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은 전라북도 무주 적상산사고에 보관되어 있던 조선왕조실록 적상산사고본 4책과 오대산사고본 1책, 정족산사고본의 누락본 7책, 봉모당본 6책, 낙질 및 산엽본 78책 등 조선왕조실록 96책을 추가로 확인해 국보로 지정 예고하기로 하였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은 조선 태조(太祖)에서부터 조선 철종(哲宗) 때까지 25대 472년간(1392~1863)의 역사를 연월일 순의 편년식(編年式)으로 정리한 책으로, 총 2,219책의 방대한 규모이다.

조선왕조실록 적상산사고본(광해군일기/필사본). 문화재청은 조선왕조실록 적상산사고본 4책과 오대산사고본 1책, 정족산사고본의 누락본 7책, 봉모당본 6책, 낙질 및 산엽본 78책 등 조선왕조실록 96책을  추가로 국보지정을 예고하기로 하였다. [사진=문화재청]
조선왕조실록 적상산사고본(광해군일기/필사본). 문화재청은 조선왕조실록 적상산사고본 4책과 오대산사고본 1책, 정족산사고본의 누락본 7책, 봉모당본 6책, 낙질 및 산엽본 78책 등 조선왕조실록 96책을 추가로 국보지정을 예고하기로 하였다. [사진=문화재청]

‘조선왕조실록’은 조선 시대의 정치, 사회, 외교, 경제, 군사, 법률, 문화 등 각 방면의 역사를 기록한 것으로 국왕도 마음대로 열람하지 못했을 정도로 진실성과 신빙성이 매우 높은 사료이다. 이러한 이유로 1973년 국보 제151호로 지정된 바 있고, 이후 세계적으로 가치를 인정받아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국보 제151-1호는 정족산사고본(1,181책), 제151-2호는 태백산사고본(848책), 제151-3호는 오대산사고본(27책), 제151-4호는 기타 산엽본(21책) 등으로 총 2,077책을 국보로 지정하였다. 일본 동경대학이 2006년 서울대학교(규장각)에 반환한 오대산사고본 실록 47책이 국보 제151-3호로 2007년 추가 지정됐다. 산엽본(散葉本)은 낱장으로 떨어져 흩어진 자료로 특정 실록 중 훼손된 부분을 교체하거나 교정 과정에서 오류를 수정하면서 본책(本冊)에서 제외된 자료를 말한다.

조선왕조실록 적상산사고본(인조실록/활자본).[사진=문화재청]
조선왕조실록 적상산사고본(인조실록/활자본).[사진=문화재청]

이번 추가 지정 예고는 국보 제151-1호인 ‘조선왕조실록 정족산사고본’의 일부가 1973년 국보로 지정될 당시부터 누락되었다는 사실을 2016년 문화재청이 인지하면서 시작된 2년간의 작업 끝에 이루어진 것이다.

문화재청은 2017년 소장처인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과 함께 1년간 기초현황을 재검토했고, 2018년에는 국내에 있는 조선왕조실록의 소재지를 파악하여 일괄 조사했다. 이렇게 하여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85책)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9책), 국립중앙박물관(1책), 국립고궁박물관(1책)에 소장된 조선왕조실록을 찾아냈다. 이 가운데는 1973년 국보 지정 때 누락된 것도 있고, 국보 지정 이후에 환수됐거나 별도로 구입한 것도 있다.

조선왕조실록 정족산사고본(성종실록/밀랍본) [사진=문화재청]
조선왕조실록 정족산사고본(성종실록/밀랍본) [사진=문화재청]

