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6시 녹음이 우거진 수원시 권선2동 중앙공원에는 힘찬 목소리로 구령을 하며 기공체조로 활기찬 하루를 여는 사람들이 있다. 30여 명의 동호인들을 이끄는 국학기공강사는 올해 74세 정길영 회장(경기국학기공협회)이다.

건강하고 탄탄한 체격이 곧게 뻗은 전나무처럼 단단해 보이는 정 회장은 31년의 공직생활을 마치던 2006년 이곳 공원 수련장을 개설해 14년째 지도하고 있다. 100명의 국학기공강사와 300개 수련장, 1만 명의 동호인을 보유한 경기도국학기공협회장이면서 국학기공강사로도 활동한다. 또한 경찰서와 군부대, 경기노인지도자대학 등에서 우리 역사와 정신을 교육하는 국학강사, 초중고 학생을 가르치는 나라사랑강사로도 활약하고 있다.

“예전에 정년퇴직을 하면 놀겠다고 붓글씨, 바둑을 취미로 배웠지요.(하하) 하지만 지금은 가슴 뛰는 일에 전념해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올해 74세인 경기국학기공협회 정길영 회장은 현역 국학기공강사, 국학강사, 나라사랑강사로 멋진 인생을 설계하고 있다. [사진=김경아 기자]
올해 74세인 경기국학기공협회 정길영 회장은 현역 국학기공강사, 국학강사, 나라사랑강사로 멋진 인생을 설계하고 있다. [사진=김경아 기자]

경남 합천이 고향인 그는 농촌들판을 뛰놀며 제기차기, 자치기, 팽이치기를 하며 자랐다고 한다. 말 잘 듣고 착실하고 조용한 편이었던 그는 국립대인 진주농대(현 경상국립대)에서 축산업을 전공했다. “부모님이 농사를 지어 소와 돼지를 키우는 것을 보아왔기 때문에 익숙했죠. 방학이면 농촌취약지구에 가서 봉사활동도 하고 사람들을 모아 강연할 기회가 있었어요. 그러다 전교생 앞에서 강연할 기회가 주어졌는데 떨리긴 했어도 제 생각을 잘 전달하고 공감을 크게 얻었습니다.”

지금도 몇 백 명, 몇 천 명 앞에서 감동적인 강연을 할 수 있는 잠재력을 그때 발견한 것이다. 경기 노인지도자대학에서 78개 노인대학 학장과 노인지회 회장 등에게 독립운동사 강연을 할 때면 옛 선조들의 심정을 느끼고 눈물을 흘리는 분들이 많다. 그는 “제일 힘든 강연은 중학생들에게 나라사랑 강의를 할 때죠. 안양의 한 중학교에서 강의할 때 학생 절반은 듣고 나머지는 휴대폰 보고 친구들과 장난치고 집중을 하지 않아 마음이 탐탁지 않았어요. 강사대기실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데 들어온 학생이 엄지를 번쩍 치켜들고 ‘오늘 강의 정말 멋졌어요. 최고예요.’ 하더군요. 정면을 보지 않고 딴짓해도 귀를 열고 듣고 있다는 걸 이해했습니다.”라며 인자한 웃음을 지었다.

7급 농촌지도직 공무원시험을 통해 공직에 들어선 그는 처음 9개월 간 면단위에 있는 농업기술센터 지소에서 농가를 일일이 방문해 농업기술을 가르쳐주는 일을 했다. 이후 시군 농업기술센터, 경남농업기술원에서도 15년간 축산농가를 지원하는 일을 하다가 1989년 수원에 위치한 농촌진흥청에서 축산관련 신기술 개발 등을 했다. 예전 우리나라에는 없던 쇠고기 등급체계를 만든 것도 그가 했던 업무 중 하나였다. 1997년 12월 그는 농촌진흥청에서 월요일과 수요일, 금요일 점심시간마다 진행되던 ‘기공 동아리’에서 처음 국학기공을 접하게 되었다. 공직자 대상 교육에서 뇌교육명상도 알게 되어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러다 2000년 파주 법원리에서 우리나라 첫 구제역이 발생했다. 변종만 130가지여서 백신개발이 불가능한 전염병이다 보니 6개월간 비상근무를 했다. 새벽 1~2시에 퇴근했다가 아침 7시면 출근해 있어야 하는 강행군을 하다 보니 과로사하는 공무원도 발생했다.

현장점검을 하고 기존에 없던 방역체계를 만들고 지도하다보니 그도 편두통에 시달려 진통제를 항시 구비하고 그것으로 버텼다. 더 이상 안 되겠다는 생각에 비상근무 때문에 중단했던 기공 동아리 활동에 빠짐없이 참가했다. “전에는 약속이 생기면 때때로 빠졌는데 새로 시작할 때는 독한 마음을 먹었어요. 어떤 약속도 거절하고 3개월 간 집중했죠. 그러니 몸 여기저기서 보내오던 적신호가 사라지고 아침에 눈을 뜨면 벌떡 일어나게 되더군요. 이건 평생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죠.”

