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동북공정 넘어 한국사 광복을 목표로 설립된 동북아고대역사학회(회장 정경희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지난 7월 31일부터 8월 7일까지 7박8일간 중국 요서지역의 선도제천유적을 탐방하였다.

이번 답사는 지난 6월 29일 국내 최초로 개최된 백두산의 문화역사적 귀속성을 밝히는 학술대회와 2018년 8월 7박8일간 진행된 백두산 서편 통화지역 제천유적군 답사의 연속선상에서 진행하여 백두산을 중심으로 펼쳐졌던 한민족의 제천문화가 요서지역으로 전파되어간 루트를 따라 답사코스를 구성하였다.

요서지역 남단에 위치하여 한민족 역사에 빈번히 등장하는 대릉하(大凌河) 일대를 시작으로 요서지역 북단의 단군조선시기 북방 부여족과 관련이 깊은 시라무렌강(西拉木淪河) 일대를 거쳐 요동과 요서를 잇는 통료(通遼) 지역을 삼각축으로 답사일정을 구성하였다.

우하량 십자형 여신묘 발굴지. [사진=동북아고대역사학회]
우하량 십자형 여신묘 발굴지. [사진=동북아고대역사학회]

 

답사는 이 일대에서 펼쳐졌던 배달국과 단군조선시기의 선도문화를 최근 새롭게 발굴된 수많은 제천유적과 유물을 현장에서 직접 체험하는 감동이 이어졌다.

요서지역 고고학 발굴 결과 홍산 문화 시기로 명명된 기원전 4,000년에서 기원전 3,000년 시기는 동북아 역사를 넘어 인류사에서도 전기적인 의미를 갖는 시기이다. 홍산문화는 제천의 신격이 되는 여신, 3층으로 이루어진 거대 적석 제천단, 빼어난 옥기유물을 특징으로 하는 평화와 번영의 동석병용기 문화로 평가되는데, 대릉하 일대를 따라 유적이 집중 분포되어 있다. 이번 답사에서는 홍산문화시기의 대표 제천유적인 우하량(牛河梁), 호두구(胡頭溝), 동산취(東山嘴) 유적을 모두 둘러보았다.

우하량 유적공원 여신 조형물.  [사진=동북아고대역사학회]
우하량 유적공원 여신 조형물. [사진=동북아고대역사학회]

 

그 중 우하량 유적지는 놀라울 정도로 잘 정비되어 있었다. 유적공원 입구에는 초대형의 여신상 조형물과 향로를 설치하여 관람객의 예배를 받고 있었다. 주요 관람 포인트는 올해 6월 개관한 우하량 유물전시관과 소병기기념관, 여신묘 유적지, 돔 형태의 보호시설을 갖춘 대형 적석제단과 적석총 유적 등으로 대부분 말끔히 정비하였다. 유적공원 내에는 전동차를 운행하여 편리하게 관람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전체 우하량 유적공원 정비가 완료되면 전시유물과 시설의 규모가 서안의 진시황유적을 능가하여 중국 제일의 역사문화관광지가 될 날이 멀지 않았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우하량뿐만 아니라 중국 요서지역은 유적지와 박물관 곳곳에 여신상 조형물이 넘쳐나며 그 앞에서 향을 피우고 절을 하는 중국인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중국정부의 대대적인 지원과 선전이 가져온 결과이다. 한민족의 찬란한 상고역사를 중국이 자기 입맛대로 복원하고 평가하는 데 만주지역 제천유적에 관해 연구조차 하지 않는 한국학계가 각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다급함이 느껴졌다.

우하량 적석제단. 중국은 우하량 적석제단을 말끔하게 정비하였다. [사진=동북아고대역사학회]
우하량 적석제단. 중국은 우하량 적석제단을 말끔하게 정비하였다. [사진=동북아고대역사학회]

 

답사단은 대릉하의 발원지인 능원을 떠나 시라무렌강이 흐르는 임서(林西)지역으로 향했다. 이곳에서는 기원전 6,000년경부터 문명이 발전하여 청동기시대에는 북방 부여족의 특성을 강하게 보이는 문화권을 형성하였다. 답사단은 이 일대의 제천유적인 기원전 6,000년경의 백음장한(白音長汗) 제천유적과 기원전 10세기경의 용두산(龍頭山) 제천유적, 청동광산 및 제련유적인 대정고동광(大井古銅鑛) 유적 등을 답사하였다.

다음으로 답사단은 오한기(敖漢旗) 일대의 청동기시대 성곽유적인 성자산(城子山)유적과 대전자(大甸子) 유적으로 발길을 돌렸다. 청동기시대에 접어들어 요서지역에서는 거대 제천유적인 적석단·적석총이 사라지고 방어용 성곽이 등장하였다.

