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삼한문화재연구원(원장 김구군)이 시행한 ‘거제-마산3 국도건설 현장’ 발굴조사에서 아라가야 시기의 나무덧널무덤, 돌덧널무덤 등 670여기의 무덤과 배‧오리모양 등 상형토기, 갑옷과 투구, 말갖춤 등이 발견되었다.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의 허가와 부산지방국토관리청(청장 정태화)의 의뢰를 받아 시행한 이번 발굴조사는 지난 2017년 8월부터 경남 거제시 장목면에서 창원시 우산동까지 연결되는 국도 건설공사 구간을 대상으로 했다. 발굴 결과 청동기 시대의 수혈주거지 등 37기, 가야 시기의 수혈주거지 등 15기, 아라가야 시기의 나무덧널무덤 622기, 돌덧널무덤 35기 등이 확인되었다.
 

(재)삼한문화재연구원이 발굴한 ‘거제-마산3 국도건설 현장’ 전경. [사진=문화재청]
(재)삼한문화재연구원이 발굴한 ‘거제-마산3 국도건설 현장’ 전경. [사진=문화재청]

특히, 나란히 배치된 대형고분 839호와 840호는 부부묘로 추정되며 840호 고분은 길이 860cm, 너비 454cm, 깊이 124cm 규모로 아라가야 지역에서 조사된 유적 중 가장 큰 규모이다. 839호 무덤은 길이 772cm, 너비 396cm로 머리 쪽에 모양이 세련되고 창이 정교하게 뚫려 있는 불꽃무늬굽다리접시 등이 나왔다. 출토유물의 제작기술과 유구의 규모 등으로 볼 때 840호의 주인은 남자, 839호는 여자로 보이며, 당시 최고층의 부부묘로 추정된다.

1년 10개월간의 발굴조사 결과 아라가야 계통의 통형고배(筒形高杯, 통형굽다리접시), 불꽃무늬투창굽다리접시(火焰文透窓高杯), 단경호(短頸壺, 기하문부호가 새겨진 짧은목항아리), 노형기대(爐形器臺, 화로모양그릇받침), 컵모양토기 등 토기류와 철정(鐵鋌, 덩이쇠), 모루, 철착(鐵鑿), 망치 등 단야구(鍛冶具)와 철재(鐵滓, 철찌꺼기), 찰갑(札甲, 미늘갑옷), 복발형주(伏鉢形冑, 복발형투구), 경갑(頸甲, 목가리개), 환두대도(環頭大刀, 고리자루칼, 쇠창, 쇠화살촉, 유리구슬, 세환이식(細環耳飾, 귓불에 붙이는 장신구) 등 총 1만여 점의 엄청난 양의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유물 중에서는 찰갑, 판갑, 투구 등 무구와 고리자루칼, 철촉 등 무기류와 철정, 철착, 철부 등 공구류도 다량 확인되었다. 이 가운데 배를 만들 때 최적화된 도구인 유건철부(有肩鐵斧, 어깨가 넓은 쇠도끼) 수십 점과 100여 점의 쇠끌도 함께 출토되었다. 또한, 무덤에서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는 덩이쇠는 김해지역 출토품보다 더 가볍고, 작게 제작된 게 특징이다.

배모양 토기(주형토기, 舟形土器)는 387호 나무덧널무덤의 피장자 머리쪽의 덩이쇠다발 윗면에서 한쪽이 기운상태로 확인되었다. 길이 29.2cm, 높이 18.3cm의 크기로 배면에 조밀한 톱니무늬가 새겨져 있으며, 기존에 나왔던 쪽배(獨舟木)형 배모양토기와 달리 판재를 조립한 준구조선(準構造船, 통나무배에서 구조선으로 발전하는 중간단계의 선박) 형태이다. 이번 발견된 배모양 토기는 다른 한선(韓船)이나 왜선(倭船)과 같이 노를 고정하는 고리가 없는 범선(돛단배)으로, 국제항로를 다니던 외항선용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배모양 토기는 뛰어난 예술품이자 당시 사람들의 해상 교역을 증명해 주는 역사적 자료로서 가치가 높은 유물이다.

이번 발굴결과로 볼 때 이곳 창원 현동에는 아라가야의 문화상을 공유하면서, 제철을 생산 기반으로 대외 공급 역할을 맡은 해상 세력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역사적으로 창원지역을 포함한 당시의 진·변한 지역에서는 좋은 품질의 철을 생산해 낙랑, 중국, 일본 등지로 공급했었다. 현재의 마산, 김해의 항구들이 바다로 나가는 창구였다. 이번 발굴은 단편적인 기록으로만 남아 있는 가야사 연구에 실증적인 자료를 확보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