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림청 국립수목원은 한반도에 자생하는 수목 464종류의 개화시기 및 특성을 분석하여 초여름에 유독 흰 꽃 나무들이 많이 보이는 현상을 설명했다.

곤충에 의해 꽃가루받이가 이루어지는 식물종은 지구상에 있는 꽃피는 식물 중 약 80%를 넘을 정도로 엄청난 비율을 차지한다. 이들은 중생대 백악기때부터 곤충과 오랜 기간 동안, 서로 이익을 주고받으며 성공적으로 진화해 온 종이다. 곤충은 꽃으로부터 꿀과 꽃가루와 같은 먹이를 얻어가고, 식물은 이들이 방문함으로써 우연한 확률로 꽃가루받이(수분)가 이루어진다. 꽃의 색은 꽃의 생김새, 향기, 무늬 등과 함께 곤충에게 보내는 일종의 ‘신호’인데, 꽃과 곤충이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 온 ‘색’ 신호체계는 곤충과는 전혀 다른 광수용체를 가지는 인간의 눈으로는 쉽게 인지할 수 없다.

섬쥐똥나무 [사진=산림청]
섬쥐똥나무 [사진=산림청]

꽃가루받이에 더 없이 중요한 벌을 예로 들어보자. 우리 눈에 빨간색으로 보이는 꽃에는 이상하게도 벌들이 잘 찾아오지 않는다. 반면, 우거진 숲 속에서 핀 보라색 꽃에는 신기하게도 벌이 빈번하게 찾아온다. 왜 그럴까? 인간의 눈은 적색, 녹색, 청색 수용체를 가지고 있으므로 가시광선 파장 영역대(빨주노초파남보)에 있는 모든 색을 식별할 수 있다.

벌의 눈에 있는 광수용체의 수는 인간과 같지만, 이들은 청색, 녹색, 자외선 수용체로 구성되므로 노란색, 녹색, 청색, 자외선만을 식별할 수 있지만, 적외선에 가까운 빨간색은 식별할 수 없다. 반대로 나비는 근적외선을 넘어서 인간이 식별할 수 없는 원적외선까지 볼 수 있다. 따라서 꽃의 색이 갖고 있는 비밀을 파헤치려면 먼저 곤충의 시각에서 바라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특히 초여름에 찔레꽃, 함박꽃나무, 쥐똥나무, 산딸나무와 같이 흰색의 꽃을 피우는 나무들이 많다고 하는데 사실일까.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수목 종류들이 5월과 6월에 개화가 이루어지는데, 초여름(5월과 6월)에 개화하는 수목이 각각 5월에 49.6%, 6월에 46.1%를 차지한다. 이들 중,  흰 꽃을 피우는 자생 수목은 초여름에 개화하는 전체 수목 종 가운데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매우 풍부하다.

특히, 늦봄과 초여름이라고 할 수 있는 5월에서 6월은 사람들의 야외활동이 활발해지는 시기이며, 흰 꽃을 피우는 수목 가운데 절반 이상이 사람 눈높이에 있거나 조금 높은 관목성 수목이므로 당연히 사람들 눈에 더 잘 띌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사람들이 야외활동을 하는 산길과 식재 지역에 흰 꽃 수목들이 많이 자라고 있는 것 역시 사람들의 인식에 영향을 주고 있을 것이다.

때죽나무 꽃 [사진=산림청]
때죽나무 꽃 [사진=산림청]

한편, 곤충 눈에도 정말 흰 꽃이 흰 꽃일까? 우리 눈에 흰색으로 보이는 꽃들이 사실 곤충에게는 흰색으로 보이지 않는다. 우리 눈에 보이는 흰 꽃들은 대부분 자외선을 흡수하기 때문에 곤충에게 흰색으로 보일 수 없다. 그렇다면 곤충 눈에도 흰색으로 보이는 꽃은 그들이 구분할 수 있을까? 이렇게 보이는 꽃은 보통 자외선을 반사시키는 꽃이므로 곤충의 눈에 흰 색으로 보인다. 하지만 곤충은 인간과 달리 명도를 정확히 구분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불행하게도 흰색 꽃을 인지하기 어렵다. 따라서 곤충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흰 꽃은 흰 꽃이 아닌 것이다.

생물에는 항상 보상작용(compensation)이 있다. 흰 꽃은 다른 색의 꽃보다 색소에는 적은 자원을 투입하면서 상대적으로 꿀, 꽃가루, 향기와 같은 다른 보상(reward)에 더 투자를 할 수 있는 이점이 있을 것이다. 아까시나무의 풍부한 꿀, 찔레꽃의 풍부한 꽃가루, 쥐똥나무의 강한 향기와 같은 예를 보더라도 흰 꽃은 꽃가루 매개자에게 줄 다른 선물을 챙겨 놓는다. 흰 꽃이 여전히 꽃가루받이 곤충 매개자들로부터 선택받는 이유는 이들이 곤충의 눈에 흰 꽃이 아니면서 충분한 보상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