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아프지 않았다면 진정한 내 자신을 찾지 못했을 겁니다. 그리고 부유했다면 아플 때 좋은 병원에서 의사의 치료에 의지했겠죠. 제 건강을 스스로 돌보는 책임자가 되어 남에게 전하는 법도 몰랐을 테죠.”

오랜 육체적 고통은 사람을 정신적으로 나약하게도 만들고 무너뜨리기도 한다. 울산에서 만난 은발의 노신사 노수관(63) 씨는 35세와 54세 두 번에 걸쳐 질병으로 큰 시련을 겪었다. 그는 이 인생의 시련들을 새 삶을 찾는 계기로 만들었고 감사함으로 기억한다.

노수관 울산국학원 부원장은 뇌교육명상으로 인생의 시련 속에서 새 삶을 찾는 계기를 만났고 청년시절에도 없던 꿈이 생겼다고 한다. [사진=김경아 기자]
노수관 울산국학원 부원장은 뇌교육명상으로 인생의 시련 속에서 새 삶을 찾는 계기를 만났고 청년시절에도 없던 꿈이 생겼다고 한다. [사진=김경아 기자]

아울러 “청년 시절에 누군가 ‘앞으로 꿈이 뭐야? 목표는 무엇이냐?’고 물으면 막연해서 답을 하지 못했어요. 이제는 제 꿈을 분명하게 말할 수 있죠.”라고 했다. 온화한 미소와 당당함이 인상적인 그는 “모두 뇌교육 명상덕분”이라고 그 비결을 밝혔다.

노수관 씨는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건축설계사무소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 지금까지 40년을 일했다. 그가 미래를 그리며 건축사시험을 준비하던 35살 때 딸은 막 돌을 지났다. 당시 건축현장과 관련해서 끊임없이 벌어지는 민원과 분쟁을 해결해야 했기에 몹시 지쳐있었다.

어느 날 종기가 났는데 한의원에서 침을 맞으면 다른 쪽에 다시 나는 일이 반복되었다. 7년 동안 우리나라 각종 전문병원을 다니며 검사만 수십 번을 해도 병명은 나오지 않았다. 한의원에서는 ‘주마담走馬痰’이라고 종기가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는 현상이라고 했지만 치료법은 딱히 없었다. 한의원과 대체의학, 민간요법을 총동원했지만 점점 더 심해졌다. 아침에 일어나면 피곤함으로 눈을 뜰 수가 없어 손으로 눈꺼풀을 올려야 했고, 목 아래는 몸 구석 구석을 바늘뭉치로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이 하루 종일 그를 괴롭혔다.

“항상 눈이 붉어 주변에서는 ‘파충류 눈, 귀신 눈’ 같다고 했죠. 배변도 잘 되지 않아 한 달에 한번 갈 정도였어요. 그래도 살긴 살더군요. 그런데 3년 넘게 다니던 한의원에서 ‘그 병을 고칠 약이 세상에 없다. 결국 뼈 속까지 번져서 죽을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오랜 고통으로 우울증이 생긴 줄 몰랐다. 누가 ‘아직도 아프냐?’고 묻기만 해도 화가 치밀었다. 죽는 게 낫겠다고 낭떠러지까지 차를 몰고 간 것만 세 번이었다. “길에 누운 거지도 건강한 게 부럽더군요. 죽음을 인정해도 두렵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종기 안에 도대체 뭐가 있는지 수술이라도 해보자 했는데 그 수술부위 상처가 낫질 않고 이후 4년 간 피가 배어나와 늘 검은 바지만 입고 다녀야 했죠.”

시련은 겹쳤다.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로 IMF사태를 맞았을 때는 보증을 서준 지인들이 부도가 나면서 은행 빚을 대신 갚느라 재정상태도 바닥이었다. 학교 선배인 회사 대표가 “나와서 앉아만 있으면 된다.”며 끝까지 지원한 덕에 겨우 버텨나갈 수 있었다.

그때 여동생이 단월드 뇌교육명상을 권했다. “뇌교육명상을 시작하고 긴장이 풀려 이완이 되고 순환이 되었죠. 보름쯤 지나니 통증이 점차 줄어들고 피로가 조금씩 가시는 걸 느꼈어요. 무겁던 눈꺼풀도 절로 떠졌죠. 배변활동도 빠르게 정상화되기 시작했고요. 너무나 좋아서 매일 수련을 나갔습니다.”

