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나 심각한 신체적 상해의 위협을 느낄 만큼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한 후, 그 경험이 커다란 심리적 상처가 되어 당사자 혹은 주위사람에게 긴 후유증을 남기는 것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일명 ‘트라우마’라고 한다.

기초과학연구원(IBS)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 신희섭 단장 연구팀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치료하는 심리치료 요법의 과학적 원리를 세계 최초로 동물실험으로 입증하고, 이와 관련된 새로운 뇌 회로를 밝혀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 유영민)와 IBS는 이번 연구 성과가 14일 새벽3시(한국시간) 세계 최고 권위의 학술지 네이처(Nature, IF 41.577)온라인 판에 개재되었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완벽하게 치료할 수 있는 약이 없어 주로 항우울제 등이 활용되었지만, 쉽게 재발해 치료가 쉽지 않았다. 정신과에서는 공포기억을 회상하는 동안 움직이는 빛이나 소리 등을 반복해 눈동자를 좌우로 움직이게 하는 ‘안구운동 민감소실 및 재처리 요법(EMDR)’을 활용했다. 그러나 과학적 원리가 밝혀지지 않아 이 치료법을 도외시하는 경우가 있었다.

양측성 자극을 사용한 공포기억 반응과 감소의 원리. 양측성 시각 자극이 안구운동 및 주의집중을 담당하는 뇌 영역인 상구를 자극해 공포반을을 담당하는 편도체를 억제하는 새로운 신경회로가 활성화 된다. [사진=과학기술정보통신부]
양측성 자극을 사용한 공포기억 반응과 감소의 원리. 양측성 시각 자극이 안구운동 및 주의집중을 담당하는 뇌 영역인 상구를 자극해 공포반을을 담당하는 편도체를 억제하는 새로운 신경회로가 활성화 된다. [사진=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연구진은 고통스러웠던 상황의 기억으로 인해 공포반응을 일으키는 생쥐에게 좌우로 반복되는 빛 자극(양측성 자극)을 주었을 때, 행동이 얼어붙는 공포반응이 빠르게 감소하는 것을 발견했다. 또한 시간이 지나거나 다른 장소에서 비슷한 상황에 처해도 공포반응의 감소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것을 확인했다.

또한 연구진은 뇌 영역 중 공포기억과 반응에 관여하는 새로운 뇌 신경회로도 발견했다. 기존에 안구운동, 주의집중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진 뇌 영역인 상구는 공포기억 억제에 관여하는 중앙 내측 시상핵과 연결되어 있어 양측성 자극으로 인한 공포반응 감소 효과가 이 두 뇌 영역의 사이에 활동 증가로 인해 나타난다는 것을 실험으로 확인했다.

즉 공포반응을 담당하는 편도체의 공포세포 활동을 억제하는 신경회로가 중앙 내측 시상핵에 존재하며, 양측성 자극으로 해당 억제 회로가 강하게 활성화될 경우 공포반응이 감소하는 것이다.

이번 연구는 경험적으로만 확인된 심리치료 기법의 효과를 동물실험으로 입증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치료법의 과학적 원리를 밝혔고, 공포반응을 감소시킬 수 있는 뇌 신경회로를 새롭게 밝혀냈다는 데 과학적 의의가 크며, 이를 통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치료를 위한 새로운 방법을 제시했다.

신희섭 기초과학연구원 인지 및 사회성연구단장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단 한번의 트라우마로 발생하지만 약물과 심리치료에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앞으로도 공포기억 억제 회로를 조절하는 약물이나 기술을 개발하는 연구에 집중해 이를 쉽게 치료하는데 기여하겠다.”고 밝혔다.