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국학원(원장 권나은)은 오는 5월 14일(화) 오후 6시 30분부터 서울시청 시민청 바스락홀(B2)에서 제190회 국민강좌를 개최한다. 이날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임채우 교수가 “단군영정의 현황과 전수문제”라는 주제로 강연을 한다.

임채우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대학교 교수. [사진=국학원]
임채우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대학교 교수. [사진=국학원]

 임채우 교수는 얼마 전에 북한을 포함한 우리나라 단군영정을 조사, 연구하여 『단군사묘·유적·유물집성』이라는 책을 출판하여 주목을 받았다.

단군 영정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일십당 이맥(1455-1528) 선생이 지은 ‘태백일사(太白逸史)에 나온다. “무오년에 아들 아갑이 등극했다. 경오년에 천왕이 고유선을 보내어 환웅과 치우와 단군왕검의 세 분 시조의 상을 반포하여 관청에서 봉숭하게 했다.”라는 기록이 그것이다.

신라 진흥왕 때의 솔거(560~?)가 단군 영정을 그렸다고 하는데, 전하지 않는다. 독립운동가 김교헌의 ‘신단실기’에는 작자 미상의 ‘동사유고(東事類考)를 인용하며 솔거 일화를 전한다.

“솔거는 두메산골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여 그림공부를 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너무도 가난하고 두메 산골에 살았기 때문에 스승이 없어 배우지도 못 하고 끝내 성공할 길이 없었다.

그는 뜻을 굽히지 않고 산에 나무를 하러 가서는 칡뿌리로 바위에 그림을 그렸다. 들에 나가 밭을 맬 때면 호미 끝으로 모래에 열심히 그림공부를 하면서 밤낮없이 명화공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고 진심으로 한배검께 빌었다.

이렇게 공부하고 빌기를 1년이 지나는 어느 날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서 말하기를 “나는 신인 단군이다. 네 지성이 이 신필(神筆)을 주도록 느끼게 하였노라”하고는 사라지셨다. 그는 이내 황홀히 감격하고 감읍하여 더욱 열심히 공부하니 유명한 화가로 대성하였다. 솔거는 단군 신은에 감명하여 그 꿈에 뵈었던 단군어진 천 본을 그렸고, 고려 시대 평장사(平章事) 이규보가 찬한 시에 이르기를, ‘고개 밖 집집마다 모신 신조(神祖)의 상은, 당년에 절반은 명공의 작품이었네(嶺外家家神祖像 當年半是出名工)’란 기록이 있다.”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단군 영정은 부여천진전에 있다. 대종교 지도자이자 항일운동가인 강우가 황해도에서 모셔왔다고 전하며, 충남 문화재자료 제369호이다.

단군은 우리 민족의 국조(國祖)인 동시에, 고려 말이나 대일항쟁기와 같은 혼란한 시대에는 민족을 지켜주는 희망의 등불이자 위난극복의 구심점이었다. 독립운동가 신규식(1879~1922)선생은 단군이 태백산 단목 아래 강림했다는 한줄기 기록이 없었다면 한민족은 다른 민족에게 종속되고 말았을 것이라고 하였다.

국조로서의 단군은 고조선의 뒤를 이어 부여나 고구려 발해로 그 전통이 계승되었으나, 후세에 들어와서는 외세의 영향을 받으면서 위상이 격하되기도 했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모화사상에 젖어서 위상이 크게 낮아졌다.

그러나 대일항쟁기에는 단군 국조을 민족의식과 자주독립의 지주로 삼기도 했다. 민족 최대의 국난기에 단군은 한국인으로서의 주체성과 자부심을 지키게 한 상징이었다. 일제는 한국인의 구심이 단군정신임을 일찍이 인지하고, 단군정신을 계승한 대종교를 탄압하고 단군 영정 등 단군 관련한 문화, 풍습을 말살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단군영정을 지킨 분들이 있어, 적지 않은 단군영정이 남아있고 광복 후에 단군영정이 다수 복원되었다.

임 교수는 제190회 국민강좌에서 우리나라 단군영정 현황과 전수 문제에 관해 이야기할 예정이다.

◇제190회 국학원 국민강좌 개최

▷ 일시 : 2019년 5월 14일 화요일 오후 6시 30분~ 오후 8시 30분

▷ 장소 : 서울 시민청(B2층) 바스락홀

▷ 강사 : 임채우 교수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 강의주제: [단군영정의 현황과 전수문제]

▷ 찾아오시는 길: 지하철 1호선 시청역 4번, 5번 출구

▷ 참가비 : 무료

▷ 문의전화 : 02-722-1785, 010-7299-60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