조사의 가장 큰 성과는 6.25전쟁 때 북한군이 북으로 반출했다고 전해질 뿐 국내에 없는 것으로 알려진 적상산사고본 실록이 국립중앙박물관에 1책,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3책이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점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1책은 「광해군일기」로, 첫 면에 「이왕가도서지장(李王家圖書之章)」, 「무주적산상사고소장 조선총독부기증본(茂朱赤裳山史庫所藏 朝鮮總督府寄贈本)」이라는 인장이 찍혀 있어 전라북도 무주 적상산사고에 보관되었다가 대일항쟁기에는 이왕가도서로 편입된 실록임을 알 수 있었다. 적상산사고본 실록의 발견으로 조선 4대 사고(史庫)인 정족산, 오대산, 적상산, 태백산사고에 소장되었던 실록이 완질 또는 일부 형태로라도 국내에 다 전해졌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으며, 북한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나머지 적상산사고본 실록의 형태를 추정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보로 추가 지정이 되면 「성종실록(成宗實錄)」인 정족산사고본의 누락본 7책은 정족산사고본이 국보 제151-1호인만큼 제 151-1호에 편입하고, 「효종실록(孝宗實錄)」인 오대산사고본 누락본인 1책은 국보 제151-3호에 편입될 것이다. 이 효종실록은 작년 일본에서 환수하여 국립고궁박물관이 입수한 자료로, 권수제(卷首題) 윗부분에 ‘동경제국대학도서인(東京帝國大學圖書印)’이라는 장서인(藏書印)의 흔적이 있어 대일항쟁기 일본으로 반출된 오대산사고본 실록의 일부임을 보여준다.

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본(효종실록/활자본). [사진=문화재청]
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본(효종실록/활자본). [사진=문화재청]

봉모당본은 첫 면에 「봉모당인(奉謨堂印)」이라는 소장인이 찍혀 있고 푸른색 비단으로 장정(裝幀)한 어람용(御覽用) 실록으로, 주로 역대 국왕과 왕비들의 생애와 행적을 기록한 일대기이다. 조선 후기에 어람용 실록을 특별히 제작한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자, 조정에서 논의된 국정(國政) 관련 사안에 객관성 유지를 위해 끝까지 왕에게 보이지 않은 사관(史官)들의 일관된 태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사례이다. 봉모당(奉謨堂)은 1776년 정조의 명으로 창덕궁 후원에 세운 규장각 부속 건물 중 하나로 역대 국왕의 글과 글씨, 왕실족보 등 왕족의 자료를 보관한 전각이다. 1911년 일제가 철거하고 대다수 장서(藏書)는 창경궁 장서각으로 이관하였다.

또한, ‘조선왕조실록 낙질 및 산엽본’은 정족산사고본, 태백산사고본, 오대산사고본 등에 속하지 않는 낙질(落帙) 성격의 또 다른 실록 65책과 기타 산엽본 13책 등 총 78책이다. 낙질본은 원래 사고에서 제외된 중간본(重刊本) 실록이 다수이고, 산엽본은 정족산사고본 실록의 낙장(落張)을 모아놓은 것이다. ‘낙질 및 산엽본’은 재해로 인해 훼손되었거나 일부를 오리거나 붙여서 수정한 흔적이 많지만 ‘후세에 전할 역사의 증거’라는 인식에 따라 잔편(殘片)이라도 소중히 보존해야 한다는 시대정신과 실록 편찬 상황을 생생하게 담고 있는 근거 자료로서 의의가 크다. 1604년 4월 4일 「선조실록」의 기록에 춘추관에서 “실록은 단 한권이라도 만세토록 전해야 할 증거”이므로 철저히 지키고 관리해야 한다고 선조임금에게 보고한 내용이 있다.

조선왕조실록 봉모당본(활자본). [사진=문화재청]
조선왕조실록 봉모당본(활자본). [사진=문화재청]

문화재청은 “이번에 지정 예고한 조선왕조실록은 갑작스런 재난에 대비하여 여러 사고에 나누어 보관한 체제와 수정과 개수(改修) 등 실록 간행의 종합적인 실상을 알려주고 선조들의 철저한 기록관리 정신을 다시 한 번 증명해주는 문화유산이다.”며 “유․무형의 진실성과 신빙성은 한 나라의 역사를 넘어 인류문화사적으로도 매우 탁월하며, 이러한 이유로 국보 제151호에 추가해 지정하기에 충분하다.”라고 국보 추가 지정 예고 의미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