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의 합창

어제부터 오른쪽 차창 옆으로 산맥 하나가 함께 달린다. 바로 우리 조상들의 옛 터전일 수도 있는 ‘알타이(금산)산맥’의 끝자락이다. 정오가 되니 왼쪽 멀리 모래 구릉 같은 모습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한다. 점심때를 훨씬 지나 진짜 고비의 모래사막이 펼쳐지는 헝거린 엘스(Khongoryn Els) 게르 캠프에 도착한다. 멀리 뎀에(낙타)가 20~30마리씩 줄지어 어디론가 가고 있다. 오전 오후 두 번씩 또는 인원이 차면 수시로 모래 언덕까지 뎀에를 타고 오가는 관광객 무리이다. 우선 밥을, 아니 고기를 먹고 게르에서 잠시 쉰다는 것이 깜빡 잠이 들었다. 바타의 재촉에 차에 올라 20분 정도 걸리는 진짜 모래산을 향해 출발한다.

눈앞에 치솟은 높고 누런 모래언덕은 소리를 울리며 바람에 날려 오거나 눈사태처럼 몰려온 모래가 쌓인다고 ‘노래하는 모래언덕’이다. 모래가 합창하는 몽골의 명사산(鳴砂山)이다. 180km 정도의 길이에 넓이가 30km에 달하는 거대한 모래더미는 강한 편서풍으로 계속 이동하기에 ‘움직이는 모래 산’이라고도 부른다. 가장 높은 언덕은 ‘도트망항’ 이다. 오후 4시 경이지만 해가 늦게 지는 고비인지라 아직 한낮이다. 며칠간 차를 타고 달리기만 하다가 느릿느릿 걷는 뎀에를 보니 시간이 멈춘 태고의 민낯을 보는 듯하다. 동서남북, 하늘 끝까지 모래 땅, 아니 모래 바다이다.

사막에서 만난 레오(LEO)씨, 붓펜, 수채, 장영주 작.
사막에서 만난 레오(LEO)씨, 붓펜, 수채, 장영주 작.

갑자기 차를 세운 ‘ㄱ’님과 ‘ㅎ’님이 사진기를 둘러메고 달리기 시작한다. 마침 모래 산을 향하는 약 서른 마리의 뎀에 관광 행렬을 만난 것이다. 두 분은 카메라를 들고 마치 각개 전투하는 군인들처럼 내달리고, 엎드리고, 앉고, 서면서 연신 셔터를 누른다. 그 열정에 이끌려 나도 차에서 내려 현대판 카라반 행렬을 그린다. 검은 옷으로 전신을 감싼 부부가 인솔하고 템에의 고삐를 끄는 현지인들이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다. 인솔자는 열정이 넘치는 우리의 사진작가들에게 뎀에가 놀라면 사람이 떨어질 수 있다고 주의를 주는 듯하다. 물론 우리의 사진작가들은 못 알아듣는 건지, 모른 척 하는지 결국 여주인이 낙타에서 떨어졌다.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지만 바타 아우는 책임을 크게 뒤집어 쓸 뻔했다고 주의를 준다.

주로 이탈리아 관광객을 태운 카라반 행렬이 모래 산 바로 아래에서 뎀에를 내려 혹은 걸어 올라가고 혹은 기다리며 휴식을 취한다. 갑자기 뎀에 길라잡이 청년과 소녀가 모래밭을 내달린다. 앞서 달리던 소녀는 뒤 쫒아 온 남자에게 잡혀 모래밭에 내동댕이쳐진다. 청년은 쓰러진 소녀의 얼굴과 머리에 심할 정도로 모래를 껴 얹는데 마치 우리가 시냇물에서 물장구치며 놀듯이 모래장구를 친다. 난폭하다 싶을 정도이지만 소꿉장난 같은 사랑싸움이 분명하다. 남녀의 사랑은 언제, 어디서나, 언제까지나 존재할 것이다.

처음 보는 거대한 모래사막의 모습과 유유히 풀을 뜯고 자유롭게 쉬는 뎀에와 사람들에 취하여 스케치를 하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진다. 돌아보니 70세쯤 되는 이탈리아 남자 관광객이 뙤약볕 아래에서 10분 넘게 지켜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싱끗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지구 반대편에서 태어나 살다가 머나먼 몽골의 고비의 한 구석, 헝고르엘스에서 만나다니!
마치 기다렸던 것처럼!

인연이 고마워서 “Just moment!” 하고 1분 초상화를 그려 주었다. 비록 1분간의 작업이지만 나는 그걸 위해 평생을 바쳐 화업을 닦아 왔다. 무사의 단 한 번의 칼질이 그와 상대의 생명을 좌우하듯이 나의 단 한 번의 붓길로 나와 상대의 영혼의 꽃이 피어난다. 이번에 영혼을 꽃피울 상대는 이탈리안 ‘레오(LEO)’씨 이다.