정길영 회장의 국학기공 활동모습. (시계방향으로) 광화문 차없는 날 시범공연, 국학기공대회 심판으로 심사하는 모습, 지난해 중국 사천성농업대학과 국학기공 교류 행사, 전국 국학기공대회 금상 수상 모습. [사진=경기도국학기공협회]
정길영 회장의 국학기공 활동모습. (시계방향으로) 광화문 차없는 날 시범공연, 국학기공대회 심판으로 심사하는 모습, 지난해 중국 사천성농업대학과 국학기공 교류 행사, 전국 국학기공대회 금상 수상 모습. [사진=경기도국학기공협회]

뇌교육명상을 본격적으로 하고자 2003년 3월 단월드 동수원센터를 찾았다. 자신과 함께 아내도 평생회원으로 등록했는데 처음 아내는 시큰둥했단다. “아내가 저보고 열심히 해보라고 관심 없다고 하더군요. 그러다 아내의 오른팔에 갑자기 오십견이 왔어요. 당시 교사였던 아내는 칠판 판서를 하지 못할 지경이어서 병원도 찾고 했는데 낫질 않더군요. 제가 배운 체조동작을 알려 주었더니 며칠 만에 팔이 쑥 하고 올라갔어요. 그때 반해서 이후에 저와 함께 마스터힐러 교육까지 받았죠.(하하)”

그해 제2회 중앙부처국학기공대회에 농촌진흥청동아리 선수단으로 출전해 동상을 받았다. 전통 기공무예의 매력에 빠진 그는 처음 무대에 서본 감동을 안고 다음해에는 단공대맥형을 직접 지도해서 금상을 받았다.

뇌교육명상은 50대 후반에 들어선 그에게 건강한 활력과 함께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사람들을 돕고 홍익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의욕을 키워 주었다.

정년을 앞두고 농촌지도관인 그에게 공로연수로 1년 간 사회적응 준비기간이 주어졌다. 그때 그동안 배운 뇌교육명상과 국학기공을 주변사람들을 위해 전하고자 중앙공원에 기공수련장을 열었다. “홍보를 하고 현수막을 걸었지만 처음에는 조깅을 하며 흘깃흘깃 쳐다볼 뿐이어서 일주일간 혼자 했어요. 그러다 중풍인 남편을 이끌고 온 여자 분이 첫 회원이 되고 그 다음부터 점점 늘었죠. 그 첫 회원은 이사를 가서도 힘들 때는 이곳에서 좋았던 기억을 갖고 찾아와 주시더군요. 한번은 대학 다닐 때 강의 들었던 교수님의 부인도 함께 수련하게 되었습니다. 큰 병으로 투병 중이어서 식욕도 잃었는데 수련을 하고 입맛이 돌아 고맙다며 즐겨먹던 콩나물국밥을 싸오셨어요.”

그의 회원 중에는 사진작가도 있었는데 수련장면을 사진과 영상으로 촬영하기에 궁금했다. 최근 식사를 하면서 작가는 “두 번의 암수술을 하고 나서 건강하려고 기공수련을 했는데 몸이 정상으로 회복되었어요. 형제자매가 일곱인데 다함께 모였을 때 ‘본인이 안 아픈 게 형제를 돕는 거다.’라며 찍은 사진과 영상을 전하고 기공체조를 가르쳤습니다. 이제는 가족모임을 할 때 기공체조부터하고 시작합니다.”라고 했다.

정길영 회장은 공직생활 31년을 마무리하는 2006년 4월 수원시 권선2동 중앙공원에 국학기공동아리를 개설해 14년째 지도하고 있다. [사진=경기도국학기공협회]
정길영 회장은 공직생활 31년을 마무리하는 2006년 4월 수원시 권선2동 중앙공원에 국학기공동아리를 개설해 14년째 지도하고 있다. [사진=경기도국학기공협회]

정 회장은 자신이 전한 건강과 활력이 또 다른 곳에서 꽃을 피우는 모습에 뿌듯하고 행복했다고 한다. 그가 지도한 중앙공원 동아리는 권선동의 선善자와 굳셀 무武를 딴 ‘선무팀’으로 매년 수원시 국학기공대회와 전국 대회에 나가 국학기공의 정수를 선보여 큰 박수를 받는다. 그는 중앙공원뿐 아니라 농촌진흥청과 농업기계화연구소에서도 뇌교육명상과 국학기공을 지도했고, 오산여성회관이 지원하는 경로당 3곳, 수원역 인근 경로당에서도 지도했다.

