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자연을 닮았다.' 이 말만 한 칭찬이 없다는 것을 알면 철이 든 것이다. ‘자연을 닮은 사람’. 안동 국학원 임선홍 원장을 처음 본 느낌이 그랬다. 그의 눈빛에서 순박함과 간절함이 느껴진다. 올해 안동시민 1만 명에게 홍익정신을 알리겠다는 비전을 갖고 있는 그를 만났다.

그는 경북 봉화군 소천면에서 6녀 1남의 다섯째로 자랐다. 어릴 때는 산골인 고향에서 떠나고만 싶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고향 덕분에 자연의 기운을 많이 받고 자란 것에 감사한단다. 농사일을 하시는 부모님은 자식들이 공부를 잘 해서 꿈을 이루기를 바라셨다. 그래서 그는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려고 공부를 열심히 했다.

임선홍 원장(단월드 안동센터)은 어려서부터 어려워도 남을 돕는 일을 하고 싶었다고 한다. [사진=김경아 기자]
임선홍 원장(단월드 안동센터)은 어려서부터 어려워도 남을 돕는 일을 하고 싶었다고 한다. [사진=김경아 기자]

초등학교 1학년 때 매일 동화책을 읽어주시는 좋은 선생님을 만난 덕분에 ‘선생님’이 되고 싶은 꿈을 가졌다. “아이들이 훌륭하게 자라도록 도와주는 선생님, 섬마을과 같은 낙도에서 아이들의 꿈을 키워주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어요. 동화책이나 위인전을 보면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훌륭한 일을 한 사람의 이야기에 감동을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편하고 좋은 일’보다는 ‘어렵지만 남을 돕는 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나 봐요.” 그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과 지금 그의 모습은 어릴 적 꿈과 많이 닮아 있었다.

부모님의 농사일을 도와가면서 초등학교, 중학교를 나왔다. 고등학교는 대구나 안동으로 갈 꿈에 부풀었는데, 소천면에 신설 고등학교가 생긴데다 어머니가 아프셔서 장학금을 받는 조건으로 그 학교에 들어갔다. 그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고향을 떠난 본 것은 방학 때 서울 이모님 댁에 한 번 다녀온 것이 전부였다.

교사가 되고 싶어 개교하는 국립교원대학에 원서를 넣었지만 역부족이었다. 재수할 형편이 안 되어서, 대구에 있는 대학교 특수교육과에 들어갔다. 교사의 꿈을 어떻게든 이루고 싶었다. ‘특수교육’을 택한 것도 어렵지만 보람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가 대학에 다닐 때는 데모가 연일 끊이지 않았다. 사회 부조리에 대한 고민도 많았고, 장애인을 비롯한 소외계층에 대한 사회적 차별의 부당함 등 그의 마음은 이런저런 짐들로 가득했다.

대학 시절, 그는 장애인학교에서 봉사활동을 했는데, 생각과는 다른 현실에 실망했다. 몇몇 선생님이 학생들을 대하는 태도에 실망했다. 이런 학교에서 교사가 되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과 암암리에 성행하던 임용 비리에 교사의 길을 망설였다. 결국 임용고시를 포기하고 유치원 교사가 되기로 했다.

서울에 와서 수유동의 한 유치원에서 교사로 일하다, 얼마 후에 인천에 있는 종합복지관에서 옮겼다. 그리고 그는 예전에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는 재활원으로 갔다.

임선홍 원장은  올해 안동시민 1만 명에게 홍익정신과 뇌교육을 알리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뛰고 있다. [사진=김경아 기자]
임선홍 원장은 올해 안동시민 1만 명에게 홍익정신을 알리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뛰고 있다. [사진=김경아 기자]

 

