 캠프에도 공룡화석 전시장이 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캠프 한구석에 교실 한 칸 정도의 허름한 단독 건물이 있다. 와! 그곳에는 실제의 공룡화석이 조악하기는 하나 박제 상태로 서 있었다. 사람의 키보다 더 크고 이빨이 날카롭고 앞발은 짧고 뒷발과 꼬리는 거대한 것이 육식공룡임이 틀림없다. 혹시 레알 ‘니노티라누스’?

어두컴컴한 지하에는 흙에 묻힌, 마치 악어의 등과도 같은 모습의 또 다른 공룡의 화석이 있다. 값이 없을 정도의 지구의 보물일진데 보관 상태가 이처럼 허술하다니. 우리나라에서도 다수의 공룡 발자국이 남아 있고 화성시 시화호에는 공룡알 화석도 발견 되었다. 지금은 공룡을 볼 수가 없지만 새들이 공룡의 후손임이 틀림없다. 사람의 뇌 속 어딘가 에도 공룡의 정보가 남아 있을 수도 있다.

게르 켐프의 식사는 이곳의 바싹 마른 땅처럼 딱딱하고 질긴 소고기 스테이크이었다. 혹시 공룡 껍질을 조리한 건 아닐까할 정도여서 두 분과 바타 아우까지도 결국 중도에서 포기하고 남긴다. 나도 이가 흔들리는 듯 했지만 남김없이 다 먹었다. 몽골 할머니가 관절염으로 절뚝거리면서도 지하 주방에서 식당까지 오르내리는 모습이 안타까웠고, 몽골에서는 음식을 남기면 귀신이 먹는다는 속담이 있기 때문이다. 두 분이 끝까지 먹는 나를 놀려댔지만 아마 이 속담까지는 모르셨을 게다. 메롱!

한반도는 해와 달이 대개 산에서 뜨고 산으로 지지만 고비는 지평선에서 뜬 달이 새벽이 되니 땅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그 자리를 다시 해가 이어받아 운행하니 하늘과 땅이 완전체가 되는 모습을 처음 본다. 이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몽골에 대륙에 서볼 만하다.

오늘은 별이 빛나는 밤이 되려나? ‘ㅎ’님이 망원카메라를 들고 오래 서성이다가 아직 달이 밝아 게르로 철수한다. 나는 그 어디에서보다 확연하게 빛나는 북두칠성을 향하여 선정삼매에 든다.

테를지 풍광

이제 황량하고도 따뜻하며, 삭막하고도 윤택한 고비를 떠날 시간이다. 바타 아우가 몸이 불편한데도 명랑함을 잊지 않고 하루 종일 달려 저녁 무렵 ‘테를지’로 접어든다. 울란바타르에 거의 다 와서 오른쪽을 갈라드니 철로가 나오고, 바로 우리의 선조들이 거쳐 왔을 바이칼 호수를 거쳐 러시아로 향한다. 언젠가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단조롭던 고비의 색감에서 벗어나 초록의 향연이 벌어지면서 제법 빠른 강이 흐르고 신령스러운 바위들이 나타난다. 울란바타르를 가로 지르는 톨 강의 상류로 인왕산과 북한산을 여기저기에 옮겨 놓은 듯하다. 게르 캠프 사이사이 말, 낙타, 야크, 양, 소 들을 방목하고 있었다. 순한 것 같은 낙타도 화날 때는 머리를 밑으로 내리고 침을 뱉고 주인도 무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특이한 모습의 바위가 자리 잡은 골짜기마다 수십 채씩의 게르 캠프가 자리 잡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몽골의 ‘국립공원 테를지’는 울란바타르에 속해 있어 몽골인도 주말 휴식으로 태를지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우리는 ‘부자바위’를 중심으로 한 ‘바양하드’ (bayanhad) 게르 캠프에 짐을 풀었다. 몸집 좋은 중년의 여주인장이 유창한 한국어로 맞이한다. 내가 들은 몽골인 중 최고의 한국어 능력자로 우리나라 외국어대학교 출신이었다. 그녀가 자기가 먹던 흰 액체를 한 모금 건네준다. 7, 8월에나 먹을 수 있는 말 젖으로 우유보다 진하고 고소하다. 중앙 홀의 벽에는 건장한 몽골 남자들의 큰 액자사진이 걸려 있다. 모두 몽골 씨름 ‘부흐’의 챔피언들이라고 하니 그들의 씨름에 대한 사랑을 알만하다.

‘바양하드’ 캠프에서, 수채, 장영주 작.
‘바양하드’ 캠프에서, 수채, 장영주 작.

이 캠프는 몽골 생활문화 체험으로 특화되어 있어 게르 짓기, 우유와 찻잎을 섞은 수태차 만들기, 민속공연, 별자리 보기 등이 날마다 시연되고 있었다. 밤이 깊자 20대 초반의 예술학교 남녀 학생이 아르바이트로 출연하는 민속 공연이 펼쳐진다. 마두금 연주, 흐미 노래, 민속춤과 노래가 이어진다. 씩씩하고 아름다운 춤사위에 맞춰 부른 여자가수의 노래 내용을 물어 보았다.

“여자의 예쁜 얼굴, 예쁜 몸매,
예쁜 말과 예쁜 마음은
남자의 마음을 부드럽게 한다네.
세상을 부드럽게 한다네.”

맞는 말이고말고! 세상에 남성성만 있었다면 인류는 벌써 멸망하였을 것이다.
이어서 한국에서 온 ‘별자리연구소’ 강사들의 한국관광객들을 위한 여름철 별자리 스터디가 이어진다. 훌륭한 민간외교로 북두칠성과 견우 직녀성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몽골은 낮에는 너른 벌판과 사막을 만날 수 있어 주로 땅으로 시선이 가고 밤에는 우르르 쏟아져 내릴 듯 한 별들을 가슴 가득 담을 수 있는 하늘로 시선이 향한다. 아파트 4층 높이의 부자바위 언덕 위로 올라가니 스위스처럼 목가적인 들판이 펼쳐진다. 소와 말들이 자유롭게 풀을 뜯고 좁쌀처럼 작은 꽃들이 별처럼 가득한 풀밭위로 짙은 꽃향기가 올라와 주변을 떠돈다. 온 몸이 향이 피어오르는 향로가 된다.

저녁 무렵 ‘ㅂ’님이 우리를 맞이하러 왔다. 여기서부터 떠나는 날까지 3일간은 우리를 몸소 안내할 것이다. 그간 정들었던 바타 아우와는 이별이니 섭섭하지만 어쩌겠는가. 모든 것이 만나면 헤어지는 것인데. 그러나 왠지 또 만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