“레오(LEO)씨, 빨리 그린다고 결코 싼 그림이 아니요. 10개월이 되어야 아기가 태어나고, 흙 속의 뿌리가 오랜 동안 뻗어야 꽃 필 수 있듯이, 보이는 모든 것은 보이지 않는 인고의 땀과 눈물에 의한 탄생인 것이라오. 레오 씨, 당신께 내 그림에 깃든 하늘의 영원한 축복을 드립니다.”

무언의 에너지로 그에게 내 마음을 전한다.
레오(LEO)씨가 주변의 동행에게 그림을 흔들며 자랑한다.
모래 알알이 모여 거대한 사막을 이루듯이 “우리는 한얼 속에 한울 안에 한알이다.” 틀림없다.

천신무예(天神武藝)

일찍 일어나 게르 밖에 앉아 어제의 스케치 작품들을 완성한다. 쌍봉낙타는 단봉낙타에 비해 그 숫자가 약 십분의 일 정도로 적고 몸무게는 450~600kg, 수명은 30~40년 정도이다. 뎀에(낙타)가 먹는지 안 먹는지를 보고 식물의 독성여부를 가릴 수 있다. 말보다는 느리지만 의외로 속도가 빨라 시속 65km까지 달리고 시속 40km로는 1시간을 달릴 수 있다. 힘이 강하여 400kg 짐을 나를 수 있다. 여행 중에는 언제나 현지 음식을 고집하는 ‘ㅎ’님이 “몽골에 와서 낙타고기도 못 먹어 본다.”고 서운해 한다. 쌍봉낙타는 보호종으로 지정하고 몽골 정부가 도축을 금하여 이제는 현지인도 어쩌다 뒤로 흘러나온 고기나 맛 볼 수 있다고 한다.

게르 캠프의 아침식단에 나온 ‘타락(駝酪)죽’을 두 그릇이나 먹었다. 우유와 찹쌀을 함께 끓인 타락죽은 예로부터 임금님의 보양식인 우유죽이다. 고려 말기 몽골에서 들어온 요리로 몽골어 ‘토라크(말린 우유)’에 따라 ‘타락’이라고 불렀다. 낙타 젖이 아닌 우유제품으로 원나라는 ‘제호’, 명나라는 ‘수락’이라고 했다. 타락죽은 어릴 적에 먹고 자란 음식으로 지금도 피곤하면 찾는 나만의 보양식이다. 6·25를 겪은 사람은 누구나 타락죽을 기억할 것이다. 유엔(UN)이 보내준 커다란 오크통에 담긴 분유를 가마솥에 쌀과 함께 끓여서 줄을 선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멀건 우유죽이나마 점심으로 한 끼 먹고 나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던 전시의 구황식품이었다.

몽골 고대인의 바위 그림. [사진=장영주]
몽골 고대인의 바위 그림. [사진=장영주]

해의 각도에 따라 사막은 황금빛 큰 파도가 되어 물결치듯 흘러가고 뒤로는 높고 푸른 산들이 웅장하게 티 없는 하늘에 닿아 있다. 우리의 사진작가들은 또 연신 샷을 터트린다. 한 곳을 향해 물결쳐나가는 모래언덕을 바라보니 갑자기 시흥이 일어난다.

‘하늘과 사람의 창조’

알알이 흩어진 모래, 언덕 되고 산이 된다.
산이 된 모래는 바람을 합창한다.
하늘이 내려앉은 생명의 신들이 사람에게 깃든다.
사람들은 자신을 닦아 생명의 거룩함에 이른다.
강렬하게 나를 닦기를 원한다.
그 닦음으로 많은 이들의 완성된 모습을 그리기를 원한다.
나의 그림을 보고 스스로 깨어나길 원한다.
자신의 무한한 가능성으로 깨어나길 원한다.
자신의 무한한 창조력으로 깨어나길 원한다.
사람에게 깃든 하늘의 축복.
하늘이 신이 된 몸과 마음을 갈고 닦아
거룩함을 창조한다.
천신무예(天神武藝)의 삶이다.

사막을 넘어 병풍처럼 펼쳐진 높고 푸른 산 속에는 알타이 큰 산양들이 살고 있다. 몇 해 전 까지만 해도 거액을 받고 외국인에게 산양 사냥을 허가해 주었다고 한다. 달팽이 같은 둥근 뿔은 어른의 한 아름이고 뿔의 무게만 35㎏이 넘으니 알타이 큰 산양은 그 멋진 뿔 때문에 비명횡사한다. 그러나 자연 수명을 다한 산양은 자신의 최후를 알기에 마지막 힘을 다해 한발 한발 힘겹게 정상을 향해 올라간다. 그리고 잠시 먼 곳을 바라보다가 절벽 아래로 몸을 던진다. 알타이 산맥의 주인 산양이 스스로 창조하는 거룩한 죽음으로 흠결 없는 ‘돌아감’이다. 이 또한 완전한 ‘천신무예’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