“스님들이 운영하는 재활원이었어요. 부모님으로부터 버려진 아이들을 돌보는 곳이었고요. 저는 그곳에서 스님 밑에서 수행하고 일하다가, 스님이 되어서 재활원을 운영할 계획이었습니다. 2년 정도 일했는데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서, 스님의 은사 스님이 계신 절로 가서 행자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충남의 한 사찰에서 큰 스님 아래서 3년간 행자 생활을 했다. 사미계를 받기 위한 공부하러 승가대학에 입학하던 날, 그는 발길을 돌렸다. 그의 마음속에 말하지 못할 실망이 있었다. 진정한 스승을 만나고 싶다는 그의 갈망이 더욱 커졌다. 그 길로 다른 절로 스승을 찾아다니고 싶었지만, 어머니가 눈이 아파 병간호하러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다. 3년 동안 어머니를 간호하면서, 어머니가 나으면 다시 절로 가겠다는 마음뿐이었다. 그러던 중에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어머니를 혼자 두고 집을 떠날 수 없어서 2년을 더 고향에 있었다.

그러던 중에 마산 사는 부부 교사인 남동생네가 아이를 낳아서 어머니와 함께 가서 돌보았다. 낮에 아기를 돌보고, 저녁에 뇌교육명상센터에 나갔다. 큰 스님이 되려면 단전호흡은 배워둬야 한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있어, 다시 스님의 길을 가기 위한 준비였다고 한다.

그의 나이도 이미 30대 중반을 지났다. 그를 알아봐 주는 원장님을 만나 뇌교육명상을 체계적으로 지도받았다. “그때 이승헌 총장님의 저서 ‘힐링 소사이어티’를 읽었어요. ‘존재의 뿌리를 허공에 두고, 가슴에는 대의를 품고, 정직, 성실, 책임감 있게 사는 것 외에 더 이상 깨달음은 없다’라는 문구가 마음에 확 와 닿았어요. 그동안 깨달음을 찾고 있었던 것이 한 순간에 정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원장과 마주 앉아 차를 마시면서 ‘힐링 소사이어티를 위한 12가지 통찰’이라는 책을 한 구절씩 번갈아 읽었다. “갑자기 제 내면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것을 느꼈어요. 한없이 눈물이 나왔어요. 책의 끝에 ‘힐링하는 삶을 살 것인가? 킬링하는 삶을 살 것인가’라는 구절을 읽고, 힐링하는 삶을 살겠다고 선택했어요.”

얼마 후 그는 심성교육을 받았다. 그는 “왜 이 세상에는 싸움이 그치지 않는 것인지? 싸우지 않고 사는 세상을 만들 수는 없을까?”가 항상 궁금했다. 그래서 큰 스님이나 깨달은 분들이 쓴 책들을 가리지 않고 읽었다. 답을 찾지 못했다. 그런데 심성교육에서 원인과 해답을 찾았다. 심성교육에서 ‘인간의 의식’을 알고, 끊임없는 갈등과 분쟁의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희망을 느꼈다. “사람들이 모두 자신 안에서 ‘참나’를 만나고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 ‘홍익인간 이화세계’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제야 우리 민족의 건국이념이 무슨 의미인지 알았고 너무 좋았습니다. 제가 인생에서 이루고 싶은 꿈이 바로 ‘홍익인간 이화세계’였어요. 그래서 지도자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뇌교육명상을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받은 심성교육은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그 후 2년 동안 마스터힐러 교육과정과 뇌교육명상 지도자가 되기 위한 실습과 준비를 했다. 그는 39세에 뇌교육지도자가 되어, 경남지역의 여러 센터에서 부원장과 원장을 했고, 대전에서 원장 생활을 거쳐 지역대표까지 했다. 뇌교육명상을 지도하는 것과 센터를 운영하는 것은 다른 차원이었다고 한다. “저는 그동안 혼자 생각하고 수행하고 일하며 살아왔어요. 센터를 운영하면서, 지역대표를 하면서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일을 해야 했어요. 누구와도 소통을 잘 해야 했고요. 계획을 짜서 실행하고 운영해야 했어요. 그것을 익히는 과정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임선홍 원장은  안동 시민들이 뇌교육명상을 통해 건강과 행복을 찾을 때, 그리고 스스로 꿈을 찾고 의식이 성장해 나갈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 [사진=김경아 기자]
임선홍 원장은 안동 시민들이 뇌교육명상을 통해 건강과 행복을 찾을 때, 그리고 스스로 꿈을 찾고 의식이 성장해 나갈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 [사진=김경아 기자]

