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 보고 일대일로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워 1분도 하지 못했던 제가 1시간 넘게 개인 상담을 하는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동창생들은 이런 저를 믿을 수 없다고 합니다.”

거의 매일 사람을 만나 상담하고, 뇌를 잘 쓰는 방법을 알려주는 국가공인브레인트레이너 김건명 (48) 단월드 수원 천천동센터 원장은 한때 대인공포증으로 고생했다고 말했다. 그가 먼저 그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전혀 몰랐을 것이다. 인터뷰 전에 몇 차례 전화통화를 할 때 김 브레인트레이너는 거리낌이 없었고, 11일 천천동센터에서 직접 대면했을 때도 웃는 얼굴로 싹싹하게 대화를 이어갔으니까.

대인공포증이라니 어느 정도였는지, 많은 사람 앞에서 뇌교육명상은 어떻게 지도했지……궁금한 게 서너 가지가 한꺼번에 머릿속을 오가는데, 김 브레인트레이너가 더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했다. “어려서는 크리스마스 때 무대에 올라 연극을 잘했어요.” 김 브레인트레이너와는 반대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대에 서는 것을 어려워한다. 개그맨 중에도 무대공포증이 있다고 하지 않은가.

김건명 국가공인브레인트레이너는 뇌교육명상을 통해 세상에 도움이 되는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사진=김경아 기자]
김건명 국가공인브레인트레이너는 뇌교육명상을 통해 세상에 도움이 되는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사진=김경아 기자]

대인공포증을 이겨내고 이제는 너무 말을 많이 한다는 핀잔을 들을 정도가 된 김건명 브레인트레이너. 그는 뇌교육명상을 하면서 자신이 180도 바뀌었다고 말했다.

“마주 보고 대화하지 못하고, 말을 더듬어도 그게 대인공포증, 기피증인 줄 몰랐지요. 그냥 성격이 그렇구나 생각한 거지요. 나중에 뇌교육명상을 하면서 그게 대인공포증, 기피증인줄 알았어요.”

뇌교육명상 전문가로 그는 앞에 서서 지도는 잘 했지만, 지도가 끝나면 회원들을 피해 다녔다고 한다. 사람을 일대일로 만나 이야기하는 게 두려웠다. 김 트레이너는 대인기피증은 성장과정에서 생긴 듯하다고 했다.

김건명 국가공인브레인트레이너는 다른 사람을 1대1로 만나 대화하는 것이 무척 힘들었는데, 뇌교육명상을 한 후로 1시간 넘게 대화하고 상담하는 전문가가 되었다.  [사진=김경아 기자]
김건명 국가공인브레인트레이너는 다른 사람을 1대1로 만나 대화하는 것이 무척 힘들었는데, 뇌교육명상을 한 후로 1시간 넘게 대화하고 상담하는 전문가가 되었다. [사진=김경아 기자]

“사과 산지로 유명한 충남 예산에서 자랐습니다. 가족은 부모님과 형, 저, 넷인데, 아버지가 마흔 살에 저를 낳았어요. 부모님은 농사일로 항상 바빴지요. 어린 마음에 친구 아버지들은 다 젊은데, 우리 부모님은 나이가 많고 초라해서 늘 부끄러워했어요. 그런 게 마음에 수치심과 죄의식으로 남았지요. 형하고는 10살 차이가 나 함께 놀았던 기억이 없습니다.”

김 트레이너는 그가 자란 집은 대화가 없는 가정이었다고 한다. 가족간에 편안한 대화를 김 브레인트레이너는 경험하지 못해 일대일 대화를 어떻게 하는지 몰랐다. 그러는 사이 그 안에서는 외로움, 두려움이 쌓였다.

초등학교 6학년 때는 전학을 하면서 선생님께 상처를 받았다. “전학 간 학교에서 처음 등교하여 급우들에게 인사를 하는데, 선생님이 ‘전학생을 받지 않고 싶었는데, 받았다’는 말을 했어요. 그 말에 상처를 받아 위축되었지요.”

그래도 초등학교 때는 친구가 여럿 있었고 함께 잘 놀았지만, 중학교 고등학교 때는 한두 명뿐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서 여행사에 취직해서 영업을 담당하면서 김 브레인트레이너는 능력을 발휘했다. 대인관계가 항상 편하지 않았지만, 여행사 영업이 재미있었고 수입도 좋아 꽤 많은 돈을 모았다. 그런데 모아놓은 돈을 주식투자로 다 날렸다. 그는 괴롭고 허탈하여 방황했다. 

그 무렵 그는 무엇에 끌리듯 단월드 서울역센터를 찾아갔다.

“지금도 왜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무언가에 이끌려 간 것 같아요. 오다가다 본 뇌호흡이 뭘까 궁금해하다 뇌호흡에 이끌려 센터에 간 것 같아요. 센터에 가니까, 상담하고 누우라 해서 장을 풀어주는데 마음이 너무 편했습니다. 이상하게 눈물이 나오고 말이 나왔어요. 대인공포증이 있는 내가 말을 많이 해서 내가 놀랐어요.”

그렇게 뇌교육명상을 시작한 그는 뇌교육명상을 하는 청년들과 함께하는 활동에 열정을 불태웠다. 연극, 뮤지컬을 좋아하는 그는 뇌교육명상 홍보나 봉사활동을 창조적으로 하는 게 재미있고 신이 났다.