그에게 또 하나 전환점은 2005년 하반기 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현 (사)우리역사바로알기)에서 우리역사 강의 심화과정을 이수한 것이다. 정길영 회장은 “대학전공도 이공계여서 우리 역사에 관심을 가져보질 못했죠. 그런데 식민사관에 왜곡되지 않은 상고사와 홍익정신, 선조들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헌신한 민족정신을 배우니 가슴이 뜨겁고 전하고 싶은 열의가 넘쳤죠.”라고 했다.

그는 경찰청 직무교육, 군부대, 학교 등에서 우리 역사와 홍익철학을 전했다. 그리고 2008년에는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국학과 과정을 마쳤다. 그의 박사논문은 북로군정서를 이끈 독립운동가 백포 서일 사령관을 주제로 했다. “청산리전투, 봉오동전투를 한 김좌진‧홍범도 장군은 잘 알려졌는데 그분들의 정신적 스승인 서일선생께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게 안타까웠습니다.” 그는 현재 백포서일기념사업회 이사직도 맡고 있다.

(시계방향) 초등학교에서 나라사랑 강의를 하는 모습, 군부대 강연, 평택교육청 강의, 삼일절 기념행사에서 만세삼창을 하는 모습. [사진=본인 제공]
(시계방향) 초등학교에서 나라사랑 강의를 하는 모습, 군부대 강연, 평택교육청 강의, 삼일절 기념행사에서 만세삼창을 하는 모습. [사진=본인 제공]

정 회장은 “신채호 선생께서 ‘자신이 나라를 사랑하려거든 역사를 읽게 하라. 다른 사람에게 나라를 사랑하게 하려거든 역사를 읽게 하라.’고 하셨죠. 역사는 사실만 있는 게 아니라 혼이 담겨 있어요. 그걸 느끼는 게 중요합니다. 제대로 된 역사를 알고 뿌리를 찾고 역사 속에 담긴 민족정신을 알게 해야 합니다.”라고 소신을 밝혔다.

그는 “강의가 끝나면 우리 단체에서도 강의해달라는 요청을 자주 받습니다. 한번은 노인지도자대학에서 강의를 마쳤는데 원로목사가 오셔서 자신이 운영하는 경로당에서 강의를 해달라고 하시더군요. 강의도 해드리고 국학기공 지도도 요청해서 7개월동안 지도를 해드려서 수원시 국학기공대회에도 출전하셨죠.”라고 말했다.

지금 정길영 회장은 자신의 인생 책 ‘나는 120살까지 살기로 했다’를 거듭 읽으며 새로운 인생설계를 하고 있다. “그 책에서 마음에 새기는 문장이 있습니다. ‘감정의 사랑을 하는 사람의 행복은 상대방의 반응에 좌우된다. 순수한 영혼의 사랑을 하는 사람은 행복의 중심이 나 자신에게 있다. 가슴 속의 순수한 사랑을 나누고 베풀어주는 데서 진정한 행복을 느낀다.’는 글이죠.

뇌교육명상을 하면서 제 마음이 평화로워지고 너그러워졌죠. 제 고집을 내세우지 않고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법도 배웠습니다. 그리고 흐트러지지 않게 제 자신을 바로 세워주기도 합니다. 건강한 뇌를 가지고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도록 훈련이 되고 어려움을 이겨낸 경험을 가지고 있으면 나이가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사람들에게 뭔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게 중요합니다. 누군가를 도왔을 때 뿌듯하고 행복한 것으로 모든 보상이 됩니다. 그걸로 충분하죠.”

정길영 회장은
정길영 회장은 "건강한 뇌를 가지고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도록 훈련이 되고 어려움을 이겨낸 경험을 가지고 있으면 나이가 중요하지 않다. 나이가 들어도 사람들에게 뭔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게 중요하다. 누군가를 도왔을 때 뿌듯하고 행복한 것으로 충분하다.”고 소신을 피력했다. [사진=김경아 기자]

정길영 회장이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은 무엇일까? “우리 상고사와 독립운동 유적지 답사 가이드로 활동하면서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일깨우고 순국선열들의 민족정신을 계승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특히 독립 가망성이 없는 시대에 이름 한자 남기지 못해도 조국광복을 위해 아낌없이 자신의 목숨을 던진 무명 독립용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공원 수련지도는 평생 내가 움직일 수 있는 동안 계속 할 계획입니다.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필요한 사람으로서 홍익을 실천하며 완성의 길로 나아가는 게 제 꿈입니다.”

정길영 회장은 단순히 나이 많은 노인이 아니라 자신의 꿈을 이루며 세상에 도움을 주는 어르신의 길을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