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얌의 사랑

식사는 고기가 마냥 가득하다. 이제부터 ‘ㄱ’님의 부인께서 정성스레 싸주신 비장의 고추장과 멸치의 성가가 높아지기 시작한다. 바타의 능숙하고 터프한 운전솜씨로 달리고 달린다. 오후 3시 경 몽골의 스위스라고 불리는 고르왕새항 국립공원 속의 ‘열린얌(Yolyn Am)’에 도착하였다. 날개가 3m에 달하는 큰 새 ‘열(Yol)’이 사는 일명 ‘독수리 요새’이다.

계곡 입구에는 약 서른 마리의 말과 너댓 마리의 낙타가 주인과 함께 관광객들을 기다리고 몽골 옷을 입은 남자가 이런저런 공예품을 판다. 고집스러운 인상과 자태가 공예품을 직접 만드는 작가인 듯하다. 일행 모두 승마를 하기로 하고 그 중 검고 조금 큰 말이 나에게 배정되었다. 길라잡이는 열댓 살 쯤 되는 소녀였는데 짙은 검은색 안경을 썼다. 돌아보니 일곱여덟 살 쯤 되는 아이들부터 십대 소년소녀들이 부모님 대신 관광객을 태우고 말을 몰아 왕복 4km 정도의 길을 하루에도 몇 번씩 다녀야 한다. 내 말은 처음에는 잘 가더니 어느새 뒤쳐지기 시작한다. ‘하필이면 가장 무거운 나에게 얻어 걸렸구나.’ 미안하여 목을 쓸어 주었다. 허리가 안 좋은 ‘ㄱ’님은 말에서 내려 끝까지 걸어서 간다.

몽골 기마무사, 수채. 장영주 작.
몽골 기마무사, 수채. 장영주 작.

 

말을 타고 2~3시간 들어가면 여름에도 빙하를 볼 수 있다는 시원하고 깊고 신비한 계곡이다. 양쪽으로는 넘어 올 듯이 깎아지른 철광석과 같이 검게 번쩍이는 절벽이 이어지는 내륙의 절경이다. 또 전략상 여기저기 높고 낮은 산 속으로 매복하기에 아주 좋은 지형이다. 작은 시냇물을 따라 절벽 아래로 좁고 길게 이어진 풀밭으로는 다투듯 피어 난 키 낮은 꽃들의 진한 향기가 떠돈다.

갑자기 십대 후반의 소년 한 명이 말굽소리 요란하게 시냇물을 건너뛰고 절벽 쪽으로 오르고 내리면서 말 타기 묘기를 부린다. 고개를 숙인 채 말없이 내 말을 이끌던 소녀가 갑자기 와-와-! 찬탄과 응원을 보낸다. 시간 여행처럼 젊은 몽골의 연인 모습이 잠시 스쳐간다.

‘무지개 소녀, 설렁거’

(1218년. 올랄즈간이 열릴 때, 열린얌 계곡에서)

타븐살라가 무더기로 피어 있는 풀밭에서
바트남 오빠가 나의 손을 잡았다.
그 깊은 눈길을 받으며 나도 오빠의 손을 꼭 잡았다.
내일 달이 땅으로 숨으면 바트남 오빠는 말을 몰고 대 칸의 부대로 갈 것이다.
초원의 전사들은 카라코룸에 모여 머나먼 호라즘으로 원정을 떠난다고 한다.
오늘 아침 어머니가 여름 내내 말린 ‘보르츠’를 몰래 꺼내
오빠의 말안장 밑에 숨겨 두었다. 마치 내 마음처럼.

바트남 오빠의 눈에 비친 별빛이 다가 온다. 나는 눈을 감았다.
“설렁거야, 잘 다녀오마.
우리 집 염소와 말이 살이 마르지는 않는지,
우리 어머니가 자꾸 양을 잃어버리지는 않는지,
설렁거야, 네가 가끔 찾아가 돌봐다오.”

바트남 오빠의 목소리가 들풀의 향기처럼 귓전에 맴돈다.
오빠의 입김이 뜨거운 모래구름처럼 다가온다.
나는 그의 단단한 허리를 꼭 껴안고 풀밭 위로 쓰러졌다.
풀꽃들의 향기가 풀썩 무지개처럼 피어오른다.