 

그리고 3년 전에 안동센터로 발령을 받았다. 안동에 오자마자 만주에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독립운동가 석주 이상용 선생’의 생가인 임청각에서 이틀을 머물렀다. “안동을 정신문화의 수도라고 합니다. 근데 무언가 빠져 있었습니다. 일제에 항거했던 만주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에는 ‘홍익인간’과 ‘천부경’이 있었습니다. 정말 안동이 정신문화의 수도가 되기 위해서는 유교 문화가 아니라, 홍익인간 정신과 국학이 이곳에서 살아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홍익정신이 살아나야 안동이 살아난다는 마음으로 안동센터를 살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안동센터를 중심으로 안동시민 1만 명에게 국학과 뇌교육을 알리는 것을 저의 비전으로 정했습니다.”

지난 3년간 그는 매일 그 꿈을 꾸고 일하고 잠들었다. 그 사이에 뇌교육 지도자 20명과 전문강사 10명을 가진 탄탄한 센터로 안동센터는 커졌다. 안동센터 소속 전문강사들이 정기적으로 뇌교육명상을 지도하는 관공서와 학교, 복지관과 경로당 등은 10곳이 넘는다. 안동센터의 강사와 회원들은 안동국학원과 지구시민운동연합 안동지회, 경북국학기공협회 안동지부와 같은 시민단체를 통해 지역 주민들의 건강과 행복에 기여하는 다양한 활동을 전개한다. 이제 단월드 안동센터는 안동시에서 홍익활동가들을 양성하는 요람이 되었고, 그 홍익활동은 안동뿐만 아니라 예천, 청송, 의성 등 인근 지역까지 전개하고 있다.

“지금까지 안동시민 3천 명에게 BHP명상을 전달했습니다. 1만 명에게 전달하려면 아직 멀었지만, 열심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매일 강사와 회원들이 안동 시내를 돌면서 BHP명상을 통해 건강하고 행복해지는 사랑을 전합니다. 올해는 국학과 뇌교육(BHP명상)을 전할 국제뇌교육지도자(IBEL) 100명을 양성할 계획입니다. 아이벨(IBEL) 100명이 양성이 되면 안동시민 1만 명과 인근 지역에 홍익정신을 전하는 일이 더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안동센터 회원들은 율려수련을 좋아하고,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주위에 많아 회원들과 함께 자연명상을 하러 야외에 나가는 것을 좋아한다. “저는 회원님들에게 항상 뇌교육 5단계를 이야기하고, 항상 자신의 뇌와 이야기하라고 합니다. BHP명상을 하고 뇌교육명상을 할 때 자기의 뇌에게 무엇을 느꼈는지, 어디가 좋아졌는지 이야기를 하도록 권해요. 뇌와 대화를 하면, 자신의 뇌와 몸의 컨디션에 대한 자각이 높아지고 수련효과도 더 좋습니다.”

그는 안동센터 회원들과 외부에서 만나는 시민들이 뇌교육명상을 통해 건강과 행복을 찾을 때, 그리고 스스로 꿈을 찾고 의식이 성장해 나갈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안동은 유교적인 문화가 강하지만, 그런 문화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게다가 젊은 층이 줄어들고 있어요. 그래서 꿈과 희망이 필요다고 생각합니다. 안동에 홍익정신을 바로 세운다면 젊은이들에게도 꿈과 희망이 생길 거라고 생각합니다.”

임선홍 원장은 안동의 봄은 참 아름답다고 했다. 하지만 진정한 봄은 사람의 마음에서 꽃피워야 한다며, 안동에서 홍익의 정신문화가 아름답게 꽃피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고 했다. 인터뷰 내내 그의 마음속에는 건강하고 행복한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에 대한 사랑이 이미 활짝 꽃피어 있었다. 올해 1만 명의 안동시민들에게 그 꽃이 전해지기를 바란다. 아름다운 홍익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을 그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