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조 단군의 표준영정을 두 개 지정한 데다, 최근에서 북한에서 제작한 영정이 유포되어 난맥상을 보이고 있다. 국조의 표준영정을 중복 지정함으로써 정부나 단체에서도 공식적으로 어떤 영정을 써야 할지 정하지 못하는 혼란스런 상황을 초래했다.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관리가 절실하다.”

(사)국학원은 14일 서울시청 시민청에서 임채우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교수를 초빙해  제190회 국민강좌를 개최했다. [사진=정유철 기자]
(사)국학원은 14일 서울시청 시민청에서 임채우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교수를 초빙해 제190회 국민강좌를 개최했다. [사진=정유철 기자]

(사)국학원(원장 권나은)이 서울시청 시민청에서 14일 개최한 제190회 국민강좌에서 임채우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동양학과 교수는 이같이 지적했다.

‘단군 영정과 경전의 종류 및 전수과정: 판본과 이설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한 임채우 교수는 먼저 ‘단군 영정에 관한 최초 기록’으로 ‘태백일사’ 번한세가(番韓世家)에 “아갑(阿甲)임금이 고유선(高維先)을 보내 환웅과 치우와 단군왕검 세 할아버지의 상을 반포해서 관가에 받들게 했다”는 내용을 소개했다. 임 교수는 “신시개천 3307년 B.C. 591년에 등극한 불한세가 57대 아갑 임금이 단군의 상을 처음으로 그렸다”고 설명했다.

임 교수는 또 이와 비슷한 내용으로 “‘단기고사’에 ‘기자조선 제26대 아갑(阿甲) 임금 때 고유선(高維先)이 단군의 화상(畵像)과 단군실기(檀君實記)를 임금님께 드리다’라는 기록이 있는데, 이것이 사실인지는 현재로서는 실체를 확인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국학원이 14일 서울시민청에서 개최한 제190회 국민강좌에서 임채우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교수가 ‘단군 영정과 경전의 종류 및 전수과정: 판본과 이설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했다. [사진=정유철 기자]
국학원이 14일 서울시민청에서 개최한 제190회 국민강좌에서 임채우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교수가 ‘단군 영정과 경전의 종류 및 전수과정: 판본과 이설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했다. [사진=정유철 기자]

임 교수는 “‘동사유고(東事類考)’에는 ‘신라 진흥왕 때 솔거(率居)는 꿈에 나타난 신인단군(神人檀君)을 그린 단군어진(檀君御眞)이 유명했다’고 하면서, 고려 이규보(李奎報)는 ‘고개 밖 집집마다 모신 단군할아버지(神祖)의 상은, 당년에 절반은 명공의 작품이었네(嶺外家家神祖像 當年半是出名工)’라고 해서 집집마다 단군천진을 모셨다”는 내용이 전한다고 소개했다.

임 교수에 따르면 솔거가 그린 영정이 대한제국 말에 대종교를 통해 다시 전해졌다고 하는 기록이 대종교총본사가 발행한 ‘대종교요감’과 ‘대종교중광육십년사’에 각각 보이는데, 내용이 다르다. ‘대종교요감’에서는 1920년 대종교 대종사 나철에게 강원도 명주군 석병산에 살고 있다는 고상식이라는 노인이 찾아와 단군 영정을 전해주었는데, 이 영정이 바로 솔거의 진본 영정라고 한다. 이 판본을 백련(白蓮) 지운영(1852~1935)이 모사하여 대종교총본사에 봉안했고, 광복 후 국회동의를 받아 국조성상으로 승인받는 저본이 되었다.

이에 관해 임 교수는 “솔거의 유일한 진본이라고 하는데, 대종교에서도 이 솔거본을 받아 바로 모사하게 했듯이 솔거의 원본을 여러 차례 임모한 사본을 통해 솔거의 단군 영정이 전해졌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라고 본다”고 해석했다.

‘대종교중광육십년사’에는 1908년 12월31일 일본 동경에서 두일백(杜一白)이 홍암 나철, 정훈모를 찾아와 전해주었다고 전한다.

이처럼 두 가지 설이 존재하는 단군 영정은 모사하여 1910년 8월21일 서울에 처음 봉안하였고, 1911년에는 교인들을 위해 사진으로 인출하여 나누어주었다.