63세의 노수관 씨는
63세지만 청년같은 활력을 지닌 노수관 씨는 "스스로 건강을 책임지고 꿈을 이루며 건강하게 나이를 먹겠다는 희망을 찾았다."며 사람들이 삶의 목표를 안내하고 싶다고 한다. [사진=김경아 기자]

그는 수련 3개월 만에 간 심성교육에서 그동안 존재조차 알지 못하던 자신과 만날 수 있었다. “교육 중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많은 분들이 울었는데 잘 공감하지 못했다가 점차 가슴이 열렸죠. 마지막 프로그램에서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묻는데 저만 찾지 못한 것 같아 답답하고 간절했습니다. 그때 함께 참여한 130여 분이 둥글게 둘러싸고 제게 진심을 담아 무언의 응원을 보냈습니다. 갑자기 ‘나를 용서하고 세상 모든 사람을 용서하라’는 메시지가 떠오르자 폭포수 같은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제가 남을 힘들게 했던 것들, 건강하지 못한 자신을 미워한 것도 보이고, IMF 때 빚을 지게 한 지인들에 대한 원망과 화를 눌러놓은 것도 보이더군요. 저도 모르게 움켜잡고 있던 걸 놓고 용서 하고나니 정말 후련했습니다.”

심성교육 후 국학강사 교육을 받은 그는 원장님의 권유로 인근 초등학교 운동장에 나가 수련지도를 시작했다. “첫날 60여 명이 있었는데 목소리가 작아 잘 안 들렸는지 다음날은 20명만 오시더군요. 용기를 갖고 더 큰 목소리로 지도하니 점차 회원이 늘어났죠. 수련 나온 분들에게 힘을 주고 싶었죠.”

새벽에 일어나 공원에서 지도하고 아침식사 후 출근하면 점심시간에 10여 명씩 모아 매일 ‘활공’을 해주었다. 매주 5일씩 사람들의 뭉친 근육을 풀어주고 두드려주며 건강을 돌보았다. 변화가 생겼다. “주변에서 제 얼굴이 바뀌었다고 하더군요. 거울을 보니 양파껍질이 벗겨지듯 밝아졌어요. 그 후 6개월 만에 헐어있던 종기상처에 새살이 돋기 시작해 3년 만에 다 나았습니다. 점점 청년의 몸이 되고 활력이 샘솟았죠.”

당시 한창 IMF 외환위기 속에 국민들이 절망에 빠져있을 때, 국학운동시민연합 등 시민단체를 주축으로 민족정신광복 국조단군상 세우기 운동이 펼쳐졌다. 단월드 회원들의 참여가 뜨거웠고 울산에서도 건립 모금운동이 일어났다.

“저도 경험했지만 돈으로 희망이 생기지 않습니다. 가슴이 자존감과 자긍심으로 살아나고 중심이 바로서야 희망이 생기죠. 건립 취지에 100% 공감했죠.” 그는 주위에 국조단군상을 세울 작은 공간을 내줄 공공기관, 학교, 개인 공원 등을 찾아다녔다. 거절당하는 일이 많아 실망감이 들 때쯤 한 테마파크 공원에서 세우자고 연락이 왔다. 울산에 세워진 국조단군상 6기 중 4기가 세워질 때, 노수관 씨가 직접 땅을 파고 세웠다. “제게 그런 능력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더군요.”

그는 12년 간 아침에는 청강사공원, 학성공원, 문화예술회관공원에서, 저녁에는 주 2회씩 삼산동사무소, 현대자동차 직장 동호회 등에서 수련지도를 했다. “직장동호회원 40명 중 절반이 심성교육에 참가했습니다. 제가 경험한 기쁨을 함께 나누고서 감사를 많이 받았습니다. 동창회나 모임 나가는 것보다 강사생활을 하고 활공을 해주고 국학활동을 하는 게 훨씬 재미있었죠.”

직장생활과 국학기공강사 활동 속에 시간이 지나던 2010년, 지리산 등산 후 옻나무진액을 구입해 마셨는데 수련지도 중 다리를 들지 못하고 힘없이 툭 떨어졌다. 각기병이라고 했다. “제 체질에 옻은 상극이라고 하더군요. 다리를 움직일 수 없어 약을 먹고 목발을 짚고 다닐 만큼 심각해졌죠. 늘 남들 앞에서 멋진 모습을 보이고 건강을 강조하다가 제 몸을 쓸 수 없으니 위축되더군요. 건강에 자만했고 바쁘다고 수련지도만 했지 제 자신 에너지를 채우는 뇌교육명상을 게을리 한 탓이지요.”