성자산성 제천유적은 방어용 성안에 제단을 만든 특징이 있는데, 이는 배달국시기 사방이 탁 트인 야트막한 산 정상에 제천 시설을 조성한 것과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제천단이 돌을 쌓아 산 정상에 십자형 구조로 조성된 점은 배달국시기 제천유적의 특징을 계승하고 있었다. 성자산성 제천단에 올라서 넓게 펼쳐진 만주벌판을 한 눈에 조망하며 단군조선시기 이곳에 모여 하늘에 제천을 올리고 사방으로 나아가 홍익을 펼쳤던 선조들의 기상을 온 몸으로 느끼는 감동적인 순간이었으며 답사일정의 최고봉이었다.

성자산성 정상. 오한기(敖漢旗) 일대의 청동기시대 성곽유적인 성자산(城子山)유적은 방어용 성 안에 삽자형 구조로 돌을 쌓아 제천단을 만들었다. [사진=동북아고대역사학회]
성자산성 정상. 오한기(敖漢旗) 일대의 청동기시대 성곽유적인 성자산(城子山)유적은 방어용 성 안에 삽자형 구조로 돌을 쌓아 제천단을 만들었다. [사진=동북아고대역사학회]

성자산성의 감동을 뒤로 하고 답사단은 통료(通遼)지역으로 향했다. 최근 대대적으로 발굴·전시된 합민(哈民) 홍산문화유적을 보기 위해서였다. 통료로 가는 길은 끊임없는 평원이었다. 재중동포인 가이드는 이 지역에 고속도로가 잘 닦여져 있는 것을 보고 놀랍다고 했다. 그 날은 예상에 없던 중화제일촌이라 불리는 기원전 6,200년 전의 흥륭와(興隆洼) 취락유적지와 중국 최초의 조상신(中華祖神)으로 평가받는 기원전 3,300년 전에 제작된 도소남신상이 출토된 흥륭구(興隆溝) 유적지 두 군데를 추가로 들렸는데도 무사히 통료에 도착해 저녁식사를 하고 호텔에서 잠을 잘 수 있었다.

답사단은 다음날 아침 일찍 통료시내에서 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찰로특기(扎鲁特旗) 상고박물관을 찾았다. 그곳에서 신석기 시대 후기인 기원전 3,000년에서 기원전 2,500년경의 여신상이 발굴된 취락 및 묘장유적인 남보(南寶)유적지 발굴 사진을 접하고 바로 그곳으로 향했다.

남보유적지는 유적지 바로 옆에 있는 큰 호수이름에서 따온 명칭으로 유물 전시관과 취락유적을 복원한 실외 전시구역으로 이루어졌는데 아쉽게도 실내전시관은 2020년 5월 개관예정으로 관람할 수 없었다. 이곳은 내몽고 동부지역 최대 규모의 신석기 유적으로 내몽고 동부지역과 요동지역이 신석기 시대부터 긴밀하게 교류하였던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은 유적지이다. 다행히 박물관장이 실외 전시구역을 소개해 주고 유물도록도 건네주어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답사단은 합민 신석기 유적지를 마지막으로 통료를 떠나 심양국제공항으로 향했다. 우리 답사단을 열과 성을 대해 유적지를 안내해 준 가이드는 재중동포로 중국에서 전혀 배우지 못한 한민족의 역사유적을 함께 답사할 수 있어 매우 감사하다고 말했다.

특히 배달국 홍산문화시기의 평화롭고 풍요로운 유적을 접한 후 답사단에게 이렇게 말했다. “남·북한의 평화를 가장 바라는 사람들은 남한이나 북한 사람이 아니라 아마도 미국, 일본, 중국 등에 거주하는 해외 동포일 것입니다. 조국이 힘이 있어야 중국에서 괄시받지 않고 살 수 있죠.”

배달국과 단군조선시기는 우리 민족의 홍익정신과 문화의 힘이 전 세계로 크게 펼쳐나갔던 영광의 시대였으며 신화가 아닌 역사적으로 실재하였음을 우리가 답사한 요서지역 선도제천유적이 분명히 말해준다. 우리 민족이 다시 한 번 떨쳐 일어나 세계 속에 홍익정신과 홍익문화를 펼쳐 나갈 것을 다짐하며 답사를 마쳤다.

동북아고대역사학회는 한민족 상고사의 바른 정립과 민족적 정체성을 살릴 수 있는 선도문화의 회복을 위해 앞으로도 다양한 유적지 현장답사와 학술연구활동을 펼쳐 나갈 계획이다.(문의 동북아고대역사학회 www.dongbuk-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