임 교수는 “1910년 전해 받은 단군 영정 원본의 행방은 알려져 있고, 원본을 임모해 봉안한 영정은 대종교총본사가 만주로 이주할 때 강우(姜虞, 1862~1932)라는 분이 부여의 자택에 보관했다가 이후 부여박물관에 위탁 보관되어 있다. 현재로서는 1910년 백련 지운영이 임모해서 그린 것으로 추정되며, 이 영정이 가장 오래된 단군 영정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임채우 교수는
임채우 교수는 "정부가 국조 단군의 표준영정을 두 개 지정한 데다, 최근에서 북한에서 제작한 영정이 유포되어 혼란스런 상황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사진=정유철 기자]

임 교수는 한 소장가가 조선시대에 그린 단군 영정을 소장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소개했다.

그에 따르면 영정 우측 하단에 “광서(光緖) 9년 계미(癸未, 1883년)에 봉안되었다는 화기(畵記)가 있는데, 19세기 북한지역의 단군사묘 등에 전수된 영정으로 보인다. 이 화기의 기록을 따른다면 현존하는 최고본이다”며 “복식 등에서 보이는 고풍스런 양식은 대종교본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며, 고구려나 백제의 양식과도 유사성을 보여 민간에서 예로부터 전해지던 단군상의 원형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단군 영정의 종류에 관해서는 임 교수는 표준영정 지정이 난맥상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1949년에 대종교에서 제작한 단군영정을 정부표준영정으로 승인했다고, 또다시 1977년 현정회 영정을 표준으로 중복 제정했다. 정부는 하나는 신앙의 대상이고 하나는 경모의 대상이라는 이유를 제시했다.

임 교수는 “국조의 표준영정을 중복 지정함으로써 정부와 단체에서도 공식행사에서나 공식적으로 어떤 영정을 써야 할지 정하지 못하는 혼란스런 상황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대종교 소장 표준 영정은 봉안한 단군 영정의 소재를 몰라 1946년 지성채 화백이 그렸고 1949년 정부표준영정으로 지정됐다. 현정회 영정은 단군숭봉단체인 현정회가 1977년  홍숙호(예명 홍석창) 화가에게 의뢰하여 제작한 영정으로 현대감각에 맞춰 그린 것으로 문화재 전문위원회(영정분과)의 3차에 걸친 수정과 심의를 받았다.

임 교수는 “여기에 더해 최근 북한에서 자체 제작한 영정까지 우리 사회에 상당히 많이 퍼져있다. 현재 남한에서는 표준영정이 중복됨으로써 생긴 혼란뿐 아니라, 북한에서 제작한 단군 영정인 줄 모른 채 단군사묘나 공공기관 등에서 모시고 있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임 교수는 “북한 영정은 남한의 영정을 저본으로 삼아 비파형동검 등의 기물을 배치해서 청동기시대의 군장으로 재해석해서 수정한 것이다.”며 “표준영정이 2종이 지정되어 있는데, 여기에 북한 영정까지 더해져서 혼란이 가중되고 있는 형편이다. 이런 혼란을 막기 위해 앞으로 표준영정을 비롯한 관련 유적과 유물을 분명하게 조사하고 체계적으로 분류해서 정리해 둘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임 교수는 강연 말미에 그동안 전국의 단군사묘를 조사하여 촬영한 단군 영정 등을 사진으로 소개했다. 또한 1920년 전병훈의 ‘정신철학통편’에 수록된 ‘천부경주해’, 1912년 김교헌이 대종교본사에서 간행한 발해석실본(渤海石室本) ‘삼일신고’, 1921년 간행된 정훈모본 성경팔리(나중에 참전계경으로 이름이 바뀜), 1979년 이유립의 제자 조병윤이 광오이해사에서 출판한 조병윤본 ‘환단고기’ 등 원본을 소개해 관심을 끌었다.

국학원 제190회 국민강좌는 국학원이 주최하고 서울국학원이 주관했다.

제191회 국민강좌는 오는 6월 11일 오후 6시30분 서울시민청 바스락홀에서 열린다. 이날 조남호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교수가 ‘북한의 단군인식’을 주제로 강연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