무엇보다 대인공포증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었다.  “처음에는 뇌교육명상을 한 후 느낌을 말하라고 하면 식은땀이 흘렀지요. 어느 날 느낌 그대로 편안하게 이야기하니까, 함께 듣던 분들이 박수를 막 쳤어요. 아, 이렇게 편하게 하면 되는구나 자신감이 생겼지요.”

김건명 국가공인브레인트레이너는 지구촌 모든 사람이 자신을 사랑하고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데 국가공인 브레인트레이너로 도움이 되고 싶다. [사진=김경아 기자]
김건명 국가공인브레인트레이너는 지구촌 모든 사람이 자신을 사랑하고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데 국가공인 브레인트레이너로 도움이 되고 싶다. [사진=김경아 기자]

민족혼 교육을 받고 그는 우리민족과 나라에 자부심이 생겼고, 어르신들에 품었던 편견을 버렸다.

“민족혼 교육을 받고 좀더 성숙해지고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우리 역사를 알고 싶어졌습니다. 어르신들께 어떻게 살아왔는지 듣고 우리 역사를 알게 되면서 어르신, 부모님, 조상에 감사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우리나라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간절했어요.”

그래서 그는 중국의 동북공정 반대 서명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명동 한복판에서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서명을 호소했다. 사람들 앞에서 서는 두려움이 사라지고 자신감이 생겼다고 한다.

2005년 미국 세도나 명상여행은 그가 새로운 삶을 선택하는 계기가 되었다. 일주일간 휴가를 세도나 명상여행으로 보냈는데, 그곳에서 지구시민선언대회에 참가했다. “외국인과 파트너가 되어 함께 명상하고 교류를 하는데, 말은 알아듣지 못하는데, 느낌으로 아는 거예요. 하나가 된 느낌, 통하는 느낌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렇게 보내는 동안 ‘아, 이렇게 살고 싶다, 이런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건국이념인 홍익인간 정신이 선명하게 떠올랐어오. 아, 이런 게 홍익세상이구나 싶었지요. 그때 뇌교육명상지도자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귀국하여 생활을 정리하고 그는 뇌교육명상지도자의 길을 갔다. 사범에서 부원장을 거쳐 서울 왕십리센터 원장으로 발령받았다. 그곳에서 그는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이 뇌교육명상을 하여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고민했다. 뇌교육명상하던 중 불현듯 어깨로 의식이 가면서 아, 어깨를 풀어주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길로 그는 ‘대한민국 지친 어깨를 풀어드립니다“라는 건강 캠페인을 시작했다. 사람들의 반응이 무척 좋았다. 굳은 어깨를 풀어주니, 마음이 풀리고 서로 고마워했다. 그렇게 체험한 이들이 센터에 와서 본격적으로 뇌교육명상을 했다.

그 무렵 그는 회원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원장이었다. 그러나 회원들은 들어주는 것 너머 어떻게 하면 좋을지, 조언을 원했다. 그러나 그는 조언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원장 자리에서 부원장으로 내려가 다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뇌교육명상을 창시한 이승헌 글로벌사이버대학교 총장의 저서를 독파하고, 동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뇌교육명상 원리를 알고 뇌교육수련을 지도하고 스스로 체험하면서 자각이 생겼다.

이에 자신감이 생긴 김 브레인트레이너는 파워브레인메소드(PBM)와 마스터힐러 교육 트레이너에 도전하여 트레이너가 되었다. 그는 “전에는 회원들에게 대인관계를 잘 하는 방법을 주로 조언을 했는데, 뇌교육명상 원리를 잘 알게 되면서 상담을 하면 답이 보였다. 뇌가 알려준다. 이제는 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트레이너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해 준비해서 PBM트레이너, 마스터힐러교육 트레이너가 되었다”고 웃었다.

다시 원장이 된 그는 목표를 세우고 도전을 하니 무엇이 부족한지, 어느 것이 준비가 안 되었는지 알겠더라, 목표를 달성하면 큰 힘이 생긴다라며 요즘은 센터 회원들에게도 목표를 세우고 도전하도록 권한다고 말했다.

그는 2016년 국가공인브레인트레이너 자격을 취득했다. 뇌과학을 공부하면서 뇌교육명상을 더욱 잘 알 수 있었다. 뇌를 이해하니 뇌교육명상 지도, 트레이너 활동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 그가 익히고 깨우친 것은 그대로 회원들에게 전달한다.

“뇌, 뇌교육명상 원리, 수련법 등을 많이 알고 깊게 체험하다 보니 회원들에게도 전달하고 싶어 저도 모르게 말이 많아졌습니다. 전에는 말을 하지 않고 듣기만 했는데, 지금은 바뀌었지요. 그래서 말이 많다고 불평하는 회원도 있어 말을 줄이고 들어주는 쪽으로 조절하고 있습니다.”

일대일 대면을 피하던 그가 이제는 상담을 주도하고 즐기고 있는 것이다.

그는 회원들에게 심성교육, 민족혼 교육, PBM교육을 받도록 권장한다. “자신과 만나고 삶의 주인으로 살기 위해서는 심성교육, 민족혼, PBM교육은 기본입니다. 이 교육을 받고 트레이너로 활동하면서 저 자신의 삶도 그렇게 바뀌었습니다. 이 교육을 받은 회원들이 자신과 만나고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것을 보면 뇌교육명상지도자로 보람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