그는 뇌교육명상과 맥락을 같이하는 전통무예인 단무도를 수련하며 6개월 만에 계단 난간을 잡고 올라갈 수 있었다. 뇌교육명상으로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진 그는 마스터힐러 교육을 선택했다.

지난 15일 울산국학원이 주최한 '제74주년 광복절 기념 행사'에 참가한 국회의원 6명은 울산국학원 신현도 국학원장(오른쪽)과 함께 노수관 부원장(왼쪽)에게 국학유공자 표창장을 수여했다. [사진=본인 제공]
지난 15일 울산국학원이 주최한 '제74주년 광복절 기념 행사'에 참가한 국회의원 6명은 울산국학원 신현도 국학원장(오른쪽)과 함께 노수관 부원장(왼쪽)에게 국학유공자 표창장을 수여했다. [사진=본인 제공]

“처음에는 오랜 수행을 했다고 자신하는데 다시 교육을 받는 데 쓸데없는 자존심이 걸리더군요. 그러나 교육 중에 ‘무無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10년 넘게 강사로 남들 앞에 서는 겉모습에 만족하고 활동이 습관처럼 되어버린 나를 발견했죠. 새롭게 시작하겠다고 마음먹으니 몸은 더 이상 장애가 아니더군요.”

교육 중 짝을 이뤄 상대방을 이해하고 힐링하는 시간이 있었다. “부정적인 생각이 많은 분과 짝이 되었는데, 그 분에게 집중하며 힐링을 하는 동안 ‘내가 누구를 돕는다.’는 마음조차 사라지더군요. 그런데 짝이 갑자기 눈물을 흘리면서 표정이 밝아지더니 감사하다고 했고 서로 통하는 게 느껴졌습니다.”

그는 “뇌교육명상을 하면서 계속 껍질을 벗고 성장할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합니다. 돌이켜보면 ‘선택하면 이루어진다.’는 뇌교육 원리를 제 인생을 통해 절실하게 체험했죠. 불가능할 것 같은 상황도 분명하게 선택하면 어느새 해결되고 지금까지 왔으니까요.”라고 했다.

차츰 몸을 회복해 그는 작년에 뇌교육지도자 과정을 밟고 지금은 울산센터에서 지도사범으로 활동한다. 노수관 씨는 지구시민운동과 더불어 자신을 감동시킨 책을 전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이승헌 글로벌사이버대학교 총장께서 저술한 ‘나는 120살까지 살기로 했다’는 책을 몇 번씩 거듭 읽었죠. 죽음은 두려운 게 아니라 ‘완성을 향해 나가는 여정’이라는 걸 새롭게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누구나 100세 시대, 120세 시대를 말하지만, 몸은 80세를 넘으면 쓸 수 있을지 두려워합니다. 두려움에서 벗어나 스스로 건강을 책임지고 꿈을 이루며 건강하게 나이를 먹겠다는 희망을 찾았죠. 제가 기쁘니 이 책을 권유받은 분들도 너무나 좋아하고 지구시민활동에 기꺼이 후원하고 동참하더군요. 저도 노년으로 가는데 같은 어르신들을 위한 활동을 하며 120세까지 건강하게 삶의 목표를 안내하고 싶습니다.”

노수관 씨는 자신의 인생책 '나는 120살까지 살기로 했다'를 통해 죽음을 '완성을 향해 나가는 여정'으로 정리하고 수행을 통해 완성의 길을 가겠다고 했다. [사진=김경아 기자]
노수관 씨는 자신의 인생책 '나는 120살까지 살기로 했다'를 통해 죽음을 '완성을 향해 나가는 여정'으로 정리하고 수행을 통해 완성의 길을 가겠다고 했다. [사진=김경아 기자]

요즘은 스스로 힐링포인트를 찾고 자극하는 BHP명상 봉사활동을 한다. “이제는 저만 나타나면 아픈 곳을 맡기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상담을 요청합니다. 고등학교 때 어떤 일이든 남을 도울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해본 적이 있어요. 제가 실제 그 꿈을 이루고 살고 있다는 게 행복합니다.”

그는 현재 울산국학원 부원장과 울산국학기공협회 고문을 맡고 있다. “어르신을 비롯해 울산 시민에게 건강과 함께 우리정신을 깨우고자 합니다. 몸과 마음, 정신은 하나이니까요.” 활짝 웃으며 자신의 신념을 이야기하는 노수관 씨의 모습이 당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