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식을 일깨운 동창학교터에서 역사교육의 사명을 느끼다
민족의식을 일깨운 동창학교터에서 역사교육의 사명을 느끼다
  • 송시내 (사)우리역사바로알기 교육국장
  • k-spirit@naver.com
  • 승인 2019.08.02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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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2019년 중국 항일독립운동 유적지 답사1 환인현 동창학교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국학과에서 7월 24일~30일 6박7일로 만주지역 항일운동지 역사탐방을 하였다. 심양으로 출국하여 목단강까지 항일독립운동 역사현장을 중심으로 둘러보고 고구려의 유적지인 집안과 민족의 영산 백두산을 방문하는 일정이다. 뇌교육대학원 조남호 교수를 중심으로 재학생과 졸업생, (사)우리역사바로알기 강사 등 총 24명이 여정에 함께했다.

환인현 오녀산성. 오녀산성은 이곳 환인에서 가장 험준한 천혜의 요새로 방어시설의 역할을 했다.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
환인현 오녀산성. 오녀산성은 이곳 환인에서 가장 험준한 천혜의 요새로 방어시설의 역할을 했다.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

심양 공항 도착 후 우리는 버스로 3시간을 달려 환인에 도착했다. 환인현은 중국 동북3성 중 하나인 랴오닝성에 있으며 우리 민족의 역사가 이어져 내려온 곳이다. 주몽은 부여에서 내려와 이곳 환인현에 첫 도읍으로 졸본성을 삼아 고구려를 건국했다. 오녀산성은 이곳 환인에서 가장 험준한 천혜의 요새로 방어시설의 역할을 했다. 멀리 보이는 오녀산성은 그 깎아지른 듯한 모습이 장관을 이루며 고구려의 옛 모습을 떠올리게 해 가슴이 뛰었다.

오녀산성 초입. 멀리 보이는 오녀산성은 그 깎아지른 듯한 모습이 장관을 이루며 고구려의 옛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
오녀산성 초입. 멀리 보이는 오녀산성은 그 깎아지른 듯한 모습이 장관을 이루며 고구려의 옛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

환인현은 고구려의 출발점이면서도 또한 국외 항일독립운동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환인현은 서간도의 이주동포 최대 집결지로 많은 독립운동가가 이곳으로 건너와 독립운동을 모색하였다. 독립운동사에서 중심을 이루는 대종교의 시교당과 동창학교가 있었고, 이회영 일가가 독립운동기지의 기초를 닦았던 곳이다.

우리는 먼저 1911년 7월 일본인 야마네 촉탁이 만주와 압록강 연안을 시찰한 보고서에 기록되어 있는 동창학교를 찾아가 보기로 했다. 야마네 촉탁 보고서에는 “한민족의 배일감정이 대단히 높으며 횡도천과 같은 곳에는 한국인의 배일학교가 있어 일력 대신 단군력을 사용한다”고 기록하였다.

동포자녀에게 민족의식을 심었던 동창학교가 있던 자리에는 가구점 건물이 크게 들어섰다.  맨 윗층에는  ‘조선민족문화활동중심’이 있다.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
동포자녀에게 민족의식을 심었던 동창학교가 있던 자리에는 가구점 건물이 크게 들어섰다. 맨 윗층에는 ‘조선민족문화활동중심’이 있다.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

이렇듯 일제가 예의주시했던 환인현 횡도천의 동창학교는 대종교인 윤세복이 형 윤세용과 함께 민족의식 고취를 위해 1911년에 설립했다. 동창학교의 교장은 이원식, 교사에는 박은식, 이극로, 신채호 등 쟁쟁한 인물이었으며, 재학생은 망명지사의 자제들로 구성되었다. 교과는 ‘단군’을 민족사의 정통으로 삼는 것을 원칙으로 역사, 국어, 한문, 지리 등을 가르쳤다. 역사와 국어 외에 특별히 체조가 강조되었는데, 이는 민족의식 고취와 더불어 대일군사훈련을 위함이었다. 동창학교 설립취지는 ‘한민족의 선조가 백두산록에서 나왔고 중화민족과 대화민족은 그 가지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이 노력해 국권을 회복시켜 부여민족, 부여국의 독립과 발전을 도모하자’는 것이다. 동창학교의 주요 임무 중 하나는 민족사서 편찬이었는데, 윤세복의 교열을 거쳐 단기간에 대륙사관에 입각한 많은 저술이 완성되었다. 그런데 중국 정부는 1915년 5월  '획일간민교육변법'을 시행했다. 이에 따라 한인학교도 중국어 사용, 중국역사 교육을 해야 했다. 그러나 동창학교는 이를 거부했다. 동창학교에는 교사 축출령과 학교 폐지령이 내려져 끝내 강제 폐교되고 말았다.

환인현 시내 중심부에 동창학교가 있었던 자리에는 지금은 가구점 건물이 크게 들어서있었다. 맨 윗층으로 올라가보니 우연인지 ‘조선민족문화활동중심’이라는 한글간판이 붙어있고 장구 등을 배우는 문화센터가 자리잡고 있었다. 문이 잠겨있어 들어가 볼 수는 없었지만 ‘열렬히 환영합니다’라는 한글 문구가 괜히 반가웠다. 일제의 탄압을 피해 낯선 땅에서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학교를 설립한 동창학교를 기리는 표지석이라도 하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만주지역 항일독립투쟁지 탐방단.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국학과에서 7월 24일~30일 6박7일로 만주지역 항일운동지 역사탐방을 하였다.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
만주지역 항일독립투쟁지 탐방단.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국학과에서 7월 24일~30일 6박7일로 만주지역 항일운동지 역사탐방을 하였다.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

 시내를 빠져나와 깊은 산길을 버스가 요동치며 달렸다. 독립운동가들이 서간도로 이주할 때 환인현에 와서 자리 잡았다고 하는 마을인 횡도천에 가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횡도천은 인공호수인 환룡호를 만들면서 수몰되어 지금은 없어지고 말았다.

만주지역 항일독립투쟁지 역사탐방여정.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국학과에서 7월 24일~30일 6박7일로 만주지역 항일운동지 역사탐방을 하였다.[자료=우리역사바로알기]
만주지역 항일독립투쟁지 역사탐방여정.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국학과에서 7월 24일~30일 6박7일로 만주지역 항일운동지 역사탐방을 하였다.[자료=우리역사바로알기]

 

안타까웠지만, 오녀산성 아래 골짜기를 따라 이어진 논과 밭을 보며 횡도천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이 낯선 곳에 망명지를 알아보러 온 이회영, 이상룡 등의 눈길이 떠올라 가슴이 아렸다. 대궐 같은 기와집을 버리고 일제의 눈이 닿지 않는 첩첩산중으로 들어와 새로운 독립운동 기지를 마련하고자 했던 그들. 이 막막한 땅에서도 신념과 용기를 잃지 않고 학교를 설립하여 역사와 국어를 가르쳐 민족의식을 지키고 체육을 가르쳐 독립전쟁에 대비한 그들의 뜨거운 심장을 느끼며 우리도 역사를 알고 알리는 일에 더욱 사명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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