                 *올랄즈간 (불루베리) *타븐살라 (질경이) *보르츠 (말린 육포)

돌아오는 길에서도 자꾸 뒤쳐지는 나를 바타가 능숙하게 말을 몰고 마중 나온다.

‘내가 낮 꿈을 꾸었나?’

그림, 장영주 작, 몽골 기마무사, 수채

 드디어 사막으로

울란바타르에서 차로 3일을 꼬박 달리자 겨우 고비의 입구에 이르렀다. 몽골은 평균 고도가 1,600m에 이르는 고지대로 남서쪽 지역은 풀도 크게 자라지 않는 사막지대이다. 몽골어 ‘고비(Gobi)’는 '풀이 잘 자라지 않는 거친 땅’으로 모래땅이라기보다는 주로 암석사막이라고 할 수 있다. 넓은데다가 사람이 없기에 30km는 담 너머 이웃집이요, 100㎞ 정도는 마실 가는 것이요 200㎞ 옆 동네이다. 남북 500∼1,000㎞ 동서 길이가 1600㎞에 달하는 고비사막(Gobi Des)은 모래는 20%밖에 안 되는 그저 마냥 크고 황량한 땅이었으나 이제는 지하자원의 보고로 성가를 다시 인정받고 있다.

고비는 ‘옴므노 고비’(남쪽 고비), ‘돈드 고비’(중앙 고비), ‘더르느 고비’(북 고비) 세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하필이면 바타의 고향인 더르느 고비(북 고비)는 이번 여행일정에서 제외되었다고 아쉬워한다. 오전 내내 달리고 달려 제법 큰 도시인 ‘달랑자드가드’에 이르러 점심을 예약한 ‘고비샌드 호텔(GOBI SAND HOTEL)’에 도착한다. 왠지 분위기가 어수선하더니만, 오늘 하루 종일 도시 전체가 정전이라 식당은 7층이니 점심을 먹으려면 걸어 올라가란다. 가끔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서 모두 태평한 얼굴이다. 주유소도 식당도, 호텔도 모두 스톱이다.

오츠의 템에, 수채. 장영주 작.
오츠의 템에, 수채. 장영주 작.

바타는 시간이 없는데 잘 됐다며 멀고 먼 시골로 냅다 달린다. 고비는 하루 종일 달려도 게르 한두 개를 볼 수 있을 뿐이다. 한때 우리의 노래 ‘소양강 처녀’처럼 ‘고비의 아줌마’라는 노래가 유행했다고 한다. 아이들은 도시에서 학교 다니고 남편은 가축을 끌고 멀리 유목을 나가니 주인아줌마 혼자 게르에 남아 하루 종일 일만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넓은 고비 하얀 게르에
고비 아줌마가 살고 있네.

멀, 허느, 얌아, 우헬, 살락, 템에를
엄마처럼 돌보는 강하고 씩씩한 고비 아줌마.

지나가는 나그네도 엄마처럼 먹여주고 재워주는
친절하고 고마운 고비 아줌마.

언제나 고마워요. 언제나 사랑해요.
설렁거처럼 아름다운 고비 아줌마”

*멀(말), 허느(양), 얌아(염소), 우헬(소), 살락(야크), 템에(낙타), 설렁거(무지개)

바타는 대충 제목만 말해 주었지만 가사는 내가 완성하였다. 내 맘이지 뭐.

다시 마냥 달리다가 마침 스무 마리 가량 낙타와 말에게 물을 먹이는 ‘오츠’(목동)를 만났다. 초코릿 몇 개를 주었더니 무표정하던 얼굴이 순간 가면을 벗은 듯 웃음을 짓는다. 이제는 고비에서도 자연적인 ‘호딱’(샘)보다도 양수기로 물을 퍼 올리고 오지의 게르에도 거의 태양열 발전기, 오토바이, 트럭이 있다. 낙타는 한 번에 40~50리터의 물을 마시고 한 달을 물 없이 버틸 수 있다. “왜 뛰어 가냐? 말 타고 가지”라는 몽골의 속담이 있는데 타본 느낌은 말은 흔들리고 낙타는 부드럽다. 스케치를 몇 점하고, 사진도 찍고, 서로 손을 흔들고 또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