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 성산리산성, 한성백제의 최전방 전초기지였다
당진 성산리산성, 한성백제의 최전방 전초기지였다
  • 강나리 기자
  • heonjukk@naver.com
  • 승인 2019.08.01 13: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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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8월 1일 당진 성산리산성 발굴현장 공개설명회

문화재청의 허가로 (재)금강문화유산연구원(원장 류기정)이 조사를 진행 중인 당진 성산리산성(충남 당진시)이 당진지역의 한성백제 시대 산성으로 확인되었다.

당진 성산리산성은 당진시 고대면 성산리와 석문면 통정리를 경계로 하는 해발고도 67m의 야산 정상부에 자리한다. 길이 239m의 소규모 테뫼식 산성으로, 지난 4월부터 산성의 정확한 구조와 축성 기법, 축조 시기 등을 파악하려 발굴조사를 하고 있다.

당진 성산리산성(원경) 당진 성산리산성(충남 당진시)이 당진지역의 한성백제 시대 산성으로 확인되었다. [사진=문화재청]
당진 성산리산성(원경) 당진 성산리산성(충남 당진시)이 당진지역의 한성백제 시대 산성으로 확인되었다. [사진=문화재청]

이번 조사는 산성의 북쪽 성벽과 안쪽 지역 일부를 대상으로 하였다. 성벽은 야산의 자연 경사면 위에 흙과 잡석을 켜켜이 쌓아 축조하였다. 성벽의 규모는 너비 약 14m, 높이는 성벽 외측 하단부에서 성체 중심부 상단까지 5.3m 정도다. 또한, 5열 정도의 나무기둥(木柱)을 110㎝ 정도의 간격으로 박아 고정한 후 그사이를 적갈색 점토로 다져 토성이 쉽게 허물어지지 않도록 보강한 것을 확인하였다. 이렇게 흙을 번갈아 가며 쌓는 것을 성토(盛土)기법이라 하는데, 성산리산성은 목심(木心) 성토기법을 사용해 쌓아 올렸음을 알 수 있다.

성벽이 꺾이는 일부 구간에서는 성벽 중심부에 먼저 석축을 협축식으로 쌓아 올리고 그 내부를 점토와 잡석층으로 다져 너비 2.8m, 잔존 높이 2m의 견고한 석심(石心)을 만든 후, 그 안팎은 성토기법으로 성벽을 완성한 독특한 수법을 확인하였다. 성산리산성은 토성이지만 성벽 중심에는 석축을 하여 석성에 비견될 정도로 짜임새 있고 견고하게 축성하였다.

성벽 축조시의 목주 흔적 노출 상태. 성산리산성은 5열 정도의 나무기둥(木柱)을 110㎝ 정도의 간격으로 박아 고정한 후 그사이를 적갈색 점토로 다져 토성이 쉽게 허물어지지 않도록 보강했다. [사진=문화재청]
성벽 축조시의 목주 흔적 노출 상태. 성산리산성은 5열 정도의 나무기둥(木柱)을 110㎝ 정도의 간격으로 박아 고정한 후 그사이를 적갈색 점토로 다져 토성이 쉽게 허물어지지 않도록 보강했다. [사진=문화재청]

 문화재청은 “이는 백제 시대뿐 아니라 우리나라 성곽 축조기법의 발달과정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성 내부에는 총 6기의 주거지가 성벽과 가까이에 밀집해 있었다. 평면 형태는 대부분 네모꼴(방형)이었으나, 이 중 1기는

성내 주거지. 한성백제 주거지의 특징적인 형태인 철(凸)자형 주거지로 확인하였다. 성산리산성에 주둔했던 한성백제 군사들의 군막(軍幕)으로 사용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사진=문화재청]
성내 주거지. 한성백제 주거지의 특징적인 형태인 철(凸)자형 주거지로 확인하였다. 성산리산성에 주둔했던 한성백제 군사들의 군막(軍幕)으로 사용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사진=문화재청]

유물은 삼족기(三足器), 굽다리접시(고배, 高杯), 계란모양의 장란형(長卵形) 토기, 시루, 가락바퀴(방추차, 紡錘車) 등 취사와 생활용으로 사용한 토기류와 쇠도끼(철부, 鐵斧) 등 200여 점이 출토되었다. 특히, 삼족기, 굽다리접시와 장란형토기 등은 기존의 한성백제 유적에서 출토되는 유물들과 일치하는 양상을 보였다.

문화재청은 “당진 성산리산성은 성벽 축조 방법과 출토 유물을 통해 볼 때 아산만 초입의 군사 요충지에 자리한 한성백제의 최전방 전초기지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기존의 견해는 이러한 한성백제기 지방 산성을 한성백제 세력이 마한의 여러 소국을 병합하여 세력을 확장하는 과정을 실증하는 자료로 이해했다.

그러나 성산리산성에서 출토된 유물의 연대가 4세기 후반에서 5세기 전반으로 비정되는 만큼 마한과의 관계보다는 광개토대왕의 재위기(391-412)를 전후하여 치열하게 전개된 고구려와의 전쟁에 대비하여 전략적으로 축조한 해안 방어기지의 하나일 가능성이 새로이 제기되고 있다.

이번 학술발굴조사는 문화재청과 (사)한국문화유산협회(회장 조상기)가 ‘비지정 매장문화재’의 학술적 가치를 규명하기 위하여 공모한 ‘매장문화재 학술발굴조사 활성화 사업’의 하나로 진행되었다. 발굴현장 공개설명회가 충남 당진시 석문면 통정리 2029번지에서 8월 1일 오전 11시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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