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세기 무렵 경주 월성인근의 신라인들은 가시연꽃이 활짝 핀 해자(적을 막기 위해 성 주위를 둘러서 판 물도랑 또는 못) 주변을 거닐며 느티나무 숲에서 휴식을 취했을 것으로 보인다. 월성의 해자는 4~7세기 삼국통일 이전 땅 표면에서 아래로 파 내려간 수혈해자에서 8세기 삼국통일 후 석축해자로 변화되었다.

(위) 경주 월성의 1호 해자 전경 (아래) 발굴된 63종의 신라 씨앗과 열매를 바탕으로 복원한 5세기 해자 주변 전경 추정 복원도. 가시연꽃이 핀 해자 주변으로 느티나무 군락이 조성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사진=문화재청]
(위) 경주 월성의 1호 해자 전경 (아래) 발굴된 63종의 신라 씨앗과 열매를 바탕으로 복원한 5세기 해자 주변 전경 추정 복원도. 가시연꽃이 핀 해자 주변으로 느티나무 군락이 조성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사진=문화재청]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지난해 사적 제16호 경주 월성 정밀발굴조사과정 중 인 해자 내부서 발견된 중요유물을 공개했다. 공개된 유물로는 현재까지 국내에서 확인된 축소 모형 배로는 가장 이른 시기에 의례용으로 사용된 목재 배 1점, 4~5세기 제작된 온전한 형태의 방패 2점, 소규모 부대 지휘관 또는 군郡을 다스리던 지방관인 당주(幢主)와 곡물이 기록된 목간 1점, 그리고 63종의 씨앗과 열매 등이다.

경주 월성발굴 조사는 올해로 5년차를 맞으며, 이번에 공개되는 유물까지 포함해 출토된 유물들은 오는 5일부터 6월 2일까지 서울 한성백제박물관에서 열리는 ‘한성에서 만나는 신라 월성’ 특별전을 통해 일반에 공개될 예정이다. 지난 2월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와 한성백제박물관이 체결한 학술교류 협약을 통해 월성 발굴조사 성과를 알리게 된다.

신라 경주 월성해자에서 발굴된 목재 배 모형으로 우리나라에서 확인된 축소 모형 배로는 가장 오래 되었다. [사진=문화재청]
신라 경주 월성해자에서 발굴된 목재 배 모형으로 우리나라에서 확인된 축소 모형 배로는 가장 오래 되었다. [사진=문화재청]

이번에 발굴된 목재 배 모형은 약 40cm로 통나무배보다 발전된 형태로 뱃머리와 배꼬리가 분명하게 표현된 준구조선(準構造線)이다. 5년생 잣나무로 제작된 배 모형은 다른 유적의 사례로 보아 의례용을 추정되며, 제작연대는 4세기에서 5세기 초(350~367년 또는 380년에서 424년)로 산출된다.

일본에서는 축소 모형 배가 약 500여 점 출토되었는데, 이번 월성의 모형배의 경우 일본의 시즈오카현 야마노하나유적에서 출토된 5세기 고분시대 중기의 모형 배와 뱃머리, 배꼬리의 표현방식, 현측판 표현방법 등이 매우 유사하다. 양국의 배 만드는 법과 기술 이동 등 상호 영향관계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이번에 발굴된 방패는 손잡이가 있는 형태로는 최초이며, 온전한 실물크기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수형해자 최하층에서 출토된 방패 중 1점은 손잡이가 있고, 하나는 없다. 방패에는 기하학적 밑그림 위에 붉은색, 검은색으로 채색이 되어있으며 실제 방어용 무기 또는 수변 의례 시 의장용으로 세워 사용했을 가능성이 보인다.

이외에도 지방관 명칭인 당주와 벼, 조, 피, 콩 등 공물, 그리고 그 부피를 나타내는 일(壹), 삼(蔘). 팔(捌)과 같은 갖은자가 기록된 목간도 나왔다. 갖은자는 같은 뜻을 가진 한자보다 획이 많은 글자로 금액이나 수량에서 숫자변경을 막기 위해 사용한 글자이다. 앞서 발굴된 7~8세기 안압지 목간에서도 갖은자가 확인되었는데, 이번 발굴로 신라의 갖은자 사용이 통일 이전부터 있었음을 알수 있다.

월성해자에서 발굴된 출토품. (시계방향으로) 방패 2점, 신라 지방관 당주가 쓰여진 목간, 복골(卜骨) 흔적이 있는 소 어깨뼈, 수정 원석. [사진=문화재청]
월성해자에서 발굴된 출토품. (시계방향으로) 방패 2점, 신라 지방관 당주가 쓰여진 목간, 복골(卜骨) 흔적이 있는 소 어깨뼈, 수정 원석. [사진=문화재청]

아울러 해자 내부 흙을 1mm이하의 고운 체로 걸러 63종의 신라 당시 씨앗과 열매를 확보했다. 화분분석을 통해 물 위의 가시연꽃과 물속에 살던 수생식물, 해자 외곽 소하천변의 느티나무 군락 등을 파악했다. 이는 향후 월성 경관복원의 근거가 되어 신라왕궁의 풍경을 복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밖에도 물의 흐름과 깊이, 수실을 알려주는 당시의 식물성 플랑크톤 규조를 분석해 해자에 담겼던 물에 대해서도 분석중이다.

해자 내부에서는 6개월 전후 어린 멧돼지뼈 26개체가 확인되어 신라인들이 식용 또는 의례용으로 어린 개체를 선호하였음을 시사한다. 이외에도 2~3세기부터 분묘유적에서 다수 출토되는 수정도 가공되지 않은 원석상태로 출토되었고, 쇠도끼 36점도 확인되었다.

이번 유물 발굴을 통해 월성의 해자는 성 안팎을 구분하면서 방어나 조경의 기능을 했고, 다양한 의례가 이루어진 특